Wuxi
11월 15, 2018中國南方文化探訪 (19) – 無錫. 太湖
無錫(무석 / 우시)
2008년 4월 19일(토) 비
08시 20분, 진강을 출발한 버스는 빗속을 뚫고 달린다.
10시 정각에 無錫에 도착했으나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내린다.
터미널 앞 호텔은 만원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 藍府賓館으로 갔다. 120위안.
비가 와서 흙 묻은 신발로는 택시를 태워주지 않는단다.
인력거를 타고 호텔로 갔다.
태호를 구경해야 하는데 비가 계속 내리니 갈 수가 없다.
오늘은 하루 푹 쉬기로 했다.
양쯔장(揚子江) 하류에 있는 장난[江南] 삼각주에 위치하며 타이후오[太湖]의 바로 북쪽, 후닝철도[嫉寧鐵道:南京∼上海] 연변에 있다. 또한 대운하 연안인 시청[錫澄]운하와의 분기점에 해당하여 내륙수운의 중심지를 이룬다. 예로부터 쌀·생사(生絲)의 집산지로 알려졌고, 지금도 제사(製絲)·면방직이 성하다. . 우시는 타이후호의 관광기지로서도 알려져 있으며, 서쪽 교외의 후에이산전[惠山鎭]은 우시 인형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4월 20일(일). 흐림
08시 50분, 택시로 太湖景區로 갔다. 40위안.
입장료 105위안.
태호는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담수호로 시내에서 남서쪽에 펼쳐져 있다.
태호에는 원斗渚公園이 있고, 배를 타고 들어가는 仙島(三山) 유원지가 있다.
태호에는 72개의 작은 섬이 있다.
먼저 배를 타고 약 15분 걸려서 仙島로 들어갔다.
선착장에서 가장 가까운 섬으로 오래된 사원 廣福史가 있고 호숫가에 거대한 老子像, 佛像 등 여러 건물과 조각으로 유원지를 만들었다.
태호풍경구 안내도 |
태호 안내도와 서상(?)객 여행 루트 |
서상(?)객 소개 |
서상(?)객은 명나라 때인 1607년 무석 근교에서 태어나 지리, 문학, 여행의 대가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다. 서상(?)객이 태호를 다녀간 400주년 기념사업으로 동상을 세웠다.
유람선 |
仙島안내판 |
선착장에서 삼산으로 올라가는 다리(會仙橋) |
三山으로 올라가는 입구 |
삼산도원 |
三山全景 |
老子像 |
공자와 노자상 |
노자상 뒤편 三山을 깎아 만든 불상 |
낙양 봉선사의 불상과 많이 닮았다.
仙島에서 돌아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원斗渚공원이 있다.
태호 북쪽으로 자라모양으로 뻗어 나온 반도를 돌아가면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는 공원이다.
공원 안에는 태호에서만 난다는 커다란 태호석 조각이 볼만하다.
원두저 |
원두저 정상의 거북 동상 |
원두저에서 본 태호 |
원두저에서 광복사를 거쳐 입구로 내려오는 산책로 양편에 대밭.
막 올라오는 죽순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왕대 밭에 왕대 나고…….
오후에는 중국 四大美女중 으뜸으로 꼽히는 서시와 관련된 “여園”으로 갔다,
태호에서 여원으로 가다가 좌 우측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영화촬영 세트장이 몇 개 있다.
三國誌演義 촬영 셋트장인 三國城, 그 옆에 水滸誌 촬영 세트장인 水滸城, 반대편으로 들어가서 唐明皇의 촬영 세트장인 唐城 등이 있다.
西施는 월나라 재상 범려가 미인계로 吳王 부차에게 바쳐서 오나라를 망하게 만든 절세 미녀다.
중국의 四大美女는 전국시대 서시, 전한 초기에 왕소군,후한 말에 초선, 당나라 때 양귀비를 이르는데 그중에서도 서시가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서시의 얼굴이 호수에 비치면 물고기들이 넋을 잃고 쳐다보다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물밑으로 가라앉았다고 해서 “浸魚”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서시는 경국지색으로 오왕 부차는 서시에게 빠져 나랏일을 등한시해 결국 월왕 구천에 의해 오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다.
오나라가 망한 후 서시는 범려와 더불어 “여원”에서 말년을 보냈다고 하는 얘기가 있다.
일설에는 산동으로가서 소금장사로 거부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원내에는 태호석으로 쌓은 주山과 총 289m에 89개의 창을 가진 千步長廊이 볼만하다.
여원 안내판 |
여원 |
태호석으로 쌓은 주산 |
千步長廊 |
천보장랑 복도에서 창문으로 본 內園 |
천보장랑을 지나 나가면 호수 안에 멋진 정자 춘추각이 있고 그 벽에 범려와 서시가 말년을 즐기는 벽화가 있다
서시 동상 |
여원을 돌아보는데 포장마차에서 우리의 순두부와 비슷한 “西施豆腐花”라는 것을 판다.
한 공기에 2위안.
◆ 서시(西施) – “침어(沈魚)”
『 서시의 미모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조차 잊은 채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춘추 전국 시대의 “서시”는 춘추 말기의 월나라의 여인이다.
어느 날 그녀는 강변에 있었는데 말고 투명한 강물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추었다.
수중의 물고기가 수영하는 것을 잊고 천천히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래서 서시는 침어(浸魚)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서시는 오(吳)나라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왕 구천(勾踐)의 충신 범려가
보복을 위해 그녀에게 예능을 가르쳐서 호색가인 오왕 부차(夫差)에게 바쳤다.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사로잡혀 정치를 돌보지 않게 되어 마침내 월나라에 패망한다.
◆ 왕소군(王昭君) – “낙안(落雁)”
『 왕소군의 미모에 기러기가 날갯짓 하는 것조차 잊은 채 땅으로 』떨어졌다.
한(漢)나라 왕소군은 재주와 용모를 갖춘 미인이다.
한나라 원제는 북쪽의 흉노와 화친을 위해 왕소군을 선발하여 선우와 결혼을 시킨다.
집을 떠나는 도중 그녀는 멀리서 날아가고 있는 기러기를 보고 고향 생각이 나서 금(琴)을 연주하자 한 무리의 기러기가 그 소리를 듣고 날개 움직이는 것을 잊고 땅으로 떨어졌다.
이에 왕소군은 낙안(落雁)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 초선(貂嬋) – “폐월(閉月)”
『 초선의 미모에 달도 부끄러워서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다. 』
초선은 삼국지의 초기에 나오는 인물로 한나라 대신 왕윤(王允)의 양녀인데, 용모가 명월 같았을 뿐 아니라 노래와 춤에 능했다.
어느 날 저녁 화원에서 달을 보고 있을 때에 구름 한 조각이 달을 가렸다.
이것을 본 왕윤이 말하기를
” 달도 내 딸에게는 비할 수가 없구나.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
고 하여 이때부터 초선은 폐월(閉月)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초선은 왕윤의 뜻을 따라 간신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하며 동탁을 죽게 만든 후에 의로운 목숨을 다한다.
◆ 양귀비(楊貴妃) – “수화(羞花)”
『 양귀비의 미모에 꽃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
당대(唐代)의 미녀 양옥환(楊玉環)은 당명 황(唐明皇) 에게 간택돼 입궁한 후로 온종일 우울하게 보냈다.
어느 날 그녀가 화원에 나가서 꽃을 감상하며 우울함을 달래면서 무의식중에 함수화(含羞花)를 건드렸더니 함수화는 바로 잎을 말아 올렸다.
당명 황이 꽃을 부끄럽게 하는 아름다움에 찬탄하여 그녀를 ” 절대가인(絶對佳人)” 이라고 칭하였다.
◆ 조비연(趙飛燕) – “작장중무(作掌中舞)”
『 가볍기 그지없어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출 수 있을 정도였다. 』
중국 한나라 황후 조비연(趙飛燕)
동서고금을 통해서 가장 날씬한 여인으로 불렸다.
“날으는 제비”라는 뜻으로 본 이름 “조의주” 대신 조비연으로 불렸다.
뛰어난 몸매에 가무 또한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않은 그녀는 한나라 성황제의 총애를 받아 황후의 지위까지 오르게 된다.
한번은 황제가 호수에서 선상연을 베풀었는데, 갑자기 강풍이 불자 춤을 추던 조비연이 휘청 물로 떨어지려 하지 않는가.
황제가 급히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는데 춤의 삼매경에 빠진 조비연은 그 상태에서도 춤추기를 그치지 않아서 조비연은 황제의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추었다.
이런 연휴로 “비연작장중무(飛燕作掌中舞)” 라는 고사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했다.
이렇게 임금의 총애를 받은 비연은 세상에 못 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세월은 겨우 10년,
황제가 죽자 조비연은 탄핵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평인으로 걸식하다가 자살로 그 생을 끝맺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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