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zhou

11월 15, 2018

中國南方文化探訪 (20) – 蘇州, 寒山寺



蘇州(소주)


4월 21일(월), 비

07시,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 건너편 식당으로 갔다.
음식을 시키려고 고민하는데 우리나라 말로 거드는 남자가 있다.
연변에 사는데 한국어 시험을 치기 위해 무석까지 왔단다.
연변 근처에는 수용 능력이 모자라 각 도시로 시험장소를 배정하는데 무석까지 왔단다.
한국어 시험에 합격해야만 한국행 취업비자를 받을 자격이 생긴단다.
도움을 받아 음식을 시켰다.

이 사람이 아침부터 해장술이다.
어제 먹다가 맡겨 놓은 것을 달라고 해서 한잔한다.
우리에게도 권하는 것을 사양했다.
조금 있으니 네 명이 들어 왔는데 이들도 시험을 치러 연변에서 온 조선족이다.
09시 무석을 출발해서 10시 05분에 소주 남부터미널에 도착했다.
嘉興行 버스표(27위안)를 확보하고 蘇州城市假日酒店에 숙소를 잡았다.
300위안.



소주는 장쑤성 남동부, 장강 삼각주의 중심부에 있는 도시로 동쪽에는 태호와 인접해 있고 상해에서도 특쾌로 30분이면 닿는다.

소주는 전국 시대인 기원전 514년에 오나라 왕 합려가 둘레 25km의 성벽을 쌓고 도시를 만들어 25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7세기 초 수나라 양제 때 북경에서 항주까지 개통된 경항운하에 연결되어 중국 굴지의 상업도시로 성장해서 엄청난 부를 쌓았다.

시내 곳곳으로 뻗은 아름다운 운하로 말미암아 동양의 베니스라 불리기도 한다.
시내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들어 있는 졸정원, 유원과 이원 등 강남의 아름다운 정원도 있어 중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옛 성벽과 劍池, 망사원, 청량정, 반문 등등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소주는 세 번째 방문이다.
이번에 소주를 방문 한 것은 상해에서 귀국 비행기를 타기 전에 嘉興을 들러보기 위해서 중간 기착지로 들렀다.

소주의 볼거리들은 거의 보았기 때문에 소주 외곽에 있는 寒山寺로 갔다.
비가 계속 내린다.


寒山寺
 寒山寺는 남북조 시대 梁나라 때인 502년에 세워진 고찰이지만 지금의 건물은 1911년에 재건된 것이다.
이 절이 유명한 것은 당나라 때 고승인 寒山과 拾得의 전설이 서려 있고, 당 나라 때 사람 張繼의 “楓僑夜泊”이라는 詩로 더욱 유명해졌다.


법당



寒拾殿


寒山과 拾得 보살상

경내 조형물

聽鐘石
 張繼가 들었던 종소리를 여기서 들으라고 세워 놓은 표지석이다.
그러나 친구가 돈을 내고 종을 쳤으나 종소리가 은은한 맛이 없다.
張繼는 唐 나라(713-756) 때 사람으로 과거에 낙방하고 장안에서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밤이 되어 소주의 강촌교와 풍교 사이 선착장에 도착했다.
풍교에 매어 놓은 객선 위에서 마음이 사름에 젖어 있는데 언덕 위 한산사에서 한밤중에 울려 오는 종소리를 듣고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며 이 詩를 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詩가 유명해졌다.

楓橋夜泊 (풍교야박)
단풍나무 다리에 배를 매어 놓고.

月落烏啼霜滿天 (월락오제상만천)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하늘 가득 찬 서리는 내리고

江楓漁火對愁眠 (강풍어화대수면)
강촌교와 풍교의 고깃배, 불빛을 마주해 시름 속에 자는데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
고소성 밖 한산사로부터

夜半鐘聲到客船 (야반종선도객선)
한밤중 종소리가 객선까지 이르네.
청나라 때 건륭제는 이 시를 읽고 한산사를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산사 입구에는 아주 오래된 江村橋가 있고 오른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楓橋가 놓여 있는데 이곳도 수로 변을 담장을 쳐서 막고 대문을 만들어 놓고 입장료를 내야 들어가 볼 수 있게 유료화했다.
한산사는 20위안인데 강촌교 입장료는 25위안이다.
강촌교 보러 들어가는 것은 포기했다.



江村橋

입장료를 내라기에 밖에서 촬영.
강촌교 오른쪽에 있다는 풍교는 보이지를 않는다.
비 내리는 날 한산사 문 앞에서 강촌교를 보니 장계의 수심에 찬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풍교야박(楓橋夜泊)에 나오는 한산사의 鐘은 청나라 때 일본인들이 약탈해 가고 지금 것은 1907년에 만들어진 것이란다.
함께 간 친구가 돈을 내고 종을 쳤는데 소리가 영 “아니올시다” 이다.

이 종은 한산사의 종을 일본인들이 약탈해 간 후 이토 히로부미가 기증했다는 얘기도 있는다.
소주의 운하를 야간에 배를 타고 도는 경치가 좋다고 해서 시도하려 했는데 비가 너무 내려서 포기했다.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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