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ria – Parmyra – Hama – Halab – Lattaquie

11월 17, 2018

시리아(2)- Parmyra. Hama, Halab(Aleppo),Lattaquie



2005년 5월 31일(화)

다마스쿠스의 까라쥐 불만 버스 터미널 07시 30분. 버스를 타고 팔미라로 출발했다. 1인 $3.
10시15분 팔미라 버스터미널 도착. 인구도 얼마 안 되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관광지를 다니는 대중교통은 없다.
식당에서 택시를 수배해서 2시간 빌리는데 $14.
바알신전, 로마 유적 군, 묘지군 등을 둘러보고 1시에 홈즈로 가는 버스를 탔다.

바알신이 다스리던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는 거대한 페허가 된 고대 세계의 문화 중심부의 하나다.
유네스코는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시리아에서 꼭 한곳을 보라면 팔미라를 보고 중동에서 꼭 보아야 할 곳이라면 페트라와 팔미라다” 라고 하는 말이 있다.

AD 2세기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팔미라는 아시리아인 들에 의해 절정에 달했으며 217년에는 로마에 합병되어 번영을 구가했던 도시국가였다.

267년 남편이 죽은 후 왕위에 오른 Zenobia 여왕이 국위를 떨치며 세력을 확대하고 아들을 황제로 앉히자 271년 로마가 침공하여 멸망했으며 1089년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현재 복원 중인 유적지에는 정방형의 바알 신전과 길 건너 기둥들이 늘어선 대주랑과 아치, 극장 등 로마 도시 건축 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Palmyra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17세기 아랍인들의 城 Quala’at ibn Maan이 있다.



로마 도시 팔미라 입구

열주도로

도로 양옆의 건물 유적

신전유적


멀리 산 위에 17세기에 아랍인들이 세운 칼라앗 이븐 마안 Fort가 보인다.



도시 입구 유적

신전기둥

도시 외곽에 있는 묘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가운데 복도 양편에 시체를 안치할 수 있는 방이 여러 칸으로 나누어져 있고 한 칸에 여러 시신을 층층이 넣을 수 있게 시설이 되어 있다.



무덤 천장


옆 기둥 사이에 층층이 관을 넣게되어 있다.




들판에 무너져 내리는 여러 기의 묘지들이 있다.



성곽 안의 열주들

바알(벨) 신전
성곽 안에 열주로 둘러싸인 중앙 단상에 그리스 양식의 신전이 지어져 있다.
바알 신전을 보호하는 성곽 둘레는 1km


신전의 측면

신전의 후면

이제 Hama로 간다.
중간에 Homes를 거쳐 버스를 갈아 타야 한단다.
1시에 홈즈로 가는 버스가 있다.

점심 먹을 시간이 없다.
터미널 근처에는 식당도 없다.
조금 떨어진 시내 쪽으로 걸어가서 시시케밥 샌드위치를 사 들고 버스에 오르려니 기사가 기다려 줄 테니 먹고 올라오란다.

1시30분에 버스 출발해서
15시15분에 Homes 도착했다.
15시20분 Hama행 버스(Asia Bus) 탑승했다.

짐을 실을 곳이 없어서 가지고 탔다.
기사가 친절하게도 빈 좌석에 짐들을 올려놓으란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요금을 받는데 배낭도 사람과 똑같이 차지한 좌석만큼 요금을 받는다.
대신 승객을 덜 태운다.

16시에 Hama에 도착해서 구시가 중심가에 있는 Cairo Hotel(1실에 $10)에 짐을 풀었다.
싸고 깨끗하다.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다.
오른테스 강변에 공원이 있고 헌편에는 까페도 있다.
맥주는 알코올 않든 것만 만 파는데 호되게 비싸다.

오른테스강에는 여러 개의 거대한 노리아(水車)가 돌아간다.
순전히 흐르는 물의 힘에 밀려 돌아가면서 높이 쌓아 올린 水道로 물을 퍼 올려 급수하여 공원에 물도 준다.
강변의 옛 거리는 중세 분위기를 그대로 자아낸다.



오른테스 강과 노리아

노리아(수차)


수차로 올린 물이 흘러가는 水道.
중간에 공원에다 물을 공급한다.



수차


올드씨티

공원에서 만난 소녀

수차

까페 와 수차
 6월1일(수)

8시에 버스로 Hama 출발하여 알레포로.
여권을 제시해야 버스표를 판다.
Hama 터미널에서 Alepo라고 하니까 모른다.
Halab이라고 해야 알아듣는다.

Halab 가는 도로변은 곡창지대다.
유실수와 밀밭이 끝이 없다.
10시에 하랍에 도착했다.

전형적인 무역로에 자리잡은 Alepo는 히타이트, 몽골, 아랍, 오스만시대의 특징이 공존하는 도시로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알레포는 BC 3세기경 헬레니즘 도시로 건설된 시리아 제2의 도시이다.
지중해와 유프라테스 강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며 아나톨리아의 관문이다.
로마 때부터 교역의 중심지이다.

Souq는 13세기에 지어졌고 오토만 시대에 확장되었다.
좁다란 통로에 빽빽이 들어찬 상점들은 지금도 대상들의 체취가 남아 있는 듯하다.
Souq 안에는 1,682년에 지은 대상들의 숙소가 25개가 있다.

Souq의 북쪽 끝에 대 모스크가 있는데 수리 중 이라서 못 들어 갔다.
동쪽 끝 길 건너에는 Alepo Citadel이 있다.
해자를 끼고 높은 동산 위에 웅장하게 축성된 城 내부는 페허가 되었고 12세기에 지어진 작은 모스크가 형태만 남아 있다.



Souq

Souq

Alepo Citadel

해자를 건너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모스크

城 내부

성 위에서 바라본 알레포 전경

고고학 박물관


알레포에서 시내구경을 하고 항구도시 Lattaquie로 갈 계획이라서 대모스크와 수크 입구의 구멍가게에다가 짐을 맡기고 돌아다녔다.

고성에서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관광하는 한국인 젊은 부부를 만났다.
시리아에서 정부에 납품업을 한단다.

점심때즘 돌아와서 짐을 맡겼던 구멍가게에서 케밥으로 점심을 먹고 나서 계산을 하는데 현지인들의 3배 정도를 받는다.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으니 따질 방법이 없다.

13시25분에 라따뀌에행 버스를 탔다.
도로변의 잘 가꾸어진 밀밭과 올리브 농원을 지났다.
도로사정은 엉망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Asia Bus를 타고 갔는데 중간에 팬벨트를 바꿨다.
버스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서 시리아 얘기도 듣고 현지에 도착해서 안내해 주겠다는 제의도 받았다.
Anti Lebanon 산맥을 넘어 17시20분에 도착했다.

버스가 도착하니 택시 기사가 붙는다.
우리를 안내해 주겠다는 현지인과 몇 마디 실랑이를 치더니 쫓아 버리고 자기 택시를 타란다.
하는 짓이 바가지를 씌우려고 작정한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항구 가까운 조용한 Safan Hotel에 들었다.(1실에 $10).

라따뀌에는 시리아의 지중해 연안도시이다.
서쪽으로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바로 왼쪽에는 이집트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터키와 붙어 있다.

택시가 아토스와 마티스가 많다.
부두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들 대부분이 중국 것이다.
우리나라 컨테이너는 5%도 안 된다.
중국의 발전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저녁에 음식을 해 먹으려고 재료(닭고기)를 사러 다니는데 찾기가 어렵다.
길거리에서 젊은이 두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경계심을 가지고 얘기를 했는데 뜻밖에 친절하다.

여기는 이슬람 국가다.
술을 팔지 않는 나라다. 술은 비이슬람권에서 준비해야 했다.
술도 떨어져 혹시나 살 곳이 없나 했더니 항구도시라서인지 술 파는 곳이 몇 군데 있단다.
가게까지 안내를 받았다.



6월2일(목)

라따뀌에에서 30km 떨어진 Citadel of Salahiddin을 택시로 둘러보고 10시에 홈스로 출발했다.
살라(히)딘성은 완벽한 요새다.
내부는 복원 중이고 입장시간도 되지 않아서 성곽만 둘러보았다.



라따뀌에 항구

살라(히)딘 城 원경
 산 위에 상당한 규모의 성채다.



성벽


양쪽 산을 연결하는 다리의 기둥으로 사용되었던 자연석 기둥.



10시에 라따뀌에 버스 터미널에서 아시아 버스를 타고 홈스로 출발했다.
지중해 연안이라서 농사를 많이 짓는다 .
비닐하우스가 끝이 없다.
12시40분 홈스에 도착, 호텔을 잡고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되고 아름다운 城이라고 하는 Hosn Crac des Chevaliers를 택시로 다녀왔다.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택시와 흥정을 하는데 값이 제각각이다.
옆에서 장사하는 젊은이가 중재해 준다.
적정 가격이라며 요금은 꼭 돌아와서 주란다.
말썽이 나면 자기에게 데리고 오라며 자동차 타는 데 까지 따라와서 부탁한다.
너무나 고맙다.

Crac des Chevaliers는 800년 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城이다.
1,150년에서 1,250년 사이에 건설되고 확장된 이 十字軍 城은 Antakya와 Beirut 사이의 주요 노선을 방어하던 요새로 한 때 4,000여 명이 주둔하고 있었단다.
1,271년에 술탄 Baibar에게 점령당했다.
5m 두께의 정문을 지나 동굴 같은 복도를 통해 내부로 들어간다.
왕녀의 탑 꼭대기에는 전망 좋은 까페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城(요새)
 Syria는 아시아 대륙 남서쪽 가장자리의 지중해 동부연안에 있는 국가다.
남북 길이는 500km, 동서 길이는 470km이다.
북쪽으로는 터키, 동쪽과 남동쪽으로는 이라크, 남쪽은 요르단, 남서쪽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서쪽은 지중해와 경계를 이룬다.
골란 고원이 영토에 포함되나 1967년 중동전쟁 참여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후 지금에 이른다.




국가명 : Syrian Arab Republic.
면적 : 185,180평방km.
인구 : 2,219만.(2010년)
종족구성 : 아랍인 89%, 쿠르드인 6%, 기타 5%.
수도 : Damascus.
언어 : 아랍어, 쿠루투어, 아르메니아어.
종교 : 이슬람 90%(그 중 수니파 74%), 크리스도교 10%.
화폐 : 시리아 파운드.(1$;46.75 파운드)(2010년)
1인당 GDP : us$2,668(2009년)
자원 :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 변과
북부에서 농업. 적은 양이지만 석유, 천연가스, 철광석.
<略史>

BC 1만 년 전 부터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 있으며,
BC 16세기경에는 이집트, BC 14세기에는 히타이트, BC 538년에는 페르시아 제국이, BC 333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하였고,
BC 164년부터는 파르티아인과 나바테아인들에게 분할되었다.

BC 64년 로마는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하나의 주로 병합해서 안티옥을 수도로 삼았다.
AD 300년경 비잔틴으로 넘어간 후 634년 이슬람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 황금기를 누렸다.

877년 이집트에 병합되어 6세기 이상을 그 지배하에 있었다.
1516년 오스만 투르쿠가 점령하여 300년 가까이 지배했다.
1차대전 때 아랍군의 도움으로 영국이 점령하였으나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의 위임통치를 받았다.

1925년 인민당이 결성되어 독립운동을 시작했고,
1936년 시리아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2차대전 발발로 영국과 프랑스가 다시 점령했다.

1941년 다시 독립선포,
1943년 선거로쿠데통령 선출,
1949년 무혈 쿠데타로 정권 교체.
1954년 쿠데타로 정권교체,
1961년 쿠데타로 정권 교체되었고
1964년 바트 군사독재정권이 수립되어 오늘에 이른다.

1967년 아랍 – 이스라엘 전쟁에 참여했다가 골란고원을 빼앗겼다.
1970년 하피즈 알 아사드가 정권을 잡고
1971년 대통령에 취임하여 지금까지 정권을 잡고 있다.
1970년 중반 레바논 내전에 간여하여 약 2만 명의 군대를 파견하였다.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여 충돌이 많았으며 레바논 각 지역을 지금도 점령하고 있다.



*. 십자군 전쟁.
십자군 전쟁은 1095년부터 1291년까지 약 100년 동아 8차례에 걸쳐 그리스도교군인 십자군(Crusade)이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이슬람교를 공격해서 벌어진 전쟁이다.

11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예루살렘과 동방 성지 순례가 유행했으나, 셀주크 투르크가 그리스도교의 성지 순례를 방해하자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명목하에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다.

1095년 유럽에서는 제1차 십자군이 소집됐다.
십자군은 1099년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팔레스타인 해안의 거점 지역에 그리스도교 국가를 건설했다.
그러나 재차 소집된 십자군들은 매번 패전을 거듭했으며, 1,187년에는 이슬람군의 지도자 살라딘(Saladin)에게 예루살렘을 뺏기고 말았다.

살라딘은 쿠르드족 출신의 이슬람 술탄으로 아랍세계의 대표적 영웅이다.
아이유브 왕조를 창시하고 이슬람 세계를 통일시킨 인물로, 뛰어난 전술로 십자군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으며 포로로 잡힌 그리스도교인들을 너그럽게 풀어주는 관용을 보이기도 했다.

살라딘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것이 알려지자, 유럽에서는 제3차 십자군이 조직되었다.
제3차 십자군의 가장 유명한 인물은 영국의 사자 왕 리처드 1세(Richard the Lion heart)로, 그는 1,192년 살라딘과 그리스도교인의 성지순례를 허용하는 평화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후 십자군은 급속히 변질하기 시작했다.
1198년 소집된 제4차 십자군은 베네치아에서 빌린 군자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되자 베네치아인들의 의뢰를 받아들여 아드리아 해에 있는 그리스도교 도시 자라(Zara)를 점령했으며,
1204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하기도 했다.
1212년에는 어린이들이 성지를 탈환하겠다고 나서 소년 십자군이 구성됐는데, 이들은 도중에 실종되거나 노예로 팔려갔다.

이후에도 십자군 원정은 계속 시도되었으나 단 한 번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 횄다.
1291년 현재 이스라엘인 옛 시리아 영토 아크레(Acre)가 이슬람인들에게 함락되면서 십자군운동도 종결됐다.
십자군 원정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으며 이로 말미암아 교황의 권위가 실추됐고, 대신 왕권이 강화 돠면서 절대 왕정 시대가 열리게 됐다.
(서진근 편저, 192 유엔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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