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k Road – Xian (2)

11월 28, 2018

실크로드 대장정(4) – 시안(西安2)



2005년 7월 31일 (일)

法門寺
후한 영제 때 건립되어 1,8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고찰로 부처의 손가락 사리가 보관되어 있다.

唐 나라 때는 황실 사찰로 격상되어 목탑이었던 진신사리 탑을 13층 전탑으로 개축했다.
唐 나라 멸망 후 역사 속에 묻혔던 법문사는 사리탑이 1,981년 8월 지진으로 일부가 무너지고 1,986년에 나머지가 붕괴하였다.

산시 성 당국은 무너진 탑을 재건하기 위해 1,987년에 발굴했는데 지하에 궁전이 있는 것을 발견했고 수많은 보물을 발굴해냈다. 현재의 사리탑은 개축한 것이지만 지하궁전을 복원하여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법문사 박물관은 탑 지하궁전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법문사 珍寶陣列室과 역사문화진열실 두 곳이 있다. 진보진열실의 보물들은 진품으로 대단히 아름다워 꼭 볼만한 가치가 있다.

법문사는 시안에서 서쪽으로 120km 떨어져 있다.


법 문사 박물관
 寶陳列室의 보물들은 진품으로 대단히 아름다워 볼만하다.



법문사

대웅보전

대웅전 부처님

법문사 탑
 오늘은 西安 시내를 걸어서 돌아보기로 했다. 날씨가 매우 덥다. 慈恩寺로 갔다.



慈恩寺와 大雁塔

자은사는 648년 唐 나라 3대 황제 고종이 황태자 시절  어머니 문덕 황후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지은 황실사찰이다. 당나라 말기에 전란으로 소실되고 대안 탑만 남은 것을 복원한 것이다.

자은사 경내에 있는 대안 탑은 645년 삼장법사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1,335권의 불경을 번역 보관하기 위해 652년에 지은 탑이다. 현장은 11년간 이곳에 머물면서 불경을 번역했다고 한다.

현장은 처음에 인도양식으로 5층 탑을 창건했고 무측천 때 10층으로 재건되었으나 전란 중에 3개 층이 무너져 701년에 7층 전탑으로 개축하면서 당 나라양식의 전탑이 되었다.




大雁塔


스님의 표정이 아주 인자스럽다. 정수리에 九戒를 받은 흔적이 확연하다.



大慈恩寺

대웅전

대웅전 보존불

三藏院

삼장원 벽화
 현장이 인도를 다녀오는 모습을 그렸다.



삼장원 벽화

玄莊像

현장의 서역 탐방 경로도
 현장은 10세에 뤄양 정토사(淨土寺)에 들어갔으며, 13세에 승적에 올랐다.
장안(長安) ·청두[成都]와 그 밖의 중국 중북부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불교 연구에 진력한 뒤,
많은 의문을 풀기 위하여, 또한 불교 경전을 가져오기 위해 627년(일설에는 629년) 인도로 떠났다.

도중 지금 위구르 자치구 투루판 근처에 있던 고창국(高昌國) 왕 국문태(麴文泰)의 대접을 받았으며,
인도에 도착한 후 나란다 사원에 들어가 계현(戒賢:시라바드라) 밑에서 불교 연구에 힘썼다.

641년 많은 경전과 불상을 가지고 귀국길에 올라, 힌두쿠시와 파미르고원의 두 험로를 넘어 호탄을 거쳐서 645년 정월에 장안으로 돌아왔다.
태종(太宗)의 후원을 받아 74부 1,335권의 경전을 한역한 이외에도, 인도 여행기인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12권)를 저술하였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삼장법사라는 호칭은 불교 성전인 경장, 율장, 논장에 정통한 사람을 경사, 율사, 논사라고 하며, 삼장 전부에 정통한 사람을 삼장비구, 삼장성사라고 하였는데, 특히 유명한 것이 삼장법사라는 호칭이다.

명대의 장편백화소설인 오승은의 『서유기』가 세상에 나온 후에는 삼장법사라고 하면 제자인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을 데리고 천축으로 고난의 구도 여행을 한 구법승, 현장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陝西 歷史博物館

1,500m나 되는 관람 루트를 따라 선사시대부터 漢代., 水 唐, 宋 元 明 淸代 순으로 진열품을 감상하려면 족히 한나절은 걸린다. 볼만한 유물들이 많다.




박물관


시대별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六六幻方은 외지에서 들어온 것으로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6칸씩 36칸에 1부터 36까지의 숫자를 중복없이 써 넣고 그 합이 111이 되는 숫자 조합이다. 사악한것을 피하기 위해 건축물 부지에 묻었다고한다.



碑林

비림은 섬서 성 역사박물관 일부다. 비림은 1,087년 북송 때 唐 나라의 開城 石 經을 보호하기 위해 文廟  뒤에 옮겨 보관하면서 시작되었다. 唐 玄宗의 御註孝經碑와 안진경, 구양수, 저수량 등이 쓴 비석을 그 주위에 모아 보존하고 있다. 부지 내에는 漢 代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돌 비석과 묘 비문 등 1,0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비문들은 제작시대에 따라 분류 전시되고 있는데 한번 몰만 하다.



비림 박물관



문묘 뒤편에 비석들을 모아 놓았다.





탁본하는 사람

건물 밖 석주들
 수많은 동물의 두상을 조각한 석주들은  말을 매어두는 역할을 했을 것이란다.



鐘樓

시가지 중심부 동서남북 대로의 중앙에 세워져 있다.  종루는 시간을 알리는 역할 외에도 전시에는 전망대와 사령부의 기능도 했단다.



종루


종루 야경
 鼓樓

종루의 서쪽에 있고 종루보다 4년  먼저 지어졌다. 지금은 종루에서 종을 쳐서 아침을 알리고 고루에서 저녁을 알리는 북을 울린다. 晨鍾暮鼓 의식을 행한다.




고루


고루 야경
 淸眞大寺

시안에 이슬람교도들이 대거 거주하면서 이슬람 거리를 형성했다. 시안에는 몇 개의 이슬람교 사원이 있는데 청진대사가 그중 제일 규모가 크다. 12세기에 창건된 이 사원은 건물양식은 중국식이나 경내에 동물의 형상이나 그림이 없고, 예배당은 東西로 문을 내서 서방의 성지를 향해 예배할 수 있게 했다.



청진대사 주변에는 지금도 이슬람풍의 건물들이 많이 있으며 이슬람 교도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청진대사 가는 골목


청진대사



이슬람 교도를이 예배를 드리고 나온다.



성심루
 아름다운 건물이다.



성심루

예배당
 西安城墻(明代城壁)

서안성 벽은 唐代에는 성벽의 길이가 東西 9.5km,  南北으로 8.5km로 총 18km 규모였으나 지금의 성벽은 明代(1,370-1,378년)에 唐의 長安 城을 기초로 하여 벽돌을 쌓아 축성하면서 지금의 규모가 되었다. 성벽의 길이가 14km, 높이 12m, 윗부분의 폭 12-14m로 東西가 길고 南北이 짧다.

성벽에는 東 西 南 北 에 문이 있으며 南門(明德 門)과 西門 (安定 門)만 통행이 가능하다. 남문 성루에 올라서면 종루로 벋은 대로가 한눈에 들어오고 서문 城樓에 올라서면 서방의 실크로드로 나아가는 길이 보인다.




남문(明德門) 문루

남문(明德門)

남문 성루로 올라가는 계단

남문 문루

성벽위의 길

서안성장의 문루

서안성장의 문루

서역으로 떠나는 대상의 석상


우리도 내일 이 길을 따라 실크로드를 따라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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