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k Road – Turfan(2)
11월 28, 2018실크로드 대장정(12) – 투루판(2)
高昌古城
실크로드 길목에서 한때 번영을 누렸던 고창왕국의 성터다.
투루판 동쪽 40km 지점에 있다.
화염산에서 22km이다.
고창성은 BC1세기에 건설되었다.
기원전 1세기, 전한 시대에는 둔전 부대를 두어 변방을 지켰고 위, 진나라 때도 교위를 두어 지켰다.
460년 – 640년간 고창왕국의 도성이었다.
고창국은 고 657년 당태종이 소정방을 시켜 정벌함으로써 멸망했다.
원나라 말기에 전화로 폐허가 되었다.
현장법사가 인도로 가는 길에 630년 2월경 고창국에 도착하여 고창 국왕 鞠文泰의 환대 속에 두 달을 머물면서 법회를 열고 설법했다고 한다.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돌아올 때 다시 고창국을 방문하려 했으나 이미 당나라에 멸망한 뒤였다고 한다.
외성, 내성, 왕성의 세 겹으로 되어있었다.
성벽의 둘레가 5km이다.
고창고성 입구 |
매표소 |
현지 복장의 어린이 |
고창고성 |
관광마차 |
마차 관광 |
고창고성 |
출구 상가 앞 풍경 |
아스타나는 위구르어로 ‘휴식의 장소’라는 뜻이다.
Astana 고분군은 3 – 8세기 고창국과 당나라 귀족들이 500년간 사용한 공동묘지다.
아스타나 고묘군(阿祈搭那古墓群), 일명 카라 호저 고묘군은 투루판 남쪽 40km 지점에 있다.
이곳의 묘지는 비탈진 參道로 내려가 지하에 묘실이 있으며 가장 오래된 것이 273년(晋 나라), 그 후 唐代인 778년까지 있다. 북경 왕가 출신의 부인 팽씨, 고창 태수, 고창국 장수 장웅 등 고관과 일반인 무덤 500여 기가 있다.
3기가 공개되고 있는데 2기에는 6쪽 병풍이 채색화로 그려져 있고 1기에는 2구의 미라가 있다.
아스타나 고묘 입장권 |
아스타나 고묘 |
들어가는 길 양편의 석상 |
발굴 묘 설명문 |
묘실로 내려가는 통로 |
묘비 – 무덤에서 발굴된내용이 기록되있다.
지하고묘 묘실의 채색벽화 |
지하고묘의 묘실의 채색벽화 |
이 지역에 없는 남방의 화초와 새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묻힌 사람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렸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묘실의 벽화 |
미라 |
발과 발가락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미라는 모조품이고 진품은 우루무치 박물관에 가야 본다.
交河古城
교하고성
투루판 서쪽 10km.
두 개의 하천이 만나는(交河) 한가운데 언덕 위에 세워진 요새.
성벽 둘레가 3.75km, 길이가 1.78km이다.
기원전 108년부터 기원후 450년까지는 車師왕국의 왕성이었다.
당나라 때 서역 최고의 군사기구인 안서 도호부(640-658)가 설치되었던 곳.
6세기 초 고창왕국 시절에는 交河古城을 축조하였으나 현재의 것은 당나라 이후에 건축된 것이다..
元末 明初 戰禍로 폐허가 되었다.
교하고성 입구 박물관에 있는 사진 |
교하고성 입구 |
교하고성의 성터 |
소공탑(蘇公塔) |
이슬람 사원 옆에 세웠다.
투루판 호텔 뒷마당 포도나무 그늘에서 민속 쇼 |
포도를 따 먹으면 벌금이 100위안이란다.
투루판 박물관
사진은 못 찍고 둘러만 보았다.
1층에는 공룡화석 전시실.
2층은 생물 발생 및 진화도. 고창왕국 유물. 아스타나 고분에서 나온 많은 미라가 전시되어 있다.
우루무치에서 쿠차를 거쳐 카슈로 가는 기차를 예약하려고 중국여행사에 상의했더니 5장에 수수료를 800위안 내란다.
터무니없이 달래서 돌아 나오니까 470위안을 달란다.
그러면서 돈을 먼저 주면 우루무치에 가서 사온단다.
믿기가 어렵고 수수료도 너무 비싸다.
대개는 1인당 20-30위안 이면 호텔 프런트에 부탁해도 되는데 방학 시즌이라서 미리 확보하려고 했는데 포기하고 우루무치에 있는 한국 사업가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출발역이 아니면 예매를 할 수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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