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k Road – Taxila

11월 28, 2018

실크로드 대장정(21) – 탁실라(Taxila) – 간다라문명의 발상지



간다라 지방이라고 하면 아프가니스탄 국경에서부터 인더스 강을 따라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 국경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지칭하는데 그 중심 도시가 탁실라이다.

탁실라는 이슬라마바드 서북쪽으로 자동차로 40여 분 거리에 있는 간다라 문화유적의 보고이다.

이 지역은 이미 BC 6세기경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BC 4세기경에는 알렉산더의 침략을 받았다.
알렉산더 왕은 이 지역 토착 세력인 암비 왕과 협력해서 주변을 평정하고 돌아갔다.

알렉산더가 물러간 후 100년이 지나 BC 3세기경에는 인도 북부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의 지배를 받았다. 아소카 왕은 인도 통일전쟁 때 수많은 사람을 죽인 것을 참회하고 불교에 귀의해서 적극 불교를 보호하고 전파시킨 왕이다.

그 후 BC 2세기경에는 그리스계의 박트리아인들이 나라를 세워 그리스 문화를 전파했으나

나중에 불교를 받아들여 불교문화를 번성시켰다.

이처럼 수많은 민족이 거쳐 가면서 동서양의 문화를 융합시켜 간다라 미술이라는 독특한 문화유산을 남기게 되는데 그 중심 도시가 탁실라이다.

탁실라 박물관을 중심으로 반경 수 킬로가 모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는 수십 개의 유적 중에서 Bactria Greeks 성벽도시인 Sirkap, 조로아스터 유적 위에 세운 그리스 신전 유적이 있는 Jandial, 아소카 왕 때 세운 스투파가 있는 Dahrmarajika, 수도승의 방에서 발굴된 스투파가 있는 수도원 Mohra Moradu, 인도 양식이 아닌 스투파와 불상 조각이 있는 Jaulian 등을 돌아보았다.


탁실라 박물관

박물관 정원 풍경

탁실라 박물관에 있는 어린이 두상

아소카 왕이 스리랑카로 보낸 보리수에서 가지를 가져와 심은 보리수

스리랑카에서 분양 받아온 보리수

Sirkap : BC 2세기에서 AD 2세기까지 번성했던 그리스 왕조와 쿠샨 왕조의 유적
 주거지와 상가로 추정되는 석축이 남아 있고 돔 모양의 스투파도 있다.



Sirkap 안내문

Sirkap 도시유적 입구
 맨 아랫 부분은 페르시아 양식,

중간은 BC 3세기경의 Greek 양식,
윗부분은 AD 2세기경의 인도의 샤카양식으로 쌓았던 유적.




시대별 축석 형태

도시로 들어서며

주거 터 유적
 직선 도로를 따라 양쪽으로 주거지와 상가가 늘어서 있었을 것이란다.
Bactrian Greeks의 성벽도시 Sirkap., BC 2세기경.
박트리아는 힌두쿠시산맥과 아무다리야 강 사이에 고대 그리스인이 세운 나라다.(BC246 – BC 138)



주거 터 유적

스투파가 있던자리

Jain Stupar(자이나교 유적)

둥근모양의 스투파

입구 쪽으로 돌아서서 본 유적군

양치기
 한낮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다.



그리스 양식의 Zandial 사원 유적
 Sirkap 북쪽 길가 Jandial에 있는 Greek Temple 유적.



그리스 양식의 Zandial 사원 유적

장례 행렬

Mohra Moradu 사원
 Taxila 제3의 고대도시 Sirukh(시루스후) 남동쪽  1.5km에 있다.
고대 불교사원과 묘지(스투파)가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다.



Mohra Moradu 사원




욕장과 승방
 Mohra Moradu Monastery.
가운데 네모난 곳은 몸을 씻는곳이고 그 주변에 명상하는 방들이 나란히 붙어 있다.




浴場과 暝想室


이탑이 발견된 승방에 살던 師父에게 봉헌된 것으로 생각되는 탑이다.



奉獻塔
 박물관 북동쪽 5km 지점에 있는 Monastery “Mahra Moradu”에 있는 탑.
기단은 둥근 모양에 조각이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둥근 원반 모양을 올려 쌓은 스투파.
박물관에 똑같은 것이 있는데 서로가 진품이란다.




피플란은 1980년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불교유적이지만
무너진 흔적뿐 별로 볼 곳이 없다.



피플란 안내문




유적



수로

수로 위에 한가로운 양 떼

Jaulian
 쿠샨왕조 시대의 사원.
모흐라 모라두 동쪽 언덕에 있다.


Jaulian 안내문

승방과 욕장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마도 2층이나 3층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Mohara Moradu 동쪽 언덕에 있는 Jaulian에는 나지막하고 네모난 스투파와 여러 양식의 불상 조각이 있는 유적이 있다.

원래 석가무늬는 제자들이 물었을 때 나의 언행을 믿고 따르지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해서 불상이 없었으나 이곳 간다라 지방에서 AD 1-2세기 경 불상이 만들어지가 시작했단다.
부처님 열반 후 700여년 후의 일이다.



스투파 기단에 새겨진 불상
 의상이 그리스식이다.



스투파 기단에 새겨진 불상
 의상이 인도식이다.



스투파 기단의 불상

스투파 기단의 불상
 외진 구석에 있어서 보존상태가 거의 완전하다.



Stupa
 Jaulian에 있는 수투파로 인도의 수투파와는 완연히 다른 모양의 사각형 수투파들.



Stupa

아소카 왕이 세운 스투파 Dharmarajika
 Ashoka왕 때 세운 Original Stupa가 있는 Dharmarajika.
박물관 동쪽 3km.



아소카 왕이 세운 스투파 Dharmarajika





아소카 왕이 세운 스투파 Dharmarajika를 둘러싼 기단 군데군데 있는 둥근 기둥



스투파 흔적들



祈禱所






이슬라마바드의 파이잘 모스크.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잘 왕이 5천만(5백만?) 달러를 지원해 주어서 지었단다.

터키 사람이 설계를 했고 1만명이 들어갈 수 있는 예배당과 밖의 테라스와 복도에 5만7천명이 예배를 드릴 수 있단다.


모스크


테라스 청소


모스크 테라스.

예배당으로 들어가전 씻는 곳
인더스 강과 히다스페스 강 사이에 있는 탁실라는 현재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번영했던 고대 왕국이며 간다라 문명의 발상지다.

기원전 5세기부터 서기 2세기까지, 이곳은 동서양의 세력들이 교차 지배하여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으면서도 불교문화가 주류를 이루어 불교학문의 중심지로서 예술, 철학, 종교, 문화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여러 나라에 알려진 도시였다.

그리고 여러 갈래에서 오는 무역로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어 탁실라에는 간다라문명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졌으며 지금도 동서문화가 섞인 유적이 많이 남아있어 고고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지역이다.

우리는 파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가는 실크로드의 한 갈래 길목에 있는 국경도시 페사와르로 갈 예정이었으나 페스와르에서 온 우리나라 여행객으로부터 치안상태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페사와르를 포기하고 바로 라호르(Lahore)로 가기로 했다.

<세계의 핵 보유국>

핵무기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지만, 그 가공할만한 파괴력 때문에 정작 실전에서는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핵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군사적으로 뿐 아니라 정치, 외교적으로도 상당한 강국 대우를 받게 되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핵을 보유하고자 한다.

현재 NTP(핵확산 금지조약)에 의해 공식적으로 핵무기 뵤유를 인정받고 있는 나라는 UN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국이다.
그 밖에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이 실질적인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란과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나라들이다.

인도는 이웃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그리고 카슈미르 지역을 두고 여전히 분쟁을 거듭하고 있는 파키스탄과의 군사력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다.

인도의 핵 보유에 자극을 받은 파키스탄은 핵무기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마침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중동 지역에 미국의 거점이 필요해 졌고, 친미 국가인 파키스탄은 미국에 군사거점을 제공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핵무기 개발에 관한 지원을 받아냈다.

결국 파키스탄은 1997년 핵무기 보유를 국제사회에 선언했고, 1998년에는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핵보유국 대열에 끼게 되었다.
현재 파키스탄은 약 90기 가량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잇다.

2007년 12월 27일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전 총리가 암살당하자 전 세계가 크게 술렁인 이유 중 하나도
파키스탄이 핵보유국이기 때문이었다.

정국이 혼란스러워진 가운데 극단적인 테러 단체에 핵이 유출 될 경우 테러단체가 핵을 빌미로 국제사회를 협박할 가능성이 높고, 만에 하나 실지로 핵무기가 사용됐을 경우 1945년 히로시마 참사의 몇 십 배에 달하는 재앙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서진근 편저 193개국 UN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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