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k Road – Srinagar
11월 28, 2018실크로드대장정(28) – 스리나가르(인도 서북부의 휴양지)
9월 3일(토)
깜깜한 새벽 4시에 카길을 출발 스리나가르로 향했다.
히말라야의 서쪽 끝자락 고개(3,249m)를 넘고 1시간 30분을 달려 차량 통제소에 도착했다.
대형 트럭 100여 대가 줄지어 기다린다.
5시 30분에 일방통행 통제구역 통과.
여기까지는 그래도 도로상태가 좋은편이다.
오후에는 스리나가르에서 카길로 오는 길만 일방통행으로 열린다.
서서히 날이 밝아 온다.
해발 3,200m가 넘는 비포장 일방통행 High Way를 달린다
Sonamarg까지 두 시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험한 산악도로를 달리는것이다.
수백 미터의 낭떠러지 위로 수직으로 실타래처럼 만들어 놓은 도로를 달린다.
우리가 탄 차는 도로사정이 허용하는 한 최대의 속력을 내며 계속 추월한다.
신호를 보내면 앞차가 안전지역에서 양보해준다.
내가 앞에 앉았기 때문에 기사에게 Slowly 소리를 연방 지른다.
오른쪽 종아리가 아파져 온다.
있지도 않은 브레이크를 밟아 댔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대형화물차 들인 데 우리 승합차가 빵빵거리면 추월을 시켜준다.
그런 길을 두 시간 반.
이제 내리막이다.
우리는 히말라야 서쪽 끝자락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카길에서 소나마르그로 가는 비포장 도로로 화물차가 위태롭게 달린다.
해발 3,000m가 넘는 산 허리를 잘라 도로를 만들었다.
비포장 일방통행이다.
한쪽은 수백미터가 넘는 낭떨어지다.
7시 40분에 Sonamarg에 도착했다.
짜이 한 잔에 짜파티로 아침 식사.
일행 중 한 분이 처음에는 겁이 났는데 포기해 버리니까 마음이 편하시더란다.
우리 차 기사는 일방통행 시간 때문에 오늘 카길까지 되돌아 갈려고 전속력으로 달린 것이다.
오는 도중에 무장 군인들이 깔렸다.
카슈미르 분쟁지역임을 실감했다.
소나마르그에서부터 5m 간격으로 군인들이 배치돼 있고 중요 포인트마다 검문 검색을 한다.
스리나가르가 가까워질수록 검문이 심해진다.
우리는 라다크 지방에서 카슈미르지역으로 넘어온 것이다.
카슈미르지역이 분쟁지역으로 된 것은 1947년 인도-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카슈미르주의 영주는 힌두교도로 단독으로 인도에 귀속을 결정했다.
이슬람교도인 대부분의 주민은 파키스탄 편입을 희망했었다.
이슬람계 주민은 거세게 항의하면서 무장집단을 만들었다.
특히나 스리나가르 지역은 분리독립을 원하는 게릴라들이 90여 단체가 넘는단다
이 카슈미르지역의 인도 귀속문제가 현재까지도 양국 간에 해결을 보지 못한 채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다.
스리나가르는 잠무카슈미르주의 주도다.
해발 2,740m에 있는 마을 Sonamarg에서 스리나가까지는 84km.
주변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아름다운 산세와 침엽수들,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는 소와 말, 양 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알프스 산중의 어느 마을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다.
소나마르그에 가까워지면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소나마르그 들어가기전 풍경 |
소나마르그에서 만난 이슬람 학생들 |
우리가 빌린 지프 |
Dar Lake를 오른편으로 끼고 달려 시내로 들어가 Old Town에 호텔을 잡으려니까 매연과 소음 때문에 있을 곳이 못 된다.
포기하고 Dar Lake 옆 언덕 위에 있는 호텔을 잡았다.
Dar Lake 주변에는 새로 지은 호텔들이 즐비하다.
House Boat도 많고 가격도 싼데(400루피 내외) 육지로 이동할 때 불편한 점이 있을 것 같아서 조금 더 주고 육지에 호텔을 잡았다.
House Boat는 영국인들이 이 휴양지에 집을 지으려 했지만, 인도정부가 허가를 내주지 않자 보트를 띄우고 그 안에서 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영업을 위해 수많은 하우스 보트가 있다.
여장을 풀고 바로 앞에 있는 시카라(관광용 작은 보트)를 시간당 100루피에 저녁 6시부터 2시간을 빌렸다.
너무나 환상적이다.
원시림 속을 배를 타고 다니는 기분이다.
오래된 휴양지 맛을 그대로 즐긴다.
수로들이 여러 갈래로 Old Town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수로 옆 물가에 집들이 들어서 있다.
조각배가 교통수단이다.
여자고 어린이고 모두 배를 젓고 다닌다.
장기간 여행의 마지막 장소로 너무나 멋이 있다.
하루 더 있기로 했지만 소음과 먼지투성이인 시내는 간단히 몇군데만 보고 내일 저녁에 한 번 더 타기로 했다.
스리나가르로 들어가면서 |
Dar Lake |
관광객을 태우는 시카라 |
호수풍경
House Boat |
교통수단이 작은 배이므로 누구나 자신이 노를 젓고 다닌다.
무굴정원 NISHAT |
Chashma Shahi는 샤 자한이 건설했고,
Nishat Bagh는 1633년에 조성했으며,
Shalimar Bagh는 자항기르 황제가 왕비 누르자한을 위해 만들었단다.
릭샤를 타고 샤 자한이 조성한 Chashima Shahi로 갔다.
경비가 삼엄하고 비데오 촬영이 금지다.
아름다운 정원을 울타리 너머로 구경하고 Nishat Bagh로 갔다.
정원 풍경 |
계단식 폭포 |
9월 5일 스리나가르에서 13시 20분 비행기로 델리로 가서 20시 20분 델리 출발.
9월6 일 04시3 8분 홍콩을 거쳐 12시 20분 인천에 도착함으로써 43일간 대장정을 무사히 끝마쳤다.
스리나가르에서 델리로 오는 비행기를 타는데 공항 정문에서부터 비행기를 탈 때까지 검색 5회.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사람을 바꿔가면서 검색을 한다. 분쟁지역임을 실감했다.
우리다 다녀오고 10여 일 후 스리나가르 서쪽 70km 파키스탄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구호를 하려고 해도 접근로가 마땅치 않단다.
스리나가르가 거점이 되어서 구호활동과 취재가 추진됐단다.
우리가 쿤저랍 패스를 넘어서 이슬라마바드까지 갔던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평소에도 낙석이 심했는데 이번 지진에 도로가 온전했는지 보도가 없어서 대단히 궁금하다.
카길에서 소나마르그로 넘어오던 Hlgh Way는 귀국한 후에도 가끔 생각이 나면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꿈도 한 번 꾸었다.
꼭 6주일간의 여행이었다.
7월 2일에
용인 민속촌 앞 쌍용아파트를 출발해서 버스로 인천에 도착.
인천에서 배를 타고 중국 청도에 내려 육로로,
정주, 낙양, 서안, 난주,주천(가욕관),돈황, 하미,투루판,우루무치, 쿠차, 카스, 타쉬쿨칸에서 중국을 빠져나와 쿤저랍 패스를 넘어 소스트로 파키스탄에 입국하고 칼리마바드(훈자), 길깃, 스카루드, 이슬라마바드(라왈핀디), 탁실라, 라호르에서 파키스탄을 나와서 인도의 암리차르로 들어가 델리, 레, 카길, 소나마르그, 스리나가르에서 여행을 끝냈다.
26개 도시를 다닌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다.
버스로, 기차로, 비행기를 타고 다녀도 40여 일이나 걸리는 코스를 옛날 대상들은 낙타를 몰고 사막을 통과하고 4,700m가 넘는 고개를 넘어 왕래하였던 것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난관을 헤치며 왕래하게 하였는지 궁금하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인가?
거기에다 나처럼 이국 풍물에 대한 동경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행기 쓴 사람들도 많고 자료도 많아서 구하기가 쉽기 때문에 간단한 설명을 곁들인 사진을 중심으로 여행지를 소개하였다.
블로그에는 사진용량이 제한을 받아서 횟수를 늘렸지만 그래도 더 많은 사진을 싣지 못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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