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 Minority Race
11월 28, 2018빠메이촌(파美村 = 世外桃源)
빠메이촌(파미촌)
운남성 문산주 광남현 첩첩산중에
自古以來 석회암 동굴을 통과하지 않고는 외부와 연결될 수 없는 곳에 소수민족 壯族 마을인 빠미촌이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소금만 있으면 외부 세계와 연계될 이유 없이 자급자족을 하며 부족함이 없는 즐거운 삶을 누려 왔단다.
광남에서 저녁을 먹고 빠미촌으로 가는데 계속 험한 산길이 비포장이다.
1시간 반 만에 9시가 조금 넘어서 동굴입구에 도착했다.
동네사람 10여명이 나와 기다린다.
5-6명이 탈 수 있는 배들이 늘어서 있다.
사방에서 개구리 소리가 요란하고 반딧불들이 우리를 반긴다.
작은 배를 삿대로 밀면서 동굴을 지나간다.
이 동굴이 桃源洞이다.
A자형 동굴을 랜턴 불을 비추며 간다.
암초가 깔린 석회암 동굴 속은 배 젓는 소리만 들린다.
어두워서 동굴내부는 볼 수 없었지만 종유동굴인 것은 틀림으나,
지금은 물이 떨어지지 않아 죽은 종유굴 이란다.
배를 타고 가는데
군데군데서 동네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느라고 그물을 치고 있다.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잘도 알아본다.
동굴 내부에는 좁은 여울과 광장이 있다.
세군데 천정이 뚫어진 곳에서는 하늘의 별빛이 비춰든다.
이 동굴에는 박쥐와 제비, 반딧불이 공존하고 있었으나
최근에 박쥐가 어디론가 가 버렸단다.
20여분을 배를 타고 동굴을 빠져 나가 마을 입구에 다다른다.
산 밑으로 난 좁은 길을 5분정도 들어가니 마을 한가운데 광장에서는 장작불을 지펴 놓고, 그 빛을 조명 삼아 관광객을 위한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삼중창 한곡, 군무 세 장면을 보았다.
순서가 끝나는 것 같아서 가이드를 통해서 조금 더 진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총각 처녀가 상대를 고를 때 화답하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출연진은 모두가 동네 젊은 여자들로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학예회를 보는 기분이다.
관객은 한족 몇 사람, 우리 일행과 동네 사람들이다.
주민들의 환영 쇼 |
출연진- 동네 아줌마 아가씨들이다. |
마을 쇼에 출연한 여인들 |
처녀도 있고 부인들도 있다.
순박한 표정은 초등학교 학예회를 연상시킨다.
이 마을은 송나라 때 전쟁을 피해 들어온 壯族들이 수백 년 동안 외부세계와 큰 접촉 없이 자급자족을 해 왔기 때문에 마을의 전통문화가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다.
지금도 옛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기위해 전기를 공급 하지 않아 호롱불로 밤을 밝힌다.
우리가 묵을 민박집으로 안내되어 올라갔다.
차가 한잔씩 나온다.
자기 집에서 담갔다는 술이 나오고 장아찌 같은 반찬과 이 마을 최고의 정력제(?)라며 우리의 쥐눈이콩 만한 작은 흰콩을 볶아 내온다.
2층 침실로 올라가니 나무 침대가 놓여 있다.
침대마다 모기장이 쳐져 있다.
환영연 |
최고의 정력제라는 쥐눈이콩자반이 안주다.
자리에 누었는데 김중석 회원이 별을 보러 가겠다고 내려간다.
광장에서 공연을 볼 때
유난히도 밝은 초승달과 별들을 본 생각이 나서 따라 내려갔다.
주인집에 얘기해서 마당에 자리를 깔고 누워서
보석을 뿌려 놓은 듯 반짝이는 별들을 쳐다보다가 집 밖으로 나갔다.
별 빛을 좀 더 넓은 공간에서 보려고 밖으로 나와서
골목을 내려가니 주인이 따라 나온다.
곧 온 동네의 호롱불이 꺼지면 지척을 분간할 수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잔다.
주인을 따라 돌아서서 올라가는데 꽃향기가 너무나 좋다.
주인이 나무에서 분꽃을 닮았지만 더 작은 소담스러운
하얀 꽃 한 송이를 따 주면서
“예라이샹(夜來香)! ”
밤에만 향기를 뿜는 꽃이란다.
향기가 너무나 좋다.
민박집 마당에 누워 밤하늘의 별들을 황홀한 기분으로 쳐다보며 그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홀짝이다보니 어느새 새벽 2시.
빠미촌의 아침은 닭 우는 소리로 시작된다.
닭 우는 소리에 잠을 깨니 6시가 조금 안되었다.
남들이 깰까봐 살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하늘을 반쯤 가린 아름다운 고산 준봉이 병풍처럼 둘러 쳐 있는 한가운데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를 강물이 흐른다.
3.6평방킬로미터의 분지로 된 작은 마을에는 새소리가 가득하고 제비들이 활기차게 날아다닌다.
사면을 둘러싼 산들은 산수화에 나오는 계림의 산들을 닮았다.
仙境이 따로 없다.
논갈이 |
밭갈이 |
가옥들은 서남향의 산비탈에 빼곡히 들어앉았고 한가운데의 巨樹는 이 마을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산 밑에 옹기종기 들어선 집들 굴뚝에서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와 퍼지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워낭울 뎅그렁거리며 두엄이 군데군데 쌓여 있는 논에서 쟁기질을 하는 풍경은 한없는 평화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 곳에는 세월이 마냥 머물러 있는 듯 하다.
지난밤 들어온 동굴 입구 |
우리는 하류에서 들어온 것이다.
동굴의 길이가 964m 나 된다.
어제 타고 들어온 자그마한 배 몇 척이 물가에 대어져 있다.
물이 흘러가는 도랑에서 水車가 돌아간다.
모두가 나무로만 만든 두개의 바퀴 사이에 대나무 발을 엮어서 일정한 간격으로 칸을 막고 아래서 흐르는 물의 힘에 밀려
수차가 돌아간다.
대발 사이사이에는 한쪽이 막힌 대나무 통을 달아 매서 물을 퍼 올려 위에 있는 대나무 관을 통해서 높은 곳으로 물을 댄다.
두 바퀴가 부지런히 돌며 물을 퍼 올리는 광경은 부부가 함께 물을 긷는 다정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水車들이 개울가 곳곳에 설치되어서 꽤나 높은 곳 까지도 끊임없이 물을 대어 농사를 짓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다.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茄科河는 남쪽 동굴 속에서 흘러 나와 마을 한가운데에 작은 섬을 만들고는 북쪽 동굴로 흘러 나간다.
동굴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마을로 들어올 수 없으므로 출입구는 두개 뿐이다.
개울물은 마을 사람들이 이른 아침에 집에서 쓸 물을 길어가고 그 후에는 아낙네들이 나와서 채소를 씻고 빨래를 한다.
아이들은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다니며 물고기를 잡는다.
밑으로 흐르는 물에 밀려 물방아가 돌면서 윗쪽으로 물을 퍼올린다.
묘지 |
이곳은 매장을 한다.
장례 때 상주들은 관을 돌면서 계속 절을 해야 하므로 무릎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고생이 대단하다고 한다.
매장 전에는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을 데려와 한바탕 춤판이 벌어진단다.
묘지는 봉분을 만들고 봉분 전면에 석판을 붙였으며 석판에는 死者에 대한 명문이 있고 봉분 위 한가운데에는 대나무에 흰 천을 달아 깃발처럼 꽂아 놓았다.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어미 소 뒤를 송아지가 떨어질세라 부지런히를 따라간다.
논에서 쟁기질을 하는 소의 목에 달린 워낭 소리는 너무나 맑아 산사에서 듣는 풍경소리 같다.
지나가는 아낙네들은 모두 머리에 수건을 둘렀는데 옛적 우리 어머니들이 수건을 쓰시던 모습 그대로 이다.
수건에 수를 놓아 모양을 냈다. 할머니들은 모자를 쓴다.
새벽에 강에서 허드렛물을 긷는 아줌마 |
머리수건 팻션 |
나름대로 멋을 부린다.
이 마을을 한 바퀴 돌려면 6km을 걸어야 한다.
상류로 계속 올라갔다
.
가로수가 모두 복숭아 나무다.
마을 건너편 산 밑에도 복숭아밭이 있단다.
복숭아 꽃이 필 때면 영락없이 桃源境이란다.
도연명이 노래하던 武陵桃源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상류로 올라가도 논에 쟁기질 하는 농부와
물을 올리는 수차가 소리 없이 돌아가는
그림 같은 모습이 계속 펼쳐진다.
조금 더 올라가니 상류로 나가는 배들이 모여 있는 나루터다.
이른 아침인데도 어른들은 모여서 한가로이 담소하고,
아이들은 고기잡고 미역 감고, 아주 평화로운 모습이다.
벌거숭이 아이들 |
고기잡이도 한다.
대나무 종다리에는 살이 통통히 오른 매자며 모래무지가
꽤 여러 마리 들어 있다.
물담배피우는 사내 |
맷돌을 돌리는 젊은이 |
옷감짜는 할머니 |
베틀에 앉아 천을 짜는 할머니,
열심히 맷돌을 돌리는 젊은이,
이른 아침인데도 모두가 부지런하다.
디딜방아도 있다.
맷돌은 우리 것 보다 몇 배는 커서 돌리는 장치가 다르다.
여러 집에 장례용 나무관을 짜서 보관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집안에 들어서니 정면 벽에 집에서 모시는 신의 영정을 걸어 놓고 음식과 향로를 차려 놓았다.
棺 |
집집마다 돼지, 닭, 오리 등을 조금씩 기르고 있다.
우리 주인집의 경우 닭 몇 마리를 기르고, 돼지 두 마리를 좁은 공간에 가두어 기르는데 1년에 돼지를 두 마리 잡아서 소금에 절여 장기간 보관해 가면서 먹는단다.
집집마다 수도가 공급 되는데 계량기가 달려 있다.
허드렛 물은 강에서 길어다 쓰고 상수도는 식수로만 사용한다.
아이들이 이른 아침에 학교를 간다.
아마 7시도 안되어서 가는 것 같다.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엘 들렀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3개 반이다.
4학년부터는 동네 밖으로 유학을 간단다.
초롱초롱한 눈동자들이 외부인의 방문을 걱정스러운 듯, 호기심에 찬 눈으로 쳐다본다.
교탁은 시멘트로 만들어 놓았다.
초등학교 교실 |
아침상 |
이 동네에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만 있고 4학년부터는 외지로 유학을 간다.
교실 입구 벽에는 愛人民, 愛祖國, 愛勞動, 愛科學, 愛社會主義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주인집으로 돌아오니 아직 아침상을 차리기 전 인데 주인 영감이 술상을 차려낸다.
집에서 담은 술과 짭짤한 돼지고기볶음, 청국장 날로 무친 것, 야채무침이다.
아침상에는 순두부, 콩 볶음, 양념한 생 청국장, 닭 탕에 잉어 탕까지 진수성찬이다.
조금 짜지만 먹을 만하다.
음식상을 다 차려 내더니 음식을 작만해준 젊은 부부가 부인은 술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남편이 술 주전자를 들고 상머리에 선다.
아침상을 들여 놓고 상머리에서 부부가 술을 따라 권하고 부인이 권주가를 부른다.
손님을 떠나보내며 노래를 하는 할머니 |
주인 가족사진 |
어디에서 이토록 순수하고 정겨운 대접을 받아 본 일이 있을까?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이 마을에서는 개구리소리 풀벌레 소리가 별빛아래 가득하면
저녁을 먹은 동네 여인들은 바느질감을 가지고 집집이 모여 호롱불 아레서 수다를 떨며 바느질을 하고,
남자들은 별빛아래 모여 물 담배를 피며 잡담을 하다가 헤어진다.
어제 밤늦게 침실로 올라가는데 호롱불 밑에서 주인집 며느리가 열심히 수를 놓고 있어서 자세히 보니 신발에 수를 놓고 있다.
이 동네는 모두가 자급자족을 해오던 터라 신발도 집에서 만들어 신는다.
아침에 보니 여자들은 모두가 꽃신이다.
기념으로 몇 사람이 한 켤레씩 샀다.
꽃신 |
이 마을의 결혼 상대를 고르는 풍습이 재미 있다.
이 마을에는 강물이 흘러 들어와서는 마을 한가운데 자그마한 섬을 만들며 두 갈래 지다가 조금 내려가서는 다시 한줄기로 흘러 내려간다.
밤이 되면 그 섬을 경계로 한쪽에서는 사내들이 다른 한쪽에서는 여자들이 목욕을 한단다.
평소에 마음에 두었던 상대가 목욕을 하러 나와 있으면 노래로 상대와 화답하며 서로의 생각을 파악해 보고 교제를 시작한단다.
마을에 들어서자 환영공연에서 마지막으로 부른노래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빠미촌은 현대 문명과 단절된 독립된 세계다.
그러나 경우 밝고, 질서 있고, 공사가 분명하며 상하관계가 확실하여 법이 없이도 사는 마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지금까지 지속된 삶의 방식을 숙명적으로 받아 드리면서 살고 있다.
산천도 변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풍속과 규범을 지킨다.
사람들은 선량하고 참을성 있고 침착하며 탐욕이라는 것을 모른다.
이러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은 이 곳에 사는 소수민족들의 일종의 자기보호 본능이란다.
주인 할머니의 장도를 축복하는 노래를 듣고 이 마을과 작별을 하고 배를 타고 상류로 올라간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원숭이들이 산다.
밑으로 내려와 개울물을 먹고는 다시 올라간다.
그래서 이 계곡을 원숭이계곡이라고 하고 이 계곡을 빠져 나가면 꽤나 넓은 농경지 사이로 개울이 흐르는 산중 벌판이 나온다.
이 곳이 桃花谷이다.
상류 출구로 떠나는 선창 |
상류로 빠져나가는 동굴 |
우리가 빠져나온 동굴 |
하늘을 가릴 듯 높은 산들 사이에 종유 동굴이 두 쪽으로 갈라져서 협곡이 된 아름다운 계곡 사이로 배가 들어간다.
종유석이 아름답게 매달린 계곡을 한참 올라가 선착장에 내려서 언덕을 올라가니 마차가 기다린다.
이 곳이 桃花谷이다.
마차 타는 곳에서는 협곡의 입구가 보이지를 않는다.
화곡을 마차를 타고 나가다 만난 들어오는 관광객 |
도중 牛車를 타고 들어오는 5-6명의 관광객을 만났다.
10여분 가니 또 나루터가 나타난다.
배를 저어 동굴 입구에 다다르니 늘어진 종유석이 아름답다.
어제는 밤이라 잘 몰랐지만 대단히 아름다운 종유동굴 이다.
길이는 어제 들어간 동굴 보다 조금 길다. 986m 란다.
이 곳이 湯那洞이다.
동굴을 빠져 나오니 꽤나 넓은 들판이 나오고 멀리 신작로가 보인다..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고 오른쪽 비탈위에는 扶貧溫鉋村 이라는 오래된 마을이 있다.
이제는 속세에 온 느낌이다.
하룻밤을 자고 나왔는데도 고향을 떠나는 기분이다.
첩첩 산중에서 문명의 이기와 단절한 채 그 옛적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빠미촌 사람들의 표정,
갈등이 없는 사회에서 사는 순진무구한 얼굴들이 공기 마저도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것 같은 마을 풍경과 어우러져 눈에 아른거린다.
무엇이 행복인지?
지금 그들은 사는 방식에서 표정에서 마냥 행복해 보인다.
너무나 많은 정보 속에서
서로를 비교하며 고민하고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갈등하며 사는 삶과 비교해 보며 마음이 착잡하다.
*.唐나라 때 將帥 加(?)知章이 隱退하여 고향에 돌아와서 心懷를 읊은 詩가 생각난다.
少小離家老大回
나이 어려서 집을 떠나 늙으막에 돌이오니
鄕音無改賓(?)毛衰.
고향 사투리는 잊지 않았는데 귀 밑 머리는 많이 세었구나.
兒童相見不相識.
아이들을 만나 보아도 서로 알아보지를 못하는 구나.
笑問客從何處來.
찾아온 손님을 깔깔대며 쫒아다니며 묻는 말이 “어디서 오셨나요?”(어디를 찾아 오셨나요?)
*.우리는 상해에서 장사를 하는 잘 아는 조선족을 데리고 갔다.
광남현에 도착해서 현지 여행사의 안내를 받았다.
우리가 투숙한 집은 빠미촌 이장집이었다.
데리고 간 조선족과 빠미촌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빠미촌 사람의 말을 광남현 사람이 조선족에게 통역하고 조선족은 우리에게 통역하면서 1박2일을
송나라 말기의 마을을 보고 왔다.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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