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k Road – Qingdao, Shaolin
11월 28, 2018실크로드 대장정(1)-청도-정주(소림사)
“실크로드”라는 말은 나에게는 왠지 막연히 이국에의 동경을 불러 일으키는 단어가 되어 왔다.
기원전부터 다양한 교역로로 동서양의 문물을 실어 나르며 다양한 문화가 섞여 왔다는 이야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육로로만 실크로드 중 한코스를 가기로 하고 5명이 계획을 세웠다.
실크로드에 대한 기록과 여행담은 많은 분이 책으로 펴내서 다양한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여행기를 쓴다는 생각은 접어두고 60 중반이 넘은 배낭여행객들이 경험한 가장 최근 정보를 사진에 간단한 설명을 붙여서 실어 보기로 했다.
우리 일행 3명(한동기 부회장, 김기명 교수)은 육로로 실크로드를 가기 위해 2005년 7월 26일
인천항 제2 국제부두에서 오후 5시에 위동해운의 페리에 올랐다.
이번 여행은 5월부터 준비에 들어가 두 달 반 만에 출발하는 것이다.
원래는 비시즌인 5-6월에 출발하려 했으나 서진근 회장님께서 9월 1일부터 인도 북부 라다크 지방의 “레”에 가면 큰 축전이 있으니
기왕이면 파키스탄에서 끝내지 말고 인도를 거쳐 신비한 “레”의 축전을 보라는 권유가 있어서
8월 31일 까지 “레”에 도착하는 것에 일정을 맞추었다.
그리고 김중석 이사는 서안에서, 윤광열 사장님은 우루무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청도에는 27일 아침 8시에 도착 예정이다.
오늘 이 배에는 위동해운 사상 최고로 많은 승객이 탔단다. 자리가 없을 정도다.
배에 오르니 보따리 장사하는 사람들의 전용 방에 배정이 되었다.
보따리 장사는 약 70여 명의 상인이 있는데 이들은 1주일에 한 번 육지에 올라가 잔단다.
10년 이상 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교역량도 무시 못할 양이 되겠다.
살아가는 얘기가 너무 다양하고 재미있다.
이분들에게는 요금에서부터 방 배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단골선님으로서의 우대가 베풀어 진단다.
2005년 7월 27일
해상훈련 때문에 40분 늦게 도착했다.
독일의 조계가 있던 이 도시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八大關路에는 각국의 고급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사진은 러시아 건물인 花石樓이다.
이 건물 말고도 일본의 元帥樓, 스페인, 미국, 덴마크 등 여러 나라가 지은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다.
인천항을 떠나면서 |
중국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청도는 석기 시대 때의 유적이 있고 춘추시대에는 齊 나라가 장성을 쌓았으며 한 나라 때 이후에는 도교의 성지가 되었고 명대에는 남북을 잇는 항구로 발전하였으며 청나라 말기에 일본과 독일이 번갈아 점령했었다.
정주로 떠나기 전에 잔교와 팔대관로를 돌아보기로 했다.
위의 잔교는 원래 청나라 때인 1891년에 군사용으로 쌓았고 1931년에 길이 440m, 폭 10m로 보수하였다.
바닷속으로 축대를 쌓아 맞은편 돌출부와 해협을 만들어 다른 선박의 접안을 통제했던 시설이었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청도는 근교에 거대한 공단이 들어서면서 도시가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화석루 안내판 |
화석루는 1903년 독일인이 지은 건물이다.
유럽의 城을 축소해서 지은듯한 석조건물이다.
장개석이 대만으로 건너가기 전 잠시 머물렀던 건물이다.
잔교와 팔대관로를 돌아보고 14시 08분에 청도역을 출발해서 정주로 떠났다.
정주에 7월 27일 새벽 5시 40분에 도착해서 쑹산의 소림사 관광을 할 예정이었는데
역 앞에는 무술학교에서 나온 미니밴이 광장을 메우고 있고 관광버스는 없다 .
정저우는 허난 성의 성도이며 2개의 철도 노선, 2개의 국도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이다.시내에는 3,500년 전 殷代의 도읍인 商代遺止가 있는 고도이다.
청도에서 정주로 가는데 끝없는 평야다.
비닐하우스가 벌판을 덮고 있다.
요즘 정주는 황허 강 하류에 있는 지리적 조건을 활용하여 관광자원 개발을 열심히 하고 있다.
황허 강 변을 지질공원으로 지정하고 산 위에 거대한 석조물을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지질공원 들어가는 문 |
산위에 거대한 석조물 |
중국인들은 神農架에 神農氏의 거대한 石像을 세웠고 天水에는 伏犧氏의 祀堂을 그리고 정주의 황하변에 黃帝의 거대한 석상을 세워
전설소긔 三皇의 흔적을 만들어 관광자원으로 만들었다.
지질공원 상징물 |
황하유역 |
정주 외곽을 흐르는 황허 강 |
정주에 7월 27일 새벽 5시 40분에 도착해서 숭산괴 소림사 관광을 할 예정이었는데
역앞에는 무술학교에서 나온 미니밴이 광장을 메우고 있고 관광버스는 없다 .
기차역 앞 길 건너 빌딩 뒤에 일반버스 정류장이 있다.
일반버스 정류장에서 중악 쑹산으로 가기위 해 등봉가는 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가 등봉을 거쳐 중악묘와 쑹양서원 그리고 소림사까지 관광을하는 중국인 단체가 가이드와 함께 타서 우리도 따라갔다.
청도를 떠나 쑹산으로 가는 길 |
등봉시내에서 쑹산 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쑹산의 산신을 모시는 道觀(쑹양서원)에 中岳廟가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오른쪽에 신당이 있다. 한 무제 때 세우고 청대에 재건했다.小 古宮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중국에서는 東의 태산, 西의 화산, 南의 형산, 北의 항산, 中央의 쑹산을 일컬어 五岳이라고 한다.숭산 중 소실산은 해발 1,512m인데 소림사, 중악묘, 쑹양서원이 모두 이 산속에 있다.
쑹양서원 입구 |
사당 |
치성을 드리는 관광객 |
중악묘는 도교사원으로 안내양도 도교 복장을 하고 설명을 한다. 쑹양서원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공자의 네명의 제자와 요 임금을 모신 중악廟가 있다. BC110년 경에 세워진 유교서원으로 한무제가 방문했을 때 대장군 칭호를 내려준 巨樹( 측백나무?)가 4,500년 이상을 버티고 있다.
장군柏 소개 |
장군 柏 |
중악묘로 들어가는 문 |
사당(峻極殿) |
중악廟 |
東岳 泰山 |
西岳 華山 |
西岳 華山 |
남악 형산 |
북악 항산 |
소림사는 소림무술로 유명해졌다. 소림사 무술은 이세민을 도와 당나라가 천하통일하는데 크게 공헌한 13화상의 활약으로 유명해 졌는데 지금도 무술의 진수가 전해져 오고 있다(소림 무술 시범은 한번 볼만하다). 등봉 시내에서 소림사까지 80여개의 무술학교가 운영되어 전국에서 학생들이 무술을 배우러 오고 있다. 무술에 능한 젊은이들은 군인이나 경찰로 취직하는데 도움이 된단다.
소림사 경내로 가는 길 입구에 |
소림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 |
소림사로 들어가는 길가에 80여 개의 무술학교가 있다. 전국에서 무술 수련생들이 모여든다. 무술 고수가 되면 군인이나 공안원(경찰)으로 채용되는데 유리하단다.
훈련생들 |
무술 시연관 |
무술시연 |
소림사 |
소림사 경내로 |
소림사 대웅전 |
대웅전 부처님 |
이세민을 도와 당나라를 창업하는데 크게 활략한 13화상을 모신 법당 |
13화상을 모신 법당 |
13화상을 모신 법당 |
이세민이 당태종이 되어 소림사에 내린 太宗文皇帝 御書를 새긴 碑. 소림사 경내에 있다.
玉臥佛 |
경내에 있는 달마대사 像 |
탑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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