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k Road – Loyang

11월 28, 2018

실크로드 대장정(2) – 뤄양(洛陽)



2005년 7월 29일(금)

낙양은 東 周의 수도로부터 시작後漢, 삼국의 魏, 西, 西晉 ,北魏 등 5000년간 아홉 왕조(九朝古都)의 수도였다. 그러나 수많은 전란으로 건물들은 불타버리고 용문석굴과 백마사, 관묘 외에는 볼만한 유적이 없다.

용문석굴은 대동의 운강석굴, 둔황의 막고굴과 함께 중국의 삼대석굴로 불린다.

북위가 대동에서 낙양으로 천도한 493년부터 석굴을 조성하기 시작해서 수, 당, 송 대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 간의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봉선사의 마애불인 비로자나불은 돈이 없어 공사가 중단된 것을 당나라의 무측천이 후원하여 675년에 완성하였다는데 부처님 상이 매우 예뻐서 무측천의 얼굴을 새긴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다.


용문석굴 입구에서

용문석굴 안내도

용문석굴

연화 동
 북위 시대 작품.
천장의 연꽃조각 때문에 연화 동이라 부른다.



봉선사 마애 비로자나불
 북위 때 시작해서 당나라 때 완성했다.
당나라 불교 조각의 걸작으로 꼽힌다.



봉선사


용문석굴 전경


용문석굴을 나와서 석공교 건너 東山 쪽에도 석굴이 있고 조금 내려가면 향산사가 있다.
향산사에서 위로 조금 올라가면 백거이 묘가 있다.

백거이(772-846)가 말년에 이곳에 은거하다가 세상을 떠났단다.

백거이의 글을 새긴 비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백거이 묘비
 당나라를 대표하는 3대 시인의 한 사람인 백거이는 이곳을 좋아해서 말년에 이곳에서 오래 살았단다.
백거이를 향산 거사라고 부른다.




용문석굴에서 나와 시내 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오른편으로 관묘로 가는 길이 있다.

관묘는 몸통 없이 보내온 관운장의 머리에 향나무로 몸통을 깎아 붙여 묻은 묘지다.

관운장은 오 나라 여몽의 계교에 빠져 목이 잘리는데 손권은 유비의 보복이 두려워 관운장의 목을 조조에게 보내어 유비와 불화를 획책하였다. 그러나 조조는 좋은 향나무로 몸체를 만들어 제후의 예로 후히 장례를 치러 주어 손권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았다.




관우 사당


관우 묘
 관우 사당 뒤 편에 비각이 있고 그 뒤에 묘지가 있다.
비각 뒤의 축대로 둘러싸인 곳이 묘지다.
봉분 위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관우의 묘역을 關林이라고 부른다.

중국에는 무덤 호칭도 그 사람의 신분에 따라 다르다.
墳 : 일반 백성의 무덤.
塚 : 王 侯의 무덤.
陵 : 황제의 무덤.
林 : 성현의 무덤.
중국에는 두 곳에 林이 있다.
한 곳은 취푸에 있는 공자 무덤인 孔林과 뤄양에 있는 관우의 무덤인 關林이다.

관우는 출중한 무예와 충절로 민중들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았고 송나라 때는 關帝廟를 세워 그를 무신(武神) 또는 재신(財神)으로 모시는 등 중국 민중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白馬寺
 백마사는 AD67년 후한 시대에 인도승려가 백마에 불경을 싣고 온 것을 기념해서 후한의 명제가 8년 후에 세운 고찰이다.
중국 최초의 불경을 번역한 절이다. 현존하는 건물들은 대부분 명나라 때 지은 것이다.





白馬寺


白馬像은 宋나라 때 만들어 세웠다.



낙양박물관
 시내 중심부 왕성 공원 근처에 뤄양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선사시대부터 송나라 때까지 유물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는데 당삼채 도자기 작품들이 볼만하다.



진열품들(唐三彩 작품)








唐三彩 : 백색 바탕에 녹색, 황색, 갈색이 나게 하는 유약을 발라 만든 도자기 작품.
낙타와 말, 인물상들이 많다.
唐나라 때 長安(西安)과 뤄양(낙양)에서 주로 만들어져 부장품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뤄양은 고대부터 아홉 왕조가 도읍하였던 곳으로 사대문 밖에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북문 밖 북망산이라는 언덕 주변에 묘지를 많이 조성했는데 지금 그곳에 묘지 박물관을 만들었다. 묘지 박물관은 北魏 帝王陵園 입구 지하에 만들어졌는데 왕조별 능묘를 모아 박물관을 만들었다.



北魏王陵

북위 황제릉 분포도

景陵

경능

묘실로 가는 입구

묘지 박물관

묘지 박물관 입구(지하로 내려가는 길)

묘지 박물관 입구(지하로 내려가는 길)


왕릉 분포도

묘실 입구
 지하에 각 왕조의 묘실을 재현해 놓았다.



묘실 입구

묘실 안내


부장품

唐,宋 묘지

부장품(당삼채)


묘실 입구

벽화

부장품

희귀한 유물 보관소

황실에서 사용하던 세숫대야
 손에 물을 묻혀 손잡이를 문지르면 소리가 나면서 대야 속의 물이 튄다.



벽화가 있는 묘실


우리나라에서 죽은 사람을 북망산 갔다 또는 북망산천 갔다고 흔히 말하는데 근원은 낙양성 북문 밖의 북망산에서 유래한다.
낙양을 하루 동안 돌아보고 23:05 기차로  실크로드의 출발지 서안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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