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sia Saint Petersburg(2) – Kazan Cathedral
11월 16, 2018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2) – 여름궁전, 카잔 성당, 예수부활 성당
2013년 6월 15일(토)
오늘은 여름 궁전을 다녀와서 네프스키 대로변의 나머지 볼거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민박 주인의 설명을 듣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녀오기로 했다.
10시 15분, 지하철 1번(붉은색 )타고 ABOTOBO역으로 갔다.
듣던대로 지하철이 대단히 깊이 설치되어있다.
에스컬레이터 입구에서 바닥이 보지 않을정도다
어떤 역을 시설이 대단히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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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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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벽화 |
대단히 화려하다.
10시 40분, ABOTOBO역서 나와 지하도로 길 건너 버스정류장에 여름 궁전 가는 버스가 수시로 출발한다.
70루불.
10시 55분, 뻬쩨르고푸행 버스출발.
11시 25분, 정원 정문 앞에서 내려준다.
여기서 들어가면 궁전 위쪽에 있는 정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분수와 조경이 어우러진 멋진 정원이다.
한참을 내려가니 화려한 여름 궁전이 나타난다.
입장권 사서 들어갔다.
입구에 정원 전체 개념도가 있는데 대단히 넓다.
입구 분수대에서 직선으로 바다까지 통로가 있는데 좌우로 조경수와 분수대, 조각 등이 늘어서 있다.
공원이므로 천천히 돌아보려면 온종일 다녀도 지루하지 않겠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돌았다.
바닷가에 있는 황실 사람들이 지내던 소박한 살림집(바닷가 별장)이 입장료를 받고 개방되어있다.
아름다운 조각들이 있는 분수와 잘 다듬어진 조경수 사이를 걷다 보니 금세 세 시간이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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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정원 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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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궁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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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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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정원에서 나와 광장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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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랫 정원 |
돌아가는 버스 타는곳을 알길이 없다.
여기저기 묻는데 영어가 불통이다.
아이스크림 파는 집 젊은이가 눈치로 알아채고 알려준다.
고마운 청년이다.
15시에 돌아나와 아침에 나온 윗정원 입구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따라 나가서 대로를 만나서 길을 건너면 ABOTOBO역 가는 버스424번이 있단다.
15시, 424번 버스타고 ABOTOBO역으로
15시 30분 1번전철타고 16시 네프스키대로 도착해서 시내 관광을 했다.
여름궁전을 다닐때는 날씨가 젛았는데 시내로 들어오니 비가내린다.
많은 비가 아니기때문에 그냥 걷기로 했다
아니치코프 다리를 건너서 카잔성당과 길건너 에카테리나 운하를 따라가면 그리스도 부활성당을 보고
18시에 민박집 주인을 만나 가방을 받았다.
우리는 오늘밤 기차로 모스크바로간다.
여름궁전에서는 날씨가 좋았는데 시내로 들어오니 비가 내린다.
아니치코프다리 쪽으로 걸었다.
아니치코프 다리 네 귀퉁이에는 마부와 말 조각상이 하나씩 있다.
마부의 능력에 따라 말을 다루는 방법이 다르다.
말들도 마부의 능럭을 파악하고 순종하거나 저항한단다.
욕심만 가지고는 않된다.
능력을기르고 자기능력 범위내에서 거느리고 관리해야한다.
아니치코프 다리를 건너 계속 가면 오른쪽으로 문화 예술의 광장이 있고
큰길 건쪽에 에카테리나 광장이 있다,
조금 더 내려가면 오른쪽에 카잔 성당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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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전쟁영웅 미하일 쿠투죠프 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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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잔 성당 |
원형의 회랑에는 코린트식 기둥 94개가 늘어서 있다.
성당이 완공된 후 러시아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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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잔성당 입구 동상 |
성당 내부에도 코린트 양식의 대리석 기둥이 받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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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ur Lady of Kazan |
카잔성당을 나와서 길 건너 그리바예도프 운하를 따라 들어가면 러시아 고건축양식을 본따떠지은 예수 부활성당이 있다.
피의 사원(Church on blood)이라고도 불리는데 알렉산더 2세가 반정부집단에 의해 피살당한 장소에 성당을 지었기 때문이다.
죽은 황제의 아들 알렉산더 3세가 1883년에 짓기 시작하여 손자인 니콜라이 2세 때인 1907년에 완공했다.
이 사원을 예수 부활 성당이라고 하는 이유는 사원의 4개 현관 입구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는 예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십자가를 벗는 예수” “성림강하” 등 예수 부활에 대한 성경이야기를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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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부활 성당 |
성당 입구 삼각형 지붕 아래 예수 부활에 관한 그림이 보인다.
입구 윗쪽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림이 있다.
성당내부
<레닌과 러시아 혁명>
1905년 러-일 전쟁 패배 후 러시아 정세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파업과 폭동이 자주 일어났으며, 1905년 1월 22일에는 겨울 궁전 앞에서 평화 시위를 벌이던 노동자들이 군대의 무차별 살상으로 사망하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났다.
피의 일요일 사건 이후 폭동은 극심해졌고 1905년 10월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소비에트가 결성됐다.
소비에트는 러시아어로 “평의회”라는 뜻으로, 노동자, 노인 등으로 이루어진 민중 자치기구이다.
이후 러시아 전역의 시와 읍에서 소비에트가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1917년에는 제1차 全 러시아 소비에트 대회가 열렸다.
소비에트는 급진적인 혁명을 주장하는 볼셰비키 보다 온건한 노선을 지향하는 민세비키로 나뉘어 대립했는데, 이때 볼셰비키를 이끈 사람이 후에 소련 최초의 지도자가 된 레닌(Vladimir Ilich Lenin)이다.
레닌은 1905년 11월 러시아 정부가 사회주의 혁명가들을 검거하고, 폭동 지역을 유혈 진압하는 등 강경하게 나오자 1907년부터0년간 해외 망명을 선택했다.
그러나 1914년 8월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정세가 변하기 시작했다.
전쟁 동안 러시아 정부의 무능이 드러나 100만 명 이상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고, 국내에서는 물자부족에 식량난까지 겹쳐 노동자들의 불만이 높아져 갔다.
1917년 3월 8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식량 부족으로 아사 직전에 내몰린 시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수도를 지키던 군인들도 봉기에 참여했고, 차르(황제) 니콜라이 2세는 3월 15일 퇴위를 선언했다.
의회는 임시정부를 구성했으나, 임시정부는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가지고 있었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혼란을 틈타 귀국한 레닌은 단기간 내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임시정부를 타도했다.
굶주린 도시 노동자들과 병사들이 평화, 토지, 빵을 약속하는 레닌과 볼셰비키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볼셰비키는 11월 7일 쿠데타를 성공시켰고, 레닌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소비에트 대회에서 의장으로 선출됐다.
소비에트 의장에 선출된 레닌은 계급제와 사유재산제를 폐지하고, 토지의 무상몰수-무상분배를 약속했다.
국내에서는 일당독재 체제를 구축했으며, 국외로는 각국 공산당의 연합인 제3인터내셔널을 창설했다.
그러나 무리한 경제정책은 실패로 돌아갔고, 1921년 공산주의 원칙에서 어느 정도 탈피한 신경제정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사상은 엄격히 통제됐으며, 볼세비키 노선에 반대하는 사람은 공개재판 등에 처해졌다.
레닌은 1924년 1월 21일 모스크바 근처의 고리키에서 사망했으며, 스탈린이 그 뒤를 이었다.
(서진근 편저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체첸사태>
러시아 남서부, 가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체첸은 인구 80만가량의 작은 자치공화국이지만 러시아의 3대 유전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으며, 카스피 해에서 러시아로 가는 송유관이 지나는 곳이다.
체첸은 러시아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러시아 정교가 아닌 이슬람교를 믿는 곳이지만 1864년 러시아에 강제 합병됐다.
또한 체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50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하기도 했다.
소련으로부터 차별대우를 받아온 체첸은 소련 붕괴 직전인 1991년 10월 대통령을 선출하고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석유 자원 확보와 러시아 내 다른 자치공화국들에 독립 여파가 확산될 것을 우려해 체첸의 독립을 거부하고 1994년 군대를 파견했다.
이로써 제1차 체첸사태가 시작되었다.
제1차 체첸사태는 1996년 5월 정전으로 일단락되었으나, 이미 민간인 2만 5천 명을 포함해 4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온 뒤였다.
1997년 체첸 정부군과 러시아군의 협정 체결로 체첸 사태는 공식적으로 종결됐지만 체첸의 독립을 주장하는 반군세력들은 여전히 러시아 곳곳에서 테러를 일으켰다.
1999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쇄 폭탄테러가 일어나자 러시아 정부는 이를 체첸의 행위로 결론짓고 체첸을 침공해 제2차 체첸 사태가 일어났다.
러시아군은 체첸 반군 거점지역에 공중폭격을 감행했으며, 2000년 2월에는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점령했다.
그러나 체첸 무장세력의 테러 활동은 계속되고 있는데, 2002년 모스크바와 2004년 북오세티야 베슬란에서 일어난 인질 사건은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낸 대형 테러 사건으로 유명하다.
(서진근 편저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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