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sia – Saint Petersburg – Hermitage Museum – Saint Isaac’s Cathedral

11월 16, 2018

러시아 – 상트 페테르부르크(1) – 에르미타주, 이사크 성당



2013년 6월 13일

15시 헬싱키역에서 급행열차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출발했다.
19시 36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핀란드 역(핀란드스키 바그잘)에 도착했다.
상트 페테르 부르크에는 역이 여러곳 있는데 역에 출발지 이름이 붙는다.
여름궁전 민박에서 밴을 가지고 데리러 나왔다.
비용은 $50이다.

백야현상이 있어 아직도 대낮같다.
집에서 저녁을 지어먹고 주인에게서 관광코스에대한 설멍을 들었다.


민박집 골목
 건물들이 중후하다.
상트페테르부르그 풍 건축물이다.

모스크바역 로터리에서 네프스키대로를 걸으면 네 귀퉁이에 말과 사람이 어우러진 동상이 있는 아니치코프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조금 가다가 오른쪽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면 예술광장이 나오고 푸시킨 동상이 있다.
그 뒤에는 러시아 미술관.

아니치코프 다리를 건너 조금 가다가 왼쪽(예술의 광장 반대 편)에 알렉산드리아 광장이 있다.
그곳에는 예카테리나 여제와 아홉 명의 신하들 동상이 있고 그 뒤쪽에 알렉산드리아 극장(구 푸시킨 극장)이 있다.

거기서 조금 더 네바 강 쪽으로 내려가면 왼쪽 대로변에 카잔성당이 있고 맞은편 길 건너 예카테리나 운하를 따라 들어가면 그리스도 부활 성당이 나온다.

다시 네프스키대로로 나와서 내려가다 왼쪽으로 들어가면 이사크 성당이 나온다.

다시 네프스키대로로 나와서 네바 강 쪽으로 내려가면 왼쪽으로 원로원 광장과 구 해군성이 있다.

다시 네프스키대로로 나와서 길을 건너면 궁전광장이 나오고 겨울 궁전, 에르미타주, 반원형의 개선 아치를 갖춘 구 참모본부가 있고 그 중앙에 알렉산드로의 원기둥이 서 있다.

궁전광장에서 나와 네바 강 다리를 건너면 로스트랄 등대, 다리 건너기 전에 오른쪽으로 돌아 강변을 따라가면 여름 정원과 마르스 광장의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여름 정원에서 네바 강 다리를 건너가면 오른쪽에 오로라 순양함이 있다.
다리 건너 왼쪽으로는 피터폴 요새가 있다.

70이 넘은 노인들이지만 열심히 돌아보아야겠다.

모스크바역에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민박집이 있다.
모스크바역 앞 로터리에 높다란 원주가 서 있다.
그 로터리에서 구 해군省 까지가 네프스키대로다.
약 3km 거리다.

해군성까지 관광을 하면서 천천히 걸으면 4-5시간 걸릴듯싶다.
해군성까지 가서는 겨울 궁전과 메미르타주 박물관을 둘러보는데 4-5시간,
그리고 네바 강 변의 고적들을 둘러보면 2일은 다녀야할것 같다.



2013년 6월 14일(금)

아침 일찍 먹고 네프스키대로로 나가 7번 버스를 타고 네바 강 변의 궁전광장으로 갔다.
겨울궁전 안에 있는 에르미타시 박물관을 보기 위해서다.

표트르대제 때 건축한 겨울궁전은 볼세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 제정이 막을 내리기 전까지 러시아 황제의 겨울나기 장소였다.
요즘은 궁전 일부를 국립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러시아 대표박물관으로 영국의 대영 박물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박물관으로 꼽힌다.

단체입장하는 곳은 밖에, 개별입장하는 곳은 궁전 정문으로 들어가서 안쪽에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입장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한참을 서 있는데 준원이 어머니가 입구 쪽에 자동발매기가 있단다.
사람이 별로 없다.
자동발매기에서 발권을 받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했다.

한국어 오디오 해설기가 있다.
250루불씩 주고 빌려서 박물관을 돌았다.

겨울 궁전의 상당 부분을 박물관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건물 내부의 화려한 인테리어도 볼만하고 진열품도 볼만하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그림도 대단하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3시 반이다.




네프스키대로
 멀리 모스크바역 앞 로터리에 높은 기념물이 보인다.



왕궁 광장
 노란색의 구 참모본부 건물이 있다.
구참모본부 건물 중앙에 개선 아치가 있고 그 위에 여섯 마리 말이 끄는 전차에 “승리의 여신상”이 서 있다.
이것은 러시아인들이 조국전쟁이라고 부르는 나폴레옹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여 만든 것이다.




아치문 위의 승리 여신상
 광장 한가운데 “알렉산도르 원주”가 있다
알렉산드르 원주는 1812년 조국전쟁에서 승리를 기념하여 1834년 완성했다.
높이 47.5m에 지름이 4m, 무게가 600톤이란다.


알렉산도르 圓柱

거울궁전
 1,050개의 방이 있는 거대한 궁전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메르미타주 박물관 입장권 매표소와 입구가 있다.



거울 궁전 중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건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박물관 계단

전시실


옥좌


전시실 그림과 조각








공작새 시계
 영국의 제임스 콕스(Jamer Cox)의 작품.
황금으로 세공된 공작새 자명종 시계.
시간이 되면 수탉이 울고 부엉이가 눈을 깜빡이고 공작새가 꼬리를 펴는 등 여러 동물들이 움직인다.
18세기 말 러시아 장군 포템킨(Potemkin)이 구입하여 에카테리나 2세에게 선물한것이란다.



자개 작품

이콘











루벤스의 돌아온 탕자


에르미타시 박물관을 나와서 수리 중인 해군省을 먼발치로 보고 이시크 성당으로 갔다.
금빛 둥근 지붕이 웅장한 거대한 성당이다.
1818년부터 40년 걸렸단다.

길이가 111.2m, 폭이 97.6m, 높이가 101.5m로 30층 빌딩 높이다.
1만 4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문의 무게만도 10톤이란다.

성당 내부에는 성서의 내용과 성인을 묘사한 그림 150여 점이 있다.

성당 앞 광장에는 표트르 대제의 기마 상이 있다.



해군 省 첨탑
 해군 省은 수리중이다.
왕궁광장에서 나와 길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해군 성이 보이고 인쪽으로 이사크 성당이 나온다.



이사크 성당

성당 내부








표트르 대제 기마상
 이사크 성당 앞 광장



<러시아의 극동진출>

러시아는 중세기 유럽 북동부에 있었던 키예프 공국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키예프 공국은 13세기 타타르(몽골)의 침입으로 멸망하고 러시아는 14세기까지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에 터키계 유목민과 유목민化 된 러시아인들로 구성된 “코사크”라는 계층이 생겨나게 됐다.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난 러시아는 이 코사크의 기마대를 역으로 이용해 시베리아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17세기 러시아의 본격적인 동진정책이 시작됐다.
코사크 들은 주인 없는 땅이나 다름없던 시베리아를 빠르게 정복해 나갔으나 아무르 강(헤이룽 강 = 흑룡강) 유역에 도달하자 청나라의 저항에 가로막히게 되었다.

러시아가 청의 세력권에 요새를 세우고 진출을 계속하자 1685년 청군은 알바진(Albazin)을 공격해 요새를 함락시켰다.
청군의 공격이 계속되자 표트르 대제는 청의 강희제와 네르친스크(Nerchinsk)에서 외교협상을 벌였다.
러시아는 네르친스크에 파견된 청의 대군에 압도되어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었다.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아르군(Argun) 강과 스타노보이(Stanovoy) 산맥을 잇는 러시아와 청나라 간의 국경선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후 청나라가 태평천국 운동 같은 민중 소요와 애로호 사건으로 약화되자 러시아는 러시아의 전권대사 이산을 협박하여 1858년 아이훈(愛훈)조약을 체결하게 했다.
아이훈 조약으로 러시아는 아무르 강 북쪽 연안까지 진출하게 됐으며, 연해주는 러시아와 청국의 공동 관리 지역으로 정했다.

1856년 일어난 애로호 사건은 청나라 관리가 영국 국기가 게양된 애로호에 승선해 중국인 범죄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영국 국기를 강제로 내린 일을 빌미로 영국이 프랑스와 연합하여 청나라를 공격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영국-프랑스 대 청나라 간의 전쟁이 일어났다.

러시아는 청나라와 영국-프랑스 간의 강화를 중재했고, 그 대가로 1860년 청나라와 베이징 조약을 맺어 , 2년 전 아이훈조약 체결 때 공동 관리지역으로 두었던 우수리 강 동쪽의 연해주를 획득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두만강을 경계로 조선과도 국경을 맞대게 되었으며, 이때 확정된 국경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서진근 편저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탐험가 베링의 알래스카 발견>

베링(Vitus Jonassen Bering)은 덴마크 태생의 러시아 탐험가로, 베링해협을 항해하고 알래스카를 발견했다.
1724년 표트르 대제는 아시아와 북아메리카가 연결되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탐험대를 구성하고, 이 탐험대의 대장으로 베링을 임명했다.
1725년 탐험을 시작한 베링은 1728년 7월 캄차카 반도에서 항해를 시작하여 얼음으로 덮인 해협을 거쳐 북극해에 진입하면서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베링이 항해한 유라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 대륙 사이의 해협은 베링해협으로 불리게 되었다.

표트르 대제 사후. 안나 여제 시기인 1733년 베링은 2차 탐험을 시도했다.
1741년 베링은 베링해협을 건너 알래스카 남서 해안과 알샨 열도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괴혈병에 걸려 1741년 12월 19일 캄차카 반도 동쪽에 있는 아바차 섬에서 사망했다.
이 섬은 후에 그의 이름을 따 베링 섬으로 명명되었다.

이후 러시아는 알래스카에 정착지를 만들고, 知事를 파견하여 통치하게 됐다.
초기 수도는 알래스카 동남쪽 배러노프 섬(Baranof Island)에 있는 시트카(Sitka)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재정이 궁핍해지자 1867년 720만 달러에 알래스카를 미국에 매각했다.

당시 러시아는 물론, 미국도 알래스카를 얼음뿐인 쓸모없는 땅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러시아와 협상을 진행한 미국의 국무장관 수어드(William Henry Seward)는 국민들로부터 대대적인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19세기 말 알래스카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이어 막대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되자 알래스카의 가치는 급등하게 됐으며, 수워드도 국가의 영웅으로 칭송받게 되었다.
알래스카는 1959년 미국의 49번째 州가 되었다.
(서진근 편저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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