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ia – Bucharest – Brașov – Cluj Napoca – Oradea

11월 19, 2018

루마니아 – 부쿠레슈티, 브라쇼브, 시기소아라, Cluj Napoca, Oradea



2013년 6월 2일(일)

발칸반도 동쪽에 있는 나라로, 106년 로마의 지배를 받은 이후 이 지역은 라틴 민족의 땅, 로마의 땅 이라는 뜻으로 루마니아(Romania)라 불리게 되었다.
루마니아어는 라틴어와 가장 흡사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언어라고 한다.
중세 루마니아에는 왈라키아 공국, 몰다비아 공국, 트란실바니아 공국 등이 나타났고, 1861년 왈라키아 공국과 몰다비아 공국이 병합되면서 한 국가로서 기틀을 잡았다.
루마니아는 1877년 독립했다.

11시 30분, 불가리아의 Gorma 역에서 부쿠레슈티행 기차표 확보하고 기차역에서 햄버거로 점심.
13시 6분, Gorma 출발.

나지막한 구릉지대를 밭으로 개간하여 펼쳐진 끝없는 들판을 달린다.
밀, 보리, 해바라기들이 무성하게 자란다.
15시 10분, Ruse에 정차하여 기관차를 루마니아 차로 바꾸고 출발한다.
16시 32분 다뉴브 강(국경)을 건넌다.
16시 42분 여권 검사하고 출발.
끝없이 펼쳐지는 들판, 해바라기, 옥수수, 밀밭.
밀, 보리가 익어 황금빛으로 물든 드넓은 평원은 풍요로움 그 자체다.

18시 05분 계속 달리는 열차 창밖에 원유시추공이 계속 나타난다.
비옥한 들판에서 원유를 채굴하는 광경을 보며 한없는 부러움을 느낀다.

황금빛 들판을 2시간여를 달려 18시 50분에 부쿠레슈티 노르드 역에 도착,
역에서 멀지 않은 ibis hotel에 여장을 풀고 시내 관광.

6월 초가 되니 북쪽의 백야 현상에 영향을 받아 21시까지도 해가 지지 않는다.
택시로 가장 번화한 통일광장으로 갔다.


통일광장

통일광장의 거대한 분수
 통일광장에서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와 비견된다는 통일로를 걸어서 서쪽으로 곧장 가면 분수대 뒤로 국민의 궁전이 보인다.
세계의 관청, 궁전 등의 건축물 중에서 워싱턴 DC의 미국 국방성 건물 다음으로 크다는 방 3,107개의 국민의 궁전을 보고 쇼핑몰의 푸드코트에서 양 갈비와 중국음식으로 늦은 만찬.
김을라 여사가 접대했다.



통일대로

기념촬영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는 영어로 부카레스트라고 한다.
20세기 초에는 “발칸의 작은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였으나, 공산당의 과거 지우기로 지금은 구도심 일부와 개선문 외에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고, 차우셰스쿠의 야망을 표출한 구 공산당사와 국민의 궁전이 대표적인 볼거리다.

차우셰스쿠는 1989년 12월 22일 공산당사 테라스에서 연설하다가 군중의 야유에 밀려 옥상에서 부인과 함께 헬기로 도망쳤으나 헬기 조종사의 변심으로 체포되어 12월 25일 군사법정에서 처형되었다.



6월 3일(월)

08시 30분, 부쿠레슈티 북 역을 출발했다.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의 흔적을 찾아서 시기쇼아라로 간다.
도중에 브라쇼프 라는 아름다운 중세 도시가 있어서 들러가기로 했다.

아름다운 벌판이 이어진다.
제법 큰 송유관도 지나간다

11시 05분, 루마니아 제2 도시 브라쇼프에 도착했다.
브라쇼프는 중세의 거리가 그대로 남아있는 아름다운 古都다.
도시는 12세기에 독일(작센인) 상인이 톰파 산기슭에 건설했으며 루마니아인(세크이인), 헝가리인(마자르인) 등 세 민족에 의해 발전해 왔다.

구도심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문밖에 사는 루마니아인들의 통행을 제한했단다.
그래선지 거리를 걷다 보면 독일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다.
브라쇼프는 소설 흡혈귀 드라큘라의 모델이 된 “브란 城”으로 가는 길목이다.




브라쇼프 시청
 시청을 마주보고 우측 길로 들어서면 구시가 중심 광장이 나온다.



시청 로타리 어느 빌딩 앞에 있는 동상
 로마 신화에서 소재를 찾은것인데 루마니아인들은 로마인의 후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한다.




기아자동차 선전 박스
 반가워서 기념촬영했다.



시청 로타리의 조형물
 역에 짐 맡기고 버스를 타고 중앙광장으로 갔다.
시청을 바라보고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옛 건물들이 늘어선 아름다운 중세거리가 나온다.
아름다운 거리를 걷다 보면 중심가인 스파 툴루이( Piata Sfatului) 광장이 나오고 광장 주변에 성 니콜라이 교회, 검은 교회, 스케이 문((poarta Schei) 등 볼거리가 몰려 있다.
톰파 산 정상까지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구시가 길

구시가 중앙광장 가는 길



스파툴루이 광장에서

구 시청 청사와 감시탑.(스파툴루이 광장)

스파툴루이 광장에서




스케이 문을 나와서


 스케이 문은 독일인들이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면서 선주민인 불가리아인들을 몰아내고 성벽을 쌓고 출입을 통제하던 문이다.
13시 10분에 중국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이동화 사장이 접대) 스케이문을 나와 택시로 기차역으로 갔다.

15시 15분 짐 찾고,
15시 45분 빈행 기차 출발.

이 기차는 시기쇼아라를 거쳐 국경을 넘고 헝가리를 통과해 빈 까지 가는 기차다.



시기쇼아라 역
 18시 12분 시기쇼아라역에 도착했다.
시골의 아주 작은 역이다.
동정을 구하는 집시들이 너무 많다.
18시 45분, 택시로 시기쇼아라 호텔에 도착했다.
고색창연한 시기쇼아라 호텔.
나무계단이 달아서 홈이 파였고 목제 집기들이 역사의 무게를 보여준다.

시기쇼아라는 부쿠레슈티에서 북서쪽으로 300km, 브라쇼브에서 약 120km 떨어진 산골 작은 마을이다.
거대한 건축물이나 예술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기차역에서 택시를 타고 산길을 한참 올라가면 성문이 나타나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중세의 자취가 짙게 남아있는 관광지화 되지 않은 소박한 도시를 만난다.

시기쇼아라는 1191년 헝가리 클라우스 왕의 명으로 작센인이 이주하면서 도시가 건설되었다.
15 – 16세기 번영의 절정기에는 15개의 길드(匠人 조합)가 있는 城寨 도시로 발전했다.
이 도시의 상징인 시계탑은 1556년에 만들어졌단다.
이 도시에는 현대식 건물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볼거리는 도시 전체를 감상하는 외에 시계탑, 산상교회, 블라드 드라큘라의 집(지금은 식당) 등이다.




호텔 시기쇼아라

호텔 리셉션
 세월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다.



호텔 회의실 벽에 있는 오래된 프레스코화

골목길


만찬
 강남익 회장께서 부담하셨다.


야경
 불가리아에는 드라큘라와 관련된 얘기가 있는 도시가 세 곳이나 된다.
한 곳은 브라쇼브에서 가까운 브란 城이고 또 한 곳은 시기쇼아라다.



2013년 6월 4일(화)

07시 30분 아침 식사 후
08시 30분 도보관광.

독일학교, 산상 교회, 시계탑, 시계탑에 오르면서 드라큘라 박물관 등등.



아침에 호텔 창밖으로.


산상 교회로 가는 길

산상 교회로 올라가는 계단
 지붕이 있는 나무계단이다.



언덕위에 올라서.

산상교회
 14세기에 세운 교회로 벽화가 남아있다는데 문이 잠겨있다.



내려오는 길

골목에서

시계탑
 지금도 작동하고 있으며 내부는 박물관으로 관람할 가치가 있다.



종탑

블라드 드라큘 식당
 시계탑이 있는 광장 한모퉁이에 블라드 드라큘이 143년 – 1435년의 4년간 헝가리 왕의 명으로 유폐되었던 집이 있다.
드라큘라의 모델이 되었던 아들인 블라드 체베슈의 생가이기도 하다.



기념촬영
 10시, 시기쇼아라 호텔 출발하여 기차역으로,
10시 25분, 기차로 시기쇼아라 출발하여 Duj Napoca에서 환승하여 Oradea 행.



시기쇼아라 역에서의 이별
 브란 성을 들러서 그리스로 떠나는 이대학 사장.

16시 02분, 클루지 나포카(Cluj Napoca )도착, 1시간 10분 여유가 있어서 4명이 택시를 타고 통일광장을 다녀왔다.
루마니아 도시 중앙광장에 있는 헝가리 왕 동상에 헌화를 하고 헝가리 국기와를 꽂아 놓았다.




헝가리 왕 마차슈 1세의 기마상이다.
클루지 나포카 통일광장에 있는 비세리카 스푼틀 미하이 교회를 배경으로..




헝가리 왕 마차슈 1세의 기마상



헝가리 왕의 기마상이 있고 그 앞에 헌화와 헝가리 국기가 꽂혀있는것은 트란실바니아 지방과 헝가리와의 연관성이 특별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17시 20분, 2량짜리 동차로 국경을 향해 출발.
20시, 불가리아 국경도시 Oradea 도착.
기차역 근처 호텔 사정 열악함.




오라데아 역


면적 : 238,391km2.
인구 : 2,185만 명(2012년)
종족구성 : 루마니아인 89.5%. 헝가리인 6.6%, 집시 2.5%
종교 : 루마니아 정교 87%, 가톨릭 4.7%, 개신교 4%.
언어 : 루마니아어, 헝가리어, 독일어
화폐 : 레우(RON)
1인당 GDP : $8,666(2011년)
수도 : 부쿠레슈티(부카레스트)

<집시>

집시는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랑민족이다.
이들은 기존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정착 주민들로부터 천대를 받는다.
루마니아는 유럽에서 집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로, 약 60만 명의 집시가 살고 있다.
집시는 사회 하층민이 많고 자기들끼리만 단결하기 때문에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집시들은 스스로를 “인간”이라는 뜻의 롬(Rom)으로 부른다.
집시라는 명칭은 영국인들이 붙인 이름으로, 이들을 이집트인으로 오해해서 “이집트인(Egyptian)” 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발음이 변해 집시(Gypsy)로 굳어진 것이다.
실제로 집시는 유럽인들이 보기에 동양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는데, 피부색이 짙고 기가 작으며,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검다.

집시가 어디서 왔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집시 語가 산스크리트 語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인도 북부에서 기원했다고 보고 있다.
인도의 낮은 카스트에서 집시가 생겨났으며, 이들이 유랑하다가 14 – 15세기 무렵 유럽에 흘러들어 왔다는 것이다.

집시들은 대부분 몸으로 하는 허드렛일이나, 곡예, 점쳐 주는 일 등을 해 왔으며, 춤과 노래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나오는 카르멘,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곱추”의 에스메랄다가 대표적인 집시다.
집시의 성품은 자유분방하며, 도둑질이나 암거래 등에도 자주 선을 대기 때문에 많은 차별과 박해를 받아왔다.

또한 지금까지도 대부분 일정 지역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고정된 수입이 없어 빈곤층이 많으며, 정규 교육을 받지 않기 때문에 문맹도 많다.
(서진근 편저 UN 회원국 다이제스트 중에서)

<차우세스쿠>

차우세스쿠(Nicolae Ceausescu)는 1965년부터 20년 이상 공포정치로 루마니아를 통치한 독재자다.
차우세스쿠는 1918년 1월 26일 스코르니체슈티(Scornicesti)에서 태어났으며, 15세에 공산당에 가입했다.
루마니아가 공산화되자 차우세스쿠는 정부에 진출해 1967년 국가원수가 되었으며, 1974년 대통령직이 신설되자 초대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권력을 잡은 차우세스쿠는 공포정치를 실시했다.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고 언론을 억압했으며, 비밀경찰을 조직하여 반대세력을 숙청하고 국민을 감시했다.
또한, 부인 엘레나를 비롯한 친인척들을 정부 요직에 앉히고 자기 자신을 숭배하게 했다.
일각에서는 차우세스쿠가 1971년 북한을 방문한 뒤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1970년대 이후 차우세스쿠는 루마니아의 실정을 무시하고 무리한 중공업 중심 정책을 폈는데, 이는 막대한 대외부채만을 남긴 채 실패했다.
차우세스쿠는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루마니아 내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농산물 대부분을 수출하고 국내의 석유, 식품, 공산물 소비를 억제했다.

국민은 에너지와 식량 부족으로 신음했으나 차우세스쿠는 사치를 일삼았으며, 부쿠레슈티에 자신을 위한 거대한 궁전을 건축했다.
대리석과 금으로 치장한 이 궁전은 단일 건물로는 펜타곤(미국 국방성 건물)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건물이다.

기아와 독재에 시달리던 루마니아 국민은 반정부 시위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차우세스쿠는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1989년 12월 티미쇼아라(Timisoara)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차우세스쿠는 시위대에 발포를 명령했고, 1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오면서 시민들 뿐만 아니라 군부까지도 차우세스쿠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반정부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 됐고, 시위대는 수도까지 함락시켰다.
차우세스쿠는 헬리콥터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었고, 결국 1989년 12월 25일 공개 총살형에 처해졌다.
(서진근 편저 UN 회원국 다이제스트 중에서)

You Might Also Like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