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ippines – Banaue

11월 18, 2018

필리핀 마닐라 – Banaue



2010년 7월 1일(목)

일주일 예정으로 필리핀 마닐라로 떠났다.
08시 50분 인천공항을 떠난 필리핀 에어는 11시 15분(시차 1시간)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다.

7천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다.
북부의 루손 섬(104,688km2)과 남부의 민다나오 섬(94,630km2)이 제일 큰 섬이다.

1521년 마젤란에 의해 유럽에 알려진 후 스페인령이 되었으며, 1898년 스페인 – 미국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하면서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의 침략을 받기도 했다.
1946년 7월 4일 미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비행기에서 본 Manila City
 5명이니 택시 1대로는 안된다.
공항택시조합(?)에서 티켓을 끊어(밴 500페소-일반택시는 200페소)) 조영란 사장이 예약해준 시내에 있는 Executive Plaza Hotel 로 갔다.

호텔 체크인 후 1시에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쉬었다.
시내에서 택시를 타는데 미터기는 장식용이다.
모두 흥정을 해야 한다.
공항에서 시내까지가 택시로 200페소인데 시내에서도 무조건 200페소를 달란다.
아무리 깎아도 150페소 이하로는 양보하지 않는다.

필리핀에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세계의 여행지 1000곳 중 3곳이 있다.
마닐라 시티 근처에 있는 tagaytay, 마니라 북쪽 430km에 있는 Banaue의 계단식 논, 루손 섬 남쪽 끝에 있는 도시 Legazpi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산 Mayon Volcano 등이다.

마닐라 시내와 Tagaytay를 묶어서 1일 투어에 1인당 3,000페소를 달란다.
1인당 \90,000이다.
Rent a car를 하려니 기사, 유류대, 입장료 포함해서 8,000페소란다.
우리는 다섯 명이니 반값 정도가 된다.
이 가격도 우리나라 12인승 밴을 빌리는 값보다 비싸다.
내일 08시 30분에 떠나기로 하고 예약을 했다.

저녁은 호텔 소개로 이슬람 식당 Ram앤Ram으로 갔다.
맛도 있고 값도 저렴하다.



7월 2일(금)

08시 40분, 마닐라 남쪽 64km에 있는 Tagaytay로 달렸다.
10시 50분에 분화구 정상의 전망대에 올랐다.
타가이타이는 평균 해발이 700m가 넘는 마닐라 근교의 휴양지로 별장지대다.
정상에는 화산폭발 때문에 생긴 Taal호수가 있다
이 호수는 필리핀에서 3번째로 큰 호수란다.

이 호수 안에는 여러 개의 섬이 있고 그 가운데 작은 화산이 폭발해서 생긴 분화구가 또 있다.
그 화산은 1965년도에도 폭발해서 2,0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활화산이란다.
작은 화산에도 물이 고여 예로 호라는 호수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특수지형이 세계의 관광지 1000개 중에 들어 있는 모양이다.



Tagaytay 산 위의 Taal호수

화산호수 속의 기생화산 예로우 호수
 아직 활화산으로 1965년도에도 폭발해서 2,000여 명의 희생자를 냈단다.



산 정상의 기념품 가게

기념품


Taal 호수의 관광선
 배의 안전을 위해 아웃 리거가 달려 있다.

13시 20분, 마닐라 시내로 들어와 거창 출신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솔’에서 낙지 불고기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 리잘 공원, 스페인 성벽, 성 오거스틴 성당, 국립박물관 등을 보고 호텔로 귀환.



Rizal Park
 필리핀 독립운동의 영웅 리살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마닐라 시내에 있는 대성당
 (Manila Metropolitan Cathedral)



성당 안의 聖畵


調刻 La Pieta
 St. Peter’s Basilica in Vatican City에 있는 유명한 조각의 모조품이다.
대성당 입구로 들어가 좌측 별실에 있다.



La Pieta 소개문



국립박물관의 소장품 중에서…

입장료가 89페소
경로우대로 60페소








라살 초상화
 마닐라 북쪽 바나우에와 바간, 그리고 마르코스 대통령의 고향 바탁을 돌아는 3박 4일간 차를 빌리는데 33,000페소를 달란다.
자동차만 빌리면 우리가 직접 운전하려고 하는데 그건 안된단다.

호텔 주변을 뒤져서 한국인이 경영하는 여행사 Kim’s Tour를 찾아가 사장과 면담하니 자동차만 빌려 주는데 19,000페소를 달란다.
호텔비와 기름값, 고속도로 통행료를 합해보니 적절치가 않다.
다시 호텔에 와서 32,000페소에 예약을 했다.

저녁은 극장식 식당에서 아기 통돼지 바비큐로 맛있는 별식을 즐겼다.
5명이 맥주 포함해서 2,200페소.
값도 저렴하다.



7월 3일(토)

마닐라->Banaue Rice Terraces
08시 50분, 호텔 출발.
시내를 빠져나가 고속도로에 진입하는데 1시간이 걸린다.

09시 52분, 시내 외곽 TG 고속도로 진입, 11시 02분, 고속도로 끝.
산 하나 보이지않는 끝없는 평야 지대, 토질 양호하나 휴경지가 많다.
12시 40분, 산호세 Cafeteria 식당 점심.
13시 28분, 산간도로 진입.
17시 16분, 마닐라에서 334km,
17시 35분, Banaue View Point

Banaue : 코르딜리아 산맥 속에 있는 이 마을에는 총 4천 세대, 인구 2만 2천이 산다.
해발 1,200m, 마닐라 348km.
Rice Terraces를 자기들끼리 세계 8대 불가사의라 부른다.



지프니들
 마닐라의 대중교통은 엔진을 구해서 손으로 두들겨 만든 지프니들이다.



바나우에 가는 길
 바나우에는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348km.
밴으로 8시간 30분 걸렸다.



바나우에 가는 길
 계단식 논이라 불리며 바나우에서 동쪽으로 약 16km 떨어진 곳에 있는 라이스 테라스는 대단한 규모는 아니지만‘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힐 만큼 경이롭다.

라이스 테라스는 산을 계단식으로 깎아 만든 논을 말하는데 약 2천 년 전에 이푸가오족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했다.

“바타드”라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이곳은 높이 1,500m 고지에 있며 논둑을 일자로만 연결한다면 지구의 반 바퀴나 도는 거리라고 한다. 1995년 유네스코에서 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계단식 다락논 전망대 1~3Point 관람. 날씨 좋았다.




바나우에에서 라이스 테라스 뷰 포인트 안내 표시
세 군데의 뷰 포인트가 있다.



뷰 포인트 안내 표시


라이스 테라스



화분들

라이스 테라스를 배경으로






바나우에 관광호텔

라이스 테라스 투어 맵


호텔에서 본 산속의 라이스 테라스.
곳곳에 작은 규모의 라이스 테라스가 있다.

19시, Banaue Hotel,
고풍스럽고 아주 좋은 호텔, 그러나 TV도 냉장고도, 에어컨도 없는 고산지대. 경관 조경 좋고.
19시 25분,호텔식당에서 저녁 식사.



Antique Shop

Antique Shop
 바니우에 에서 바기오로 나가는 도중 고갯길 중턱 길가에 있는 기념품 가게.
지금은 영업하지 않으나 토속적 목각들을 팔던 장소인가 보다.









<리살(Jose’ Rizal)>

Jose’ Rizal은 필리핀의 독립을 이끌어낸 민족 운동가이자 사상가다.
1861년 6월 19일 루손 섬 캄발라에 있는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리살은 마닐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곧 스페인에 유학 온 필리핀 학생 단체의 지도자가 되었다.

리살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필리핀의 경제, 사회, 정치를 억압하고 있던 스페인의 가톨릭 수도회에 크게 반발하고 있었다.

그는 파리와 하이델베르그에서 의학 공부를 계속하면서 1886년 타갈로그어(타갈로그족의 언어로 필리핀 고유 언어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한다)로 “나에게 손대지 마라”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이어 1891년에는 ‘체제전복’이라는 책을 발표했는데, 이때부터 리살은 필리핀 개혁운동의 대변자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리살은 1892년에 귀국하여 마닐라에서 비폭력 개혁단체인 필리핀 동맹(Liga Pilipinas)을 결성했다.
스페인 정부는 그를 민다나오 섬 북서부에 있는 ‘다피탄’으로 추방했다.

라살은 이곳에서 4년 동안 유배되어 있었다.
그러나 리살이 쓴 책들은 필리핀 민중에게 계속 영향을 주어 1896년 마닐라에서 ‘카티푸난(Katipunan)’이라는 비밀결사단체가 무장봉기를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리살은 카티푸난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으나 스페인 정부는 리살을 체포해 마닐라에 있는 산티아고 요새에 수감했다.
결국 리살은 재판에 넘겨져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1896년 12월 30일 공개총살에 처했다.

리살의 공개처형은 필리핀 민중을 격분시켰고, 그 결과 대대적인 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서진근 편저 UN회원국 다이제스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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