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zech – Prague

11월 18, 2018

체코(Czech) – 프라하(Prague)



2013년 6월 8일(토)

07시 30분, Hotel ibis에서 출발해서
08시에 6번 지하철을 타고 필라델피아역(메이랜드)으로 갔다.
08시 24분, 프라하행 열차 출발.
철로 변 들판이 물에 잠긴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아직도 물이 빠지지 않아서 잠긴 곳도 있다
도나우 강이 범람해서 기차통행이 중단될 정도였다.

13시 10분,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했다.
바르샤바행 기차표 구하고 역 창구에서 호텔을 소개받았다.
기차역에서 걸어서 10분이 안 되는 곳에 있는 고풍스러운 저택을 호텔로 고친 집이다.

택시를 대절(25유로)해서 프라하 城으로 올라갔다.

프라하 城은 볼타바 강 서쪽 흐라차니 언덕에 9세기부터 짓기 시작해서 14세기 카롤4세에 의해지금 모습을 갖췄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넓은 부지에는 구왕궁, 교회, 수도원 등이 있고역대 왕들의 묘지가 있는 성 비타 교회(Katedrala Sv. Vita)가 있다.


프라하 城 흐라차니 언덕 정상 성문 안쪽에 있는 수도원

교회

프라하 城에서

구 왕궁

프라하 城

프라하 城 正門

프라하 성 광장에서 본 프라하 풍경

성 비트 대성당


그 후에도 계속 손질하여 20세기에 완성했다.
지하에는 카롤 4세를 비롯한 역대 왕의 묘지가 있다.



성 비트 대성당

성 비트 대성당



성 비트 대성당 내부





성 이지 교회
 성  안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920년에 완공했다.
현재의 교회는 화재 뒤에 142년에 재건한 것이다.



거리의 악사
 프라하 城에서 볼타바 江으로 내려가는 골목.

프라하 城을 둘러보고 골목길을 내려와 카를 교를 가려는데 카를 교는 통제가 된단다.
바로 앞의 다리를 건너면서 먼발치에서 카를 교를 보고 다리를 건너서 카를 교 입구로 갔다.
골목마다 모래주머니로 침수를 막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카를 교 입구는 막혔다.
프라하 제1의 볼거리를 못보다니 안타깝다.
우리 부부는 10여 년 전에 한 번 다녀갔지만 그래도 다시 보고 싶었고 함께간 일행은 초행인데 안타깝다.

카를 거리로 접어들어 까페에서 점심을 먹고 구시가지 광장으로 갔다.
조금 가다가 골목이 시끄럽다 .
한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한남자를 붙들고 늘어진다.소매치기를 잡은 것이다.
남자는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친다..
조금있더니 조끼를 벗어버리고 도망친다.
핸드폰도 버리고…..

그런데 조금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다.
소매치기가 도망치자마자 몸집이 좋은 남자가 옆에있던 남자를 수갑을 채워 데리고 간다..
공범이라는 모양이다.
잡히는 사람도 조용히 잡혀간다.
그런데 여자와 소매치기가 한참을 싸울 때는 가만히 있었다.
벼란간 다른 곳에서 뛰어온것도 아니다.




멀리 카를 교가 보인다.
강물이 늘어 다리 통행을 금지시켰다.



다리를 건너서 카를 교 쪽으로 간다.

침수대비

카를 교

카를 교 성인 像

카를 교 성인 像

카를 교 성인 상을 배경으로

카를 교 광장


카를 교 광장에서 구시가 광장으로 가는 골목 입구 식당에서 점심.
먹을만하다.



카를 교 광장에서 구시가 광장으로 가는 골목 풍경






구시가지 광장
 11세기경 독일과 프랑스 상인들과의 상업활동이 활발해 지면서 상인들의 주거지가 들어서고 교회가 세워지면서 이 광장이 점차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구시가지 광장과 틴 교회
 아름다운 고딕양식의 이 교회는 1135년 외국 상인들의 숙박시설에 부속된 교회였단다.
지금의 교회는 1365년에 개축한 것으로 정식명칭은 “틴(세관) 앞의 성모마리아 교회”다.
교회 뒤편에 세관이 있었단다.



구시가지 광장

구시청사 종탑과 천문시계
 구시가지 광장 모퉁이에 있는 구시청사는 높은 종탑과 그 탑 아래쪽 기둥에 있는 천문시계가 유명하다.



천문시계
 천동설을 믿는 우주관에 기초해서 천체의 움직임과 시간을 표시하고 있다.
1490년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09시부터 21시까지 매 정시에 시계에 장치된 기계들이 작동하면서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볼만하다.
시계의 작동이 끝나자 종탑 위에서 악사가 트럼펫을 불어 분위기를 더해준다.



27개의 십자가
 구 시청 종탑 입구 바닥에 있다.
체코는 162년 빌라 호라 전투에서 합스부르크 家에 패하여 체코 측 지도자 27명이 이 광장에서 처형되었다.
이들 십자가는 처형된 이들의 머리가 두어졌던 곳에 새겨진 것이란다.



얀 후스 동상
광장 한복판에 있다.
얀 후스는 15세기 체코 종교개혁의 선구자다.
카롤대학 총장이면서 베들레헴 예배당의 설교사였던 후스는 로마교회의 타락을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1415년 화형에 처했다.
1915년에 동상을 건립했다.



성 미쿨라스 교회
 안으로 들어가려니 미니 콘서트를 여는 중이라서 티켓을 사서 들어가란다.



시민회관
 화약 탑 문을 빠져나가면 왼쪽에 호화로운 장식의 건물이 시민회관이다.
왕궁으로 쓰여오다가 17세기 후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11년 현재의 시민회관으로 완성하였다.



화약 탑
 이 탑은 1475년에 고딕양식으로 지은 것으로 구시가지를 지키는 성벽 문의 하나로 건축된 것이다.
17세기에 화약창고로 이용했었기 때문에 화약 탑이라고 부르게 됐단다.

구시가지 광장을 둘러보고 걸어서 호텔로 돌아갔다.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각각 분리되었다.
체코의 서부지역은 보헤미아 지역이라 불리며, 동부지역은 모라비아 지역이라고 부른다.
체코는 공산권 국가였으나 1981,018만 명9년 시민혁명으로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자유진영으로 돌아서
1995년 OECD에, 2004년에는 EU에 가입했다.

1,000년 전 세워진 프라하는 동유럽과 서유럽이 만나는 장소로 문화유산이 풍부한 도시다.
또한 체코는 유리공예와 맥주로도 유명하며, 훌륭한 예술가를 많이 배출하기도 했다.
<변신> 저자 카프카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저자 밀란 쿤데라,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 쓴 카렐 차페크, 작곡가 드보르자크와 스메타나 등이 모두 체코 출신이다.






면적 : 78,866km2
인구 : 1,018만 명.(2012년)
종족구성 : 체코인 90%, 모라비아족 4%, 슬로바키아인 2%.
종교 : 가톨릭 29%, 개신교 2%.
언어 : 체코어.
화폐 : 코루나($1 : 19코루나) (2010년)
1인당 GDP : $20,925(2011년)
수도 : 프라하.

<프라하의 봄>

체코슬로바키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에 점령되어 있다가 1944년 소련군에 의해 해방을 맞았다.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소련의 지원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 정부를 수립하고 억압적인 정치를 단행했다.
공산당의 독재와 경제정체, 슬로바키아 민족 감정의 악화가 계속되자 1968년 당 제1 서기가 된 두프체크(Alexander dubcek)는 개혁을 단행했다.

두프체크는 의회 제도를 확립시키고,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창설하며, 검열제도를 폐지하고,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등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자유화 운동을 단행했다.
이로써 스탈린 시대에 숙청당하고 권리를 박탈당했던 시민들이 복권되고 언론,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었으며, 공업과 농업분야의 개혁 기틀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다른 동유럽 국가로 퍼져 나갈 것을 두려워한 소련이 1968년 8월 20일 20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체코를 침공해 두프체크를 비롯한 개혁파 지도자들은 소련으로 연행했다.
그래서 프라하의 봄은 체코사태 라고도 불린다.

1968년 4월 시작된 프라하의 봄은 그 해 8월 소련이 침공하고 1969년 4월 두프체크 대신 후사크가 당 제1 서기가 되면서 끝나 버렸다.
체코정부는 이후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공산당의 독재가 계속되어 1989년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시민들의 자유는 회복되지 못했다..
(서진근 편저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벨벳 혁명>

벨벳 혁명(Velvet Revolution)은 1989년 체코(당시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비폭력 시민혁명으로 공산 정권이 무너지고 의회 민주주의 체제로 바뀜으로써 주위 동유럽 공산 정권들의 붕괴에 영향을 주었다.
벨벳은 “조용한” “평화로운”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평화적으로 이룩한 모든 혁명을 비유하는 보통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11월 9일로부터 8일이 경과한 11월 17일 프라하에서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이 반체제연합인 “시민포럼”을 조직해 수천 명의 학생과 집회를 벌이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공식 허가된 집회로 시작했으나 경찰이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하면서 마틴 스미드라는 19세의 대학생이 살해됐다는 소문이 번져나갔다.
이 소문을 믿은 국민들이 대규모로 시위를 계속하자 체코 공산 정부는 권력을 포기하고 일당체제를 철폐한다고 발표했으며 12월 10일에는 구스타프 후사크 대통령이 사임하고 마침내 12월 28일 바츨라프 하벨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혁명이 완성됐다.

벨벳 혁명 이후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를 도입한 체코는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며 옛 공산권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자본주의화에 성공한 나라로 꼽힌다.
(서진근 편저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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