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aragua
11월 23, 2018니카라과수도 Managua, 古都 Granada
7월 13일(금)
온두라스의 수도 떼구시갈빠에서 09시 43분 TICA를 타고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로 출발했다.
버스 기사가 여권과 출국세 us $11씩을 걷는다.
11시 40분 국경에 도착해서 일괄해서 여권체크를 하고 통과.
짐 검색도 형식적이다.
도로사정은 좋은 편이다.
호수를 따라 달린다.
주변은 광활한 초지.
16시 30분에 Managua에 도착해서 호텔 Casablanca에 투숙.
1인당 us $10인데 시설이 형편없다.
17시 35분에 시내 관광을 하고 택시를 타고 마나과 호수로 갔다.
호수로 가는 도로 옆 잔디밭에는 열악한 텐트촌이 있다.
난민촌을 연상시킨다.
마나과 호수는 오염이 심각하다.
철재로 만들어 놓은 전망대는 철판이 삭아서 위험할 정도다.
호수 건너편 멀리 모모톰보 화산이 보인다.
|  | 
| TICA Bus 터미널에서 | 
|  | 
| 환전상들 | 
|  | 
| 마나과로 가는 도중 작은 마을에서 | 
|  | 
| 마나과 호반의 조형물 | 
|  | 
| 마나과 호수 | 
니카라과는 중앙아메리카 7개국 중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나라다.
태평양 연안에 접해 있으며 아직도 활동하는 화산이 많아
화산과 지진피해가 많은 나라다.
1937년부터 불법으로 정권을 장악한 소모사 독재정권과 이에 저항하여 1962년에 결성된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 간에 17년간의 내전으로 경제는 피폐해 졌다.
거기에 더하여 공산화되어가는 산디니스타 정부를 고립시키기 위한 미국의 경제 제재로
중. 남아메리카에서 아이티와 함께 최빈국으로 꼽힌다.
특히 마나과는 1958년에 레온 시에서 옮겨진 니카라과의 수도로 1931년과 1972년에 대지진이 일어나 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현재도 시내 곳곳에는 붕괴한 건물들이 방치돼 있다.
시내 관광은 혁명과장을 중심으로 국립궁전(지금은 정부청사), 까데드랄, 현대미술박물관 등등이다.
|  | 
| 마나과 혁명광장의 국립궁전 | 
|  | 
| 까데드랄(대성당) | 
|  | 
| 혁명광장 공원 | 
|  | 
| 공원 | 
니카라과의 古都 Granada로 가기 위해 07시 50분에 로컬버스를 탔다.
가는 도중에 들른 작은 도시에는 주로 마차가 많다.
08시 40분에 그라나다에 진입하니 관광용이기는 하지만 마차들이 많이 다닌다.
도시의 규모로 보아도 마차면 충분할 것 같다.
09시에 중앙공원에 면한 시내 최고급 호텔 Alambra 에 도착했다.
여행 재미 중 하나가 물가가 싼 나라에서는 최고급 호텔에서 쉬는 것이다. 트윈 us $55.
중앙공원과 까데드랄 등을 둘러보고, 마차를 타고 니카라과 호수와 구시가지를 돌아봤다.
옛 거리는 잘 보존되어 있어 식민시대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  | 
| 그라나다 중앙공원 조각 | 
|  | 
| 그라나다 중앙공원 분수 | 
|  | |
|  | 
| 거리행진하는 학생 밴드 | 
|  | 
| 광장에서 학생들의 행진 | 
|  | 
| 우리가 투숙한 호텔 정원 | 
물가가 싼 나라에선 이런 호텔에서 호사를 부려 볼만하다(USD$ 55)
|  | 
| 호텔 앞 관광마차들 | 
|  | 
| 마차로 시내 관광 | 
|  | 
| 교회 | 
|  | 
| 니카라과 호수 | 
|  | 
| 정복자 프란시스꼬 뻬르난데스 꼬르도바 동상 | 
|  | 
| 요새 | 
|  | 
| 요새 내부 | 
옛거리
|  | 
| 산 프란시스꼬 교회 | 
관광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 오니 13시.
코스타리카행 TICA Bus 예약을 하려니 매진이다.
Cetral Line Bus 표 구입했다.
저녁에는 중앙시장을 돌아 봤다.
니카라과는 중앙아메리카 7개국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다.
태평양 연안에 접해 있으며, 아직도 활동을 계속하는 화산이 많아 화산과 지진의 피해가 크다.
자연재해와 오랜 내전, 산디니스타 정부를 고립시키기 위한 미국의 경제제재로 니카라과는 중-남 아메리카에서 아이이티와 함께 최빈국 대열에 들게 되었다.
1838년 9월 15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면적 : 129.494km2.
인구 : 599만 명(2010년).
종족구성 : 메스띠조 69%, 백인 17%, 흑인 9%, 인디오 5%.
종교 : 가톨릭85%. 개신교 12%.
언어 : 스페인어.
화폐 : 꼬르도바공용화폐 : 미국 달러.
환율 : .1$ : 21.85C. (2010년)
1인당 GDP : 995$(2009년)
수도 : 마나과.
주요수출품: 바나나, 커피, 설탕, 소고기, 담배
주요수입품: 산업자재, 소비재, 연료, 식량 등
<니카라과는 한때 공산주의 국가였다>
니카라과는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사회주의 무장조직인 산디니스타 해방전선(FSNL)의 지배를 받는 공산주의 국가였다.
19세기의 민족지도자 산디노(Sandino)의 이름을 딴 산디니스타민족 해방전선은 1937년 부정선거로 당선돼 대를 이어 독재해온 소모사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1962년에 결성됐다.
소모사 체제의 폭정 아래서 경제는 몰락하고 3만 명에 달하는 국민이 살해되었으며, 50만 명 이상이 주거지를 잃고 유민이 됐기 때문에 노동자, 농민, 학생들은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을 지지했다.
소모사 정권의 대대적인 소탕작전에도 불구하고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꾸준히 힘을 키워 도시들을 하나씩 점령하고 정부군을 무찔렀다.
소모사는 결국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에 쫓겨 1979년 7월 대통령을 사임하고 외국으로 망명했다.
산디니스타 정부는 시민의 기본권 보장과 복지제도 마련을 위해 노력했으나 정권을 잡은 뒤로 공산화가 심화하여 쿠바,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팽창을 두려워한 미국의 견제를 받게 됐다.
미국은 니카라과 원조를 중단하고 국제적인 단체의 지원도 차단했다.
그리고 산디니스타 정부 전복을 위해 온두라스에 기지를 둔 콘트라 반군(Contra, 소모사 잔당 등 산디니스타 정부에 반대하던 세력이 모인 반정부 단체)를 지원했다.
미국의 대대적인 조치와 내전의 후유증으로 국민들의 지지가 줄어들자 산디니스타 정부는 1990년 선거에서는 패배하고 정권에서 물러났으며, 니카라과는 다시 자유진영에 합류했다.
(서진근 편저 –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