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nmar – Yangon

11월 25, 2018

미얀마(1) – 황금의 도시 양곤


쉐 다곤 빠야

인도차이나 반도 5개국(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가기 위해 우리 일행 4명은 2006년 2월 10일 18시 40분 인천 공항을 출발 22 시12분(시차 2시간) 방콕의 돈므앙 공항에 도착했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시내 종점인 Kaosan Road에 도착 Four Son’s Palace Hotel 에서 1박했다.
다음날인 11일 하루 방콕 시내를 구경하고 저녁 20시 45분에 돈므앙 공항 출발하여 21시15분(시차 30분) 양곤 공항에 도착했다. 낯선 곳에 밤늦게 도착하면 언제나 숙소를 잡는데 애를 먹는다. 나름대로 몇몇 곳을 정해놓고 가지만 현장의 사정은 여의치 않은 때가 잦다.
양곤의 대표적인 관광 코스가 깐도오찌 호수를 끼고 쉐다곤 빠야를 중심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기에 깐도오찌 호수 근처로 숙소를 잡기로 하고 택시를 탔다.
먼저 니꼬 호텔로 갔다. us$250 이라는 것을 흥정하니 us$180 까지 해주겠단다. 너무 비싸다.
기사가 아는 곳이 있으니 가잔다.
Old Town에서 멀지 않은 Olympic Hotel로 갔다.
중국인이 경영하는 호텔인데 오늘은 토요일이니 us $14에 자고 내일은 us $26을 내란다.
트윈룸 하나에 2일간 us $40이다.
물론 에어컨, TV, 욕실이 완비된 쓸만한 호텔이다.
왜 토요일에 방을 싸게 주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몇 년 전 에이레의 수도 더블린에서 같은 경험을 했다.
노드 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더블린으로 들어가는데 조금 늦었다.
토요일인데 방이 없으면 어쩌나 하면서 호텔에 들어서니 썰렁하다.
빈방이 있느냐고 했더니 쾌히 있단다.
그러면서 얘기도 안 했는데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싼값에 준단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토요일에는 가족들끼리 모이기 때문에 호텔에 손님이 없단다.
그래서 토요일 방값이 따로 책정되어 있단다.
이 호텔도 같은 이유에서 싸게 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고맙다.
첫날부터 잘 풀려나간다.
프런트에서 좋은 방을 주었다고 생색을 낸다.
5층 방에 올라가 보니 멀리 쉐다곤 빠야의 종 모양 탑에 조명이 비춰 황금빛으로 찬란하다.



2006년 2월 12일  (일)
어제 공항에서 타고 온 택시를 us $20을 주기로 하고 하루 전세했다.
미얀마는 도로사정이 열악하다.
바간을 거쳐 만달레이를 버스로 돌아오려면 1주일은 잡아야 한다.
우리 일정으로는 시간이 없다.
시간이 돈이다.
그래서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관광을 시작하기 전에 양곤 – 바간 – 만달레이 – 양곤을 도는 국내선 비행기 표를 확보해야 했다.
프런트에 어젯밤에 애기를 해 놓았는데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항공사 직원들이 조금 늦게 출근한단다.
9시 20분이 돼서야 확약을 받고 돈을 지급하고 관광에 나섰다.
시내에 있는 볼거리를 기사가 순서대로 안내하기로 하고 먼저 시청
근처 번화가에 있는 Sule Paya로 갔다.



*. Sule Paya.

양곤 시내 가장 번화가 한복판에 남대문과 같은 위치에 있다.
팔각형 종 모양의 파고다의 주 건물은 수리 중이다.
힌두교 양식과 미얀마 전통의 Nat과 결합하고 다시 불교와 합쳐진 양식으로 도심 한복판에 높이 46m짜리로 지은 건물이다.
2,000년이 넘었단다.




술레빠야 전경

술레빠야 주변 탑

썬 블록을 바른 사내 아이와 함께

사원 입구에서 방생용 새를 파는 여인

사원 입구의 스님과 신도

양곤 시내 중심도로. 사원 앞 대로
 남자들이 치마를 입는다.




보따따웅 사원 전경
 *.Botataung Paya.

보따따웅 빠야는 두 올의 부처님 머리카락을 모시고 있는 사원이다.
佛紀 103년에 건립되었는데 2차대전 때 피폭된 것을 재건했다.




법당

佛髮(불발)을 모신 聖所

기도하는 母子
 *.Shwedagon Paya.

미얀마 어로 Shwe는 황금이라는 말이고 Dagon은 양곤의 옛 지명이다.
그러니 황금의 다곤, 황금의 도시 양곤이라는 뜻이 된다.
거대한 黃金鐘을 엎어 놓은 둣한 이 사원은 양곤의 자랑이며 世界最古, 미얀마 最大의 사원이다.
밤이든 낮이든 양곤의 중심부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때문에 “황금의 도시 양곤”(Shwe Dagon)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 사원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부처님 생전에 지어진 사원이란다.
전설에 의하면 미얀마의 형제 상인 Tapussa와 Bhallika가 隊商을 이끌고 인도에 갔을 때 득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은 고타마 싯달타를 만나서 약간의 보시를 하고 佛髮 여덟 올을 얻어서 돌아왔다.
이 상인은 부처님 머리카락을 Okkalapa 왕에게 바쳤는데 왕은 20m짜리 빠야를 세우고 그 안에 부처님 머리카락을 봉안했다.
그 후 여러 차레 확장해서 지금은 원형인 밑면의 둘레가 432m, 높이가 99.3m, 주위에 64개의 작은 빠야들이 세워졌다.
표면은 2만여 개의 황금 판이 붙여져 금의 무게만도 7톤가량 되고, 빠야의 상층부 산개(Umbbrella)에는 5,448개의 다이아몬드,
2,317개의 루비, 사파이어 등 각종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다.
빠야의 곳곳에는 1,065개의 황금 종과 420개의 은 종이 설치되어 있다.
제일 꼭대기에는 76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설치되어 있답니다.
주차장에서부터 맨발로 들어가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돌아보고 계단으로 내려왔다.
웅장 화려하지만 차분하며 친밀감을 주는 분위기이다.
일요일이라서 인지 수많은 참배객이 들어와 있다.
자기 마음에 드는 부처님을 모신 법당에 들어가 기도를 하든지 스님의 독경을 듣든지 법당에 앉아서 하루를 부처님과 편하게 지내는 듯한 모습이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30%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돌아 나오는데도 2시간은 걸렸다.



쉐다곤 입구 관리소

쉐 다곤 빠야

傘蓋(Umbrella)


鐘 모양 탑

부처님 상

기도하시는 분

鐘 모양 탑

쉐다곤 빠야 광장

독경을 듣는 여신도

종각 안의 신도들
 어느 장소에서나 편안하게 쉬듯이 앉아 있다.



부처님을 가까이서.

종 모양 탑(쉐다곤 빠야)

도사?

수문장
 입구마다 다양한 모형의 지킴이들이 있다.



傘蓋에 치장되어 있는 보석들
 전시된 사진을 찍은 것임.

*.Kan Daw Gyi(깐도우지) 호수와 까라웨익

깐도우지 호수는 쉐다곤 빠야를 짓기 위해 언덕을 쌓는 흙을 판 자리에 생긴 호수란다.
이 호수에는 왕실 바지선을 본떠 만든 움직이지 못하는 거대한 배에서 식당을 한다기에 찾았더니 茶만 판단다.
그 입구의 언덕 위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언덕에서 호수 건너편의 쉐다곤빠야를 보는 경치가 아름답다.
호숫가를 따라 놓은 나무다리를 걷는 정취도 아주 좋았다.



왕실 바지선을 본떠 만든 까라웨익

왕실 바지선을 본떠 만든 까라웨익

찻집 입구


언덕 위에서 바라다본 깐도우지 호수와 건너편 쉐다곤 빠야.
이 지역이 국립 자연공원이다.



식당 언덕에서 본 호수 풍경

호숫가에서 만난 아이들


*.Chauk Tatgy Paya.(차욱따찌 빠야)

“여섯 번 칠한 누워계신 부처님”이라는 뜻.
높이 8m에 길이 67m.
발바닥에 108문양은 욕계, 색욕계, 무욕계를 나타낸 것이란다.





발바닥 문양


*.Kaba Aye Paya(까바아예 빠야)

미얀마가 195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인도의 네루 수상이 보내준 산치 대 탑에서 발견된 부처님의 진신 사리와 목련존자와 바리불 존자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사원.

미얀마에서 가장 소중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주 건물은 보수 중이다.
불교창시 2,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사원이다.
이곳에서 소승불교 제6차 경전결집대회가 열렸다.




주 건물은 수리 중이고 꼭대기 傘蓋만 보인다.




법당에서 기도하는 신도들
 로까찬타 옥불사원

높이 10m에 무게 600톤의 白通玉으로 조성된 좌불.
가운데 부처님을 향해서 네 귀퉁이에 경배하는 백옥 상이 모셔져 있다.
이 옥돌을 옮기기 위해 임시 철도를 놓고 3년의 운반 기간을 거쳐 2000년에 완공했단다.




사원 입구 사자 상


白玉 부처님 좌상


중앙의 부처님을 향해 경배하는 네 귀퉁이에 설치된 백옥 상들






미얀마의 원주민은 Mon족으로 그 세력은 지금의 태국까지 미쳤었으나 9세기경 지금의 버마족들이 티베트 고원에서 이주해 오면서 밀려나 현재는 버마족이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전두환 대통령 때 우리의 아까운 인재들이 아웅 산 국립묘지에서 처참하게 희생을 당한 곳이다.

미얀마의 수도 양곤은 북부 안다만 海의 마루따반 灣에서 아예야와디 강(지금 명칭)을 따라 30km 들어온 내륙에 있다.

1757년 알라웅빠야 왕이 미얀마를 통일하고 Dagon으로 알려진 도시를 재건하여 양곤(투쟁의 종식)이라고 고쳤다.

수도는 만달레이이었다.

그 후 포르투갈 , 프랑스, 영국의 침공을 받아 오다가 영국이 미얀마의 수도 만달레이를 점령하고 1885년에 양곤으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Rangoon으로 고쳤다.

1988년 이후 식민지 잔재를 없애기 위해 지명을 원래 대로 변경하였다.
*. 황당하게 당한 일.

어젯밤에 10시경에 공항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해 나오는데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 유니폼 같은 옷을 입은 여자가 가까이 다가와서 지금 너무 늦어서 환전소는 문을 닫았으니 자기가 좋은 레이트로 환전을 해 주겠단다.

환전소 안에는 환율이 us $1:450 kyat라고 쓰여 있는데 자기는 900 kyat를 주겠단다.

밤도 늦었고 환율도 좋은 것 같아서 us $300을 환전했다.

호텔에 와서 확인해 보니 $1:1030-1080 kyat 까지도 된단다.

환전하지 않고도 1달러에 1000 kyat로 계산하면 불편 없이 쓸 수 있었다.

<아웅산 수치(Aung San Sun Kyi) 여사>

아웅산 수치 여사는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1945년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난 수치 여사는 두 살 때 아버지가 살해당하자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수치 여사는 인도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젊은 시절 수치 여사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학자적인 인물로 일본과 인도, 영국 등에서 공부를 계속하다가 1988년 4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귀국하게 됐다.
수치 여사가 귀국할 당시 미얀마는 장기화된 독재에 시달리고 있었으나 미얀마 내 민주화 세력은 하나로 통합되지 않아 독재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있었다.

1988년 8월 8일 시작된 미얀마 민주화 운동 중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시위를 잔악하게 진압해 3,000여 명의 사상자가 나오자 수치 여사는 NLD(민족민주연합)을 결성하고 군부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수치 여사는 미얀마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며 민주화 세력의 구심점이 되었다.

시민의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군부는 결국 무력 진압을 포기하고 총선을 약속했으나 1990년 5월 선거에서 수치 여사는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고 그녀가 이끌던 NLD도 총선에서 승리했으나, 군부는 선거를 무효로 선언하고 수치
여사를 가택에 연금했다.

1995년과 2002년 잠시 가택연금이 해제되기도 했지만, 2003년 민주화 단체와 군부 사이의 충돌로 세 번째 가택연금이 실시됐다.
이 가택연금은 2007년 5월 해제될 예정이었으나, 군부가 국제사회의 여론을 무시하고 연장시키면서 수치 여사는 지금까지도 연금 상태에 놓여있다.
(서진근 편저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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