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 Long Bay
11월 25, 2018하롱베이
2006년 3월 7일(화)
오늘도 비가 내린다.
Hue까지는 날씨가 좋았는데 하노이에 도착해서부터 비가 내린다.
하롱 만 섬 구경은 날씨가 말해주는 것인데 이틀을 예정하고 떠나면서도 걱정이 된다.
8시에 버스가 출발해서 중간에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수를 놓아서 작품을 만드는데 대단하다.
繡를 놓아 만든 작품 |
cat ba는 sand lady이라는 뜻이란다,
하롱 만 섬 들을 구경하려면 갓바 섬까지 한 바퀴 돌아야 한단다.
하롱씨티에서 갓바 섬 까지는 약 3시간-4시간 배를 타고 가면서 바다의 섬들을 보며 즐긴단다.
코발트색, 비취색의 바다에 떠 있는 수천 개의 섬이 물에 비친 그림자가 바다 색깔과 어우러져 황홀한 경치를 보여 준다는데 오늘은 비가 온다.
갓바 섬으로 가는 방법은 하롱씨티에서 가는 것과 하이퐁에서 가는 배가 있다.
대부분 관광객들은 하롱씨티에서 출발하는 당일 코스를 택하는데 30%도 구경을 하지 못한다.
우리는 갓바 섬에서 1박 하기로 했다.
하롱베이 항구 |
돛단배 |
東天 동굴로 가는 배 |
동굴을 들어가는 길 |
동굴입구 |
석순 |
바다풍경 |
손님이 생선을 사면 선원이 주문대로 요리(회, 데침 등)를 무료로 해 준다.
가격은 서울 가격이나 마찬가지. 1km에 $20.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 고객이란다.
“싸다, 싸다”(?)
생선 종류도 모르고 값도 모르면서 ………
생선가게 |
과일장수 |
정크선 살림 집 |
프랑스 영화 “인도차이나” 촬영 장소 |
동굴탐험 |
동굴 속에서 바깥 풍경 |
일엽편주 |
갓바 야경 |
갓바시내 |
갓바 야경 |
노인과 고양이 |
시골집 |
산 정상에서 |
우리 일행 |
새벽의 갓바 풍경 |
새벽의 갓바 풍경 |
부두의 두 여인 |
새벽 갓바 항구 풍경 |
대나무 배 |
대나무 배를 탄 세 여인 |
아침 식당 |
바위섬 |
배와 두 여인 |
피로연장 |
신랑 신부 |
피로연 식단 |
3월 9일(목)
이틀 동안의 하롱 만 여행을 하고 아침 8시 15분에 갓바항을 출발했다.
역시 부슬비가 내린다.
비에 젖은 바다는 우리에게 태초의 진짜 모습을 보여 주려는 가보다.
그러나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움을 안고 하노이로 향했다.
하노이에서 갓바를 다녀오려면 혼자 행동해도 별 지장이 없겠다.
하롱씨티 까지는 시외버스로, 유람선은 갓바까지 다니는 것이 많고
갓바에서의 교통수단은 오토바이 뿐이다. 호텔도 $5 이내로 싸다.
바다풍경
2006년 3월 10일
귀국하는 날이다.
비행기 편이 밤 23시 30분에 있으므로 하루 여유가 생겼다.
시내를 더 돌아다니다가 외곽에 있는 민속박물관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하노이를 간다면 꼭 들러 보라고 권할만한 장소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29박 30일간을 반추해 본다.
5개국을 한 달 만에 다닌다는 것은 여행한다고 하기에는 너무 짧다.
앞으로는 이렇게 허둥대지 말고 한두 나라만 묶어서 여유롭게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지금 세계는 급격히 개발되고 있어서 옛 문명이 온전히 보존되고 있는 곳이 흔치 않다.
그러나 히말라야 산 기슭에 사는 소수 민족은 아직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는 부족들이 많다.
취향이 맞는 사람들끼리 다시 한번 계획을 짜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끝날 때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나 미얀마의 바간이 그렇고 라오스의 루앙뿌라방 근처, 위왕짠으로 가다가 왕비엥을 들르지 못한 것,
베트남에서 사파 등 캄보디아 국경지역을 들러보지 못한 것 등이 그렇다.
여행은 떠나면 되는 것이니 다음을 또 기약해 본다.
면적 : 329,560km2.
인구 : 8,440만 명(2006년)
종족구성 : 베트남인 89%, 타이, 무엉, 크메르족 등 53개 소수민족.
종교 : 불교 80%, 가톨릭 7%, 까오다이교 4%, 호아하오교 2%.
언어 : 베트남어.
화폐 : 동(1$;15,746동. 2005년)
1인당 GDP 631$, 2005년)
수도 : 하노이.
<略史>
베트남은 雲南 高原에서 뻗어내린 안남산맥 동쪽에 남북 최대길이 1,650km, 동서 최대길이 550km(북)-350km(남)로 산악이 많은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다.
BC 200년경 베트남어를 쓰는 민족이 Nam Viet 왕국을 세워 베트남 북동부와 중국 남부를 지배했다.
BC 111년 前 漢에 점령당하여 1,000년간 지배를 받았다.
AD 1세기경 인도의 영향을 받은 푸난 왕국이 메콩삼각주 일대에 일어났으며 6세기경에 멸망했다.
939년 북부지역이 중국으로부터 독립했고 13세기에 3번의 몽골의 침략을 격퇴했다.
1407년 중국에 다시 점령되었으나 1428년 중국인들을 몰아내고 독립했다.
1802년 구엔 안(阮映) 장군이 전국을 통일하고 왕조(嘉隆帝)를 세워 1945년 호찌민에게 정권을 이양할 때까지 훼를 수도로 하여 왕조를 이끌어 갔다.
19세기 후반 프랑에 정복되어 갔으며 1883년-1939년에는 식민지로 1939년-1945년에는 식민지로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1945년 호찌민의 영도 아래 황제로부터 정권을 이양받아 독립을 선언했으나 프랑스의 반대에 부딪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나 7월 21일 제네바 협정으로 북위 17도 선을 경계로 북쪽에는 소련이 간여하는 공산정권이 남쪽에는 미국이 간여하는 자유진영이 국가를 세웠다.
그 후 남부에서 공산주의자들의 게릴라 활동이 강력해지자 미국이 개입한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1955년-1975)이 발발했다.
1973년 휴전협정을 체결하고 미군이 철수했다.
1975년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침공하여 1976년 7월 2일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통일되었다.
1978년 캄보디아와 국경분쟁이 있었고 1979년 캄보디아를 침공하여 폴포트 정권을 몰아내고 친베트남 정권을 세웠다.
1980년 초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군대를 주둔시켰다가 1989년에 철수하였다.
1976년 공산화에 성공한 베트남은 사회체제를 공산주의 체제로 전환하였으나 곡물생산마저 줄어들어 쌀조차도 자급자족이 안 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1980년 중반 정치지도자들은 공산주의 체제의 모순을 발견하고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하여 경제 개혁개방정책을 도입하여 경제자유화조치로 시장경제를 허용하였다..
“도이모이”는 “개혁개방”을 의미한다.
도이모이 정책을 내세울 때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가 “가난한 자는 부유하게, 부유한 자는 더욱 부유하게”라는 것이었다.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 자급자족도 못하던 쌀 산출량이 급격히 증가하여 지금은 세계최대의 쌀 수출국이 되었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자유진영국가들과 관계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외자 유치에 의한 경제발전에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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