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xico – Oaxaca

11월 29, 2018

멕시코 – 오하까



2007년 6월 23일(토)

이제 중앙고원지대에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07시 Hotel Isabel을 출발해서 동부 버스터미널로 갔다.
09시, ADO Bus(1등 344페소/1인) 출발, 도로공사로 1시간 정체.
10시 12분 멕시코 TG 통과.
3차선 고속도로 상태 양호, 해발 2,780m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간다.
고산지대에 목장들이 많다.
해발 1,900m 지대부터는 옥토 평야.

11시 15분, Puebla 통과.
12시 30분, Banoblos TG 통과. 선인장과 옥수수 재배.
12시 51분, Oaxaca TG 통과하여 다시 산악지대로 올라간다.
13시 29분, 1,850m 고원에서 용설란 재배.
고속도로 정체로 상당시간 지체.
15시 40분, Oaxaca 도착. 해발 1,320m. 빨렝게행 버스표 구매(498페소/1인)
16시 30분, Hotel Monte Alban check in.(350페소/트윈)
16시 40분, 관광 시작. 소깔로, 까데드랄, 라 솔레다드 교회 등.

오악사까는 수천 년 전부터 사뽀떼까 인들이 살면서 근교 몇 곳에 유적을 남겨 놓았다.
15세기경 사뽀떼까 인들이 쇠퇴하면서 아즈떼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1,528년 스페인의 꼬르떼스에게 점령당했다.

꼬르떼스는 오악사까에 도시를 건설하면서 원주민들을 심하게 박해하지 않아 멕시코에서 인디오가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 출신 인디오 베니또 후아레스는 원주민으로서는 유일하게 멕시코 대통령을 지냈다.

시내에는 잘 보존된 꼴로니얼 시대의 건물들이 있고 “산또 도밍고 교회”, “라 솔레다드 교회” 등 볼만한 건축물들이 있다.

조용한 시내 분위기 때문인지 스페인어 학원들이 많다.
옛 저택들은 스페인어 학원이나 호스텔, 식당 등으로 활용되어 은은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오악사까는 과달라하라와 마찬가지로 데낄라의 명산지다.
이곳에서는 “메즈깔”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병 속에 애벌레가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주조용 선인장(용설란)에 있는 애벌레를 술 안주로 먹기도 한단다.



오악사까주 지도


공원에 있는 정자

공원에서 연주하는 밴드
 주말이라서 인지 악단의 연주가 있다.




거리풍경


기념품 파는 원주민



옛 도로



관광객끼리도 서로 관광 대상이다.



창가의 장식물



시장 풍경




길을 묻는 同行
 길을 찾을 때는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
열심히 설명하는 아가씨들도 관광객이다. 그들은 스페인어를 잘하는 사람들이다.



스페인어 학원

Iglesia de Santo Domingo
 멕시코식 바로크 양식의 교회다.
1,575년부터 약 1세기에 걸쳐 건축되었다.
종루가 아름답다.
이 교회에는 천장에 “생명의 나무” 부조와 2개의 황금 제단이 유명하다.




황금으로 장식한 主祭壇

황금 제단


생명의 나무
 교회 입구에 들어서면 천장에 聖 도밍고를 중심으로 聖者의 相關 圖가 목제 부조와 금박으로 화려하게 묘사되어 있다.




천장을 받치고 있는 기둥


천장 그림

성 도밍고 동상


주제단 오른쪽 별실에 “싼따 로사리아” 예배당이 있다.
제단의 장식이 모두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제단 옆 황금으로 장식된 기둥

제단 옆 기둥

천장

산또 도밍고 교회로 향하는 여행객

Iglesia de la soledad
 1682년부터 1690년에 걸쳐 지은 교회.
뒤편 종교 박물관에 “고독의 성모”를 모시고 있다.




예술궁전(극장)



식당


대문을 들어서면 멋진 저택의 안뜰을 보며 고급스러운 식당이 준비되어있다.
옛 저택들이 식당, 호스텔, 어학원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식탁 뒤로 보이는 기둥을 보면 저택의 규모가 짐작된다.




안띠구아에서도 보았지만, 저택들의 대문은 수수하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서면 거대한 기둥이 받히고 있는 저택이 나타난다.
정원에는 풀장도 있고 後園은 꽃밭이다.
정복자들이 얼마나 호사했는지 가늠되는 장면이다.
<멕시코 유까딴에 이주한 한인들>
러일전쟁 직후인 1905년 3월 6일 1.033명의 한인이 제물포항을 떠나 1905년 5월 15일 멕시코의 오악사까주 살리나크루스(Salinacruz)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최초로 중,남아메리카에 이주한 한인들로, 유까딴 반도 곳곳으로 옮겨져 20개 이상의 에케넨 농장에 수용되었다.

에케넨(Enequen)은 멕시코가 원산지인 높이 1-1.5m, 너비 30-40cm가량의 가시 돋친 잎이 나는 선인장의 일종이다.
완전히 자란 에케넨 잎을 잘라서 으깨면 흰색 섬유를 얻게 되는데, 이 섬유는 질기고 바닷물에도 잘 부식되지 않아 닻줄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당시에는 해양 업과 파나마 운하 건설을 비롯한 토목공사들이 성황이었기 때문에 에네켄 밧줄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농장주들은 부지런하고 착실한 한인 노동자들을 선호했으나, 한인들은 에네켄 가시에 찔리며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에네켄 농장의 노동이 열악하고 가혹하다는 것이 국내에도 알려지자 고종은 당시 외무 차관이던 윤치호를 멕시코에 보내 실태조사를 시키려 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현지조사에 실패하고 조선은 더 이상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없었다.

에네켄 농장의 한인들은 1909년 5월 12일 4년간의 계약이 끝났으나 조선은 이들을 불러들일 힘이 없었다.

그나마도 1,910년 경술국치로 고국이 사라지게 되자 노동자들은 귀향하지 못하고 멕시코와 중,남아메리카 전역에 흩어지게 되었다.

이들은 여전히 고된 노동에 시달렸지만, 그 와중에도 한글학교를 세우고 독립자금을 보내는 등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현재 멕시코에는 약 3만 명가량의 한인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유까딴州의 州都인 메리다(Merida)에 한인회가 조직되어 있다.
(서진근 편저, UN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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