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xico – Guanajuato
11월 29, 2018멕시코 – 銀鑛山에 만든 명품도시 과나후아토(Guanajuato)
2007년 6월 21일(목)
멕시코 씨티에서 중앙고원을 가로질러 5시간 정도 달리면 18세기에 세계 銀 생산량의 1/3을 차지하던 고원도시 과나후아또가 있다.
이 도시는 16세기경에 銀鑛開發로 시작된 도시로 18세기에는 은광산 붐이 가져다준 富로 이 도시를 멕시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었다.
銀鑛石을 채굴하느라고 만든 갱도를 지하에서 사통팔달 연결해서 자동차도로로 활용하고 군데군데 도심으로 올라오는 통로를 만들어 도시 중심에는 자동차들이 다니지 않는 조용한 도시로 만들었다.
멕시코에 있는 수많은 꼴로니얼 도시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이 도시는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으로 등록 시 전체를 보호, 관리하고 있다.
한편 멕시코 독립의 지도자인 “미겔 이달고” 신부가 과나후아또에서 55km 떨어진 “똘로레스 이달고”에서 1810년 9월 16일 “똘로레스의 외침”을 주장하며 독립선언을 한 후 내전이 격화되어 과나후아또에서 격렬한 전투가 있었던던 유서깊은 도시다.
우리는 과달라하라에서 과나후아또로 갔다.
멕시코 씨티에서 가는 거리가 비슷하다.
06시 40분, Sanjose Hotel 출발.
07시, 버스터미널 도착.
07시 40분, 과나후아또로 출발.
13시 10분, 과달라하라 도착.
버스터미널은 과달라하라 올드타운 외곽지역으로 택시로 시내 진입.
13시 30분, 시내 진입하여 호텔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14시 50분, 시내 중심지에 Hostel check-In. 150페소.
과달라하라를 출발한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려 11시에 Leon에 도착,
10분 정차하고 출발,11시 45분 고속도로 정체로 지체되었다.
도로가 막히니 잡상인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과나후아또의 뉴타운은 광산도시서 꽤 떨어져 있다.
버스에서 내려서 택시를 탔다.
시내에 거의 다 들어가니 지하차도로 들어간다.
지하차도에서 기사가 가는 곳을 묻는다.
舊 시가지에서는 극히 일부 외곽 지역을 빼고는 지상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없단다.
지하차도가 사통팔달이다.
이것이 모두 옛날 은광산 갱도란다.
군데군데 주차장도 있고 주차장이 있는 곳에는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올라 가면 시내 중심가로 나온다.
오래된 거리는 하나도 변형시키지 않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
지상의 좁은 골목은 옛 정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호텔을 잡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번듯한 호텔은 뉴타운에나 있는지 올드타운에는 없다.
한참을 찾아다니다가 론리프라넷에 소개된 호스텔로 갔다.
시내 중심가 바로 뒷골목, 위치가 좋은 곳에 있는 깨끗한 호스텔이다.
각방에 욕실이 있고 공동취사장도 있다.
젊은 일본여자 둘이 벌써 한 달째 있단다.
주인 여자도 대단히 친절하다.
집 앞에서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중앙광장이다.
광장이라고 해 봐야 테니스장 서너 면 정도다.
그 주변에 주요 볼거리들이 몰려 있고 두세 갈래 골목을 오르내리며
모두 보게 되어 있다.
이 도시는 교육과 문화의 도시란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든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고 젊은이들이 북적인다.
시내로 진입하는 지하도 |
지하도 안 주차장 |
올라가면 바로 시내 한복 판이다.
지하차도에서 시내로 나오는 길 |
삐삘라(Pipila) 동상 |
이 거대한 조각상의 주인공 삐삘라는 광산노동자 출신으로 독립전쟁 때 혼자서 횃불을 등에 지고 정부군 요새로 돌격한 인디오 투사로 멕시코 독립 사에 나오는 영웅이다.
삐삘라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시내 전경 |
중앙에 Catedral이 보이고 그 앞에 라 빠스 광장이 보인다.
아름다운 시내모습 |
시내를 배경으로 한 컷 |
라빠스 광장 |
기념광장 |
라 꼼빠니아 교회 |
정면의 추레스꼬 양식의 조각이 화려하다.
산 디에고 성당
1663년부터 100년이 너머 걸려 지은 바로크양식의 교회.
정벽면 벽면의 장식이 수려하다.
성당 정문 조각 |
성당 내부 |
라 우니온 공원 |
관광객들의 쉼터.
공원 |
Catedral |
까떼드랄 내부 |
거리풍경
지하차도 입구 |
인디오 밴드의 거리연주 |
인디오 연주가 |
조각상이 있는 거리풍경 |
광장의 젊은 여행객들 |
자하차도에서 올라 오는 계단 |
시내 군데군데 있다.
페품을 활용한 화분 |
저녁나절의 거리풍경 |
Universidad de Guanajuato |
Mercado Hidalgo |
이달고 시장 |
“이달고 시장”은 옛 철도역 건물을 종합시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후아레스 극장 |
광산 붐이 가져다준 부를 가지고 멕시코에서 최고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건물로 지어졌다.
정면 현관은 도리아 양식의 기둥, 두 마리의 사자 동상이 양편에 앉아 있는 고대 그리스 양식을 본떴다.
내부는 프랑스 17세기 풍에 아랍양식을 혼합시켜 금을 아끼지 않고 사용하여 호화의 극치를 보여준단다.
내부를 구경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국제 세르반테스 축제장으로도 쓰인다.
후아레스 극장 |
후아레스극장 앞 사자상 |
후아레스 극장 계단 앞 풍경 |
어두어 지자 후아레스 극장 옆 공터에서 마임(어릿광대?)을 하는 연기자가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후아레스 극장 앞에서 “마임”을 하는 사람이 나가자 꽤 규모가 있는 악단이 활기찬 곡을 연주한다.
앞에 뚱뚱한 아줌마는 웃기는 춤으로 관광객을 즐겁게 해준다.
일본사람들이 상당한 촬영장비를 가지고 (전문가들?) 촬영을 했다.
“입맞춤 골목” |
옛날에 서로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서로 마주 보고 살았는데 부모들의 반대로 편히 만나지 못하고 2층 창문을 통해 “입맞춤”을 하며 사랑을 나누었다는 전설에서 “입맞춤 골목”이라는 이름을 얻었단다.
저녁이 되고 가로등이 켜지자 골목 위쪽 작은 광장에서 악사들이 모여 연주를 한다.
이곳을 출발해서 “입맞춤 골목”을 누비며 다닌다.
어느 집 앞에서 연주가 끝나면 다음 집으로 향한다.
연주는 음악을 신청한 집 앞에서 한다.
음악을 신청하는 사연도 가지가지….
사랑의 세레나데부터, 생일축하 등등….
좁은 골목 2층을 연결한 낭만적인 카페에서 연인들이………..
이 골목 앞에서 연주했다.
한 시간여를 따라다니며 위의 사진을 한 장 얻었다.
그 자리를 오래도록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서성이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Miguel Hidalgo 신부.
1,753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예수회에서 교육을 받고 가톨릭대학교 “바야돌리드”의 교수로 있으면서 학교에서 계몽주의적인 개혁안을 발표하여 권력과 결탁한 가톨릭 지도층들을 비판하였다.
이 때문에 인디오, 흑인 노예들의 집단거주지로 좌천되었다.
이곳에서 이달고 신부는 사회개혁계획을 수립 추진하여 교회가 빈곤계층의 구제임무 수행을 주창하였다.
1,810년 9월 16일(일) 새벽, 감옥을 열어 죄수들을 석방하고 대신 스페인 관리들을 가두고 교회 마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강론에서 교구민들이 부패한 정부 타도운동에 동참하라고 요구하였다.
광산, 농장, 공장에서 일하던 유색인들 600여 명을 이끌고 대정부 저항운동을 시작한 이달고 신부에게 순식간에 100,000여 명이 동참하여 강력한 저항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날 새벽 이달고 신부의 강론은 후에 공식적으로 “돌로레스의 외침”으로 명명되었다.
이달고 신부는 1,811년 7월 30일 처형되고 가톨릭대학 제자인 모렐로스 신부가 뒤를 이어 운동을 이끌었으나 그도 1,815년 12월 22일 처형되었다.
이달고 신부의 “돌로레스의 외침”으로 시작된 스페인 지배에 저항하는 운동은 독립전쟁으로 발전하여 결국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다.
훗날 멕시코인들은 이달고 신부를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하여 “돌로레스의 외침”이 있던 9월 16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하였다.
돌로레스는 과나후아또에서 55km 떨어져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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