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xico – Cancun, Tulum

11월 28, 2018

멕시코 – 칸쿤, 툴룸



2007년 6월 29일(금)

08시45분, 호텔 Parado 첵크 아웃하고, 버스를 타고 깐꾼 해변을 돌아보고 뚤룸으로 출발했다.
깐꾼은 멕시코 최남단 유까딴 반도 남동쪽 끝에 있다.
육지와 2개의 교량으로 연결된 산호섬에 멕시코 최대의 휴양지가 건설되어 세계의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 곳이다.
1년 중 청명한 날씨가 300여 일이 넘고 평균 27도의 날씨는 휴양지로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밀가루처럼 고운 백색의 모래사장 뒤로 세계 일류 호텔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온갖 해양 레져를 모두 즐길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세계에서 3-4번째로 넓은 산호초를 품고 있는 바다는 카리브 해의 찬란한 태양과 물빛으로 관광객을 유혹한다.
이곳은 휴양지로서 또 마야유적의 관광 거점으로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주변 관광지로는 치첸이트사, 뚤룸, 꼬수멜, 이슬라 무헤레스 등등이 있어 시내에서 출발하는 다양한 코스의 투어를 따라다니며 즐길 수 있다.
13시 30분, 뚤룸 유적지에서 나와 트랙터 열차 편으로 뚤룸 시내로 들어 갔다.
13시 55분 뚤룸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16시, ADO Bus로 “벨리세”에 인접한 국경도시 Chetumal을 향해 출발했다.(144페소/인)
19시 17분, 체뚜말 도착.
19시 45분, Hotel Santa Teresa Check-in(400페소/트윈)


하늘에서 본 깐꾼 비치

(빌려온 사진)


깐꾼 도심 로터리 조형물.
이 로터리 근처에 호텔을 잡았다.



깐꾼 해변과 호텔

깐꾼 해변 카페에서


해변에서

깐꾼 도로변 호텔 앞 조형물

유명한 클럽 앞 설치물
 버스(72페소)를 타고 뚤룸으로 가는 도중에 휴양지 Xcaret, Xel-ha를 지나갔다.
11시 46분 뚤룸 유적지 입구에 도착해서 짐을 맡기고,
12시 10분 뚤룸 입장(45페소/1인)

뚤룸은 AD 1,200년경, 마야 후기의 유적이다.

카리브 해 바닷가 절벽 위에 새워진 이 도시는 꼬수멜, 이슬라 후에레스, Central Mexico, Guatemala 등과 교역하면서 번성하던 곳이다.

언덕 아래 카리브 해의 멋진 풍광에 끌려 관광객들도 유적관광 도중 수영을 즐기는 모습이 유적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다.

입구에 들어서자 매표소가 있는 광장에 높은 장대 위에서 줄을 발에 감고 빙글빙글 돌벼 내려오는 민속 쇼가 관광객을 맞는다.
장대 위에 모여 앉아 있던 사람들이 물구나무를 서듯 거꾸로 떨어져 밧줄에 달려 원을 그리며 내려온다.




볼라도레(Voladores) : 아즈텍(Aztec) 문명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농업과 풍요를 관장하는 신(神)인 히페 토텍(Xipe Totec)에게 풍년을 기원하고 비를 내려달라 청하는 일종의 기우제(祈雨祭)이다. 5명의 남자무용수가 장대에 매달려 벌이는 일종의 공중 곡예로, 볼라도레라는 용어는 ‘하늘을 나는 사람들(Flyers)’이라는 뜻의 에스파냐어이다. ‘장대 비행(Pole Flying)’이라는 뜻의 ‘팔로 볼라도르(Palo Volador)’라고 부르기도 한다.
 멕시코 동부의 베라크루스(Veracruz)주 파판틀라((Papantla) 지방의 토토낙(Totonac) 인디오들에 의해 전해지는 볼라도레 의식은 2009년 유네스코(UNESCO)의 무형문화유산(ICH,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으로 등록되었다.




정문을 들어서면 코끼리 열차가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우리는 1km 남짓 거리를 걸어서 들어갔다.



왕궁

까스티요와 왕궁

까스띠요

유적 전경



뚤룸 언덕 아래 카리브 경치









뚤룸에서 만난 우리 학생들.
캐나다에서 공부하는 중인데 방학을 이용해 여행을 왔단다.



뚤룸 전경

뚤룸 근처의 호텔
 아주 정감이 있어 보인다.



기념품 가게 – 해먹


12시가 조금 넘어 관광을 마치고 버스 정류장으로 와 짐을 챙겨서
뚤룸 시내로 들어갔다.
점심을 먹고 국경도시 체뚜말로 갔다.
오늘까지 중부 멕시코에서 최남단 유까딴 반도까지 15일간 11개 도시를 돌며 멕시코 고대문화유적과 스페인 식민지배의 흔적 그리고 멕시코 저항운동의 흔적들을 일부나마 보고 떠난다.
체뚜말에서는 하루 자고 벨리세로 넘어갈 예정이다.





면 적 : 1,972,550km2.
수 도 : 멕시코시티.
인 구 : 1억745만명.
종족구성 : 메스띠조 60%, 인디오 30%, 백인 9%.
종 교 : 카톨릭 89%, 개신교 6%, 기타 5%.
언 어 : 스페인어.
통 화 : 멕시코 페소.
1인당 GDP : 7,180$
<마야 문명과 아즈떽 문명>

멕시코 동남쪽의 유까딴 반도와 그 남쪽으로 이어진 중앙아메리카에서는 마야 문명이 발달했었다.
마야인은 농경민족으로 거대한 석조건물과 피라미드들을 세웠으며 정교한 역법을 개발하고 상형문자를 사용했다.

마야인들은 200년경 피라미드와 궁전 , 광장을 갖춘 도시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600 – 900년 경 도시 발전은 절정에 달했다.
당시 70,000 명 이상의 주민들이 도시에 거주했으며 빨렝께와 욱스말, 과떼말라 북부에 있는 띠갈 등에 도시를 세웠다.
그러나 900년 경 부터 마야 문명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지금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인구팽창과 척박해진 토지, 혹은 외부의 침입이 그 원인일 것이라고 추정되지만 갑자기 주민들이 도시를 버리고 떠난 이유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유까딴 북부지역에서는 계속해서 마야 문명이 이어졌으며 치첸이트사를 비롯한 도시에는 궁전과 피라미드들이 세워졌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무덤으로 사용된 데에 비해 치첸이트사의 피라미드는 제단으로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지금의 멕시코 시티 부근에는 대도시 떼오띠우아깐이 건설됐으며 똘떽 문명과 아즈떽 문명 등이 발달했다.
1세기경 번성한 떼오띠우아깐은 원주민들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으나,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하기 전까지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였다.
떼오띠우아깐은 7세기경부터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900년경에는 똘떼까족에게 점령됐다.

똘떽족은 뚤라를 거점으로 제국을 건설했으나 12세기 중반 아즈떽족에게 정복됐다.
멕시까족 이라고도 불리는 아즈떽족은 15세기 중,남부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으나, 1,512년 금을 노리고 찾아온 스페인인 꼬르떼스(Herna’n Corte’s)에 의해 멸망했다.
(서진근 편저 UN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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