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banon – Tyre
11월 23, 2018레바논(4) : Tyre = Sur
티레(Tyre = Sur )
3,000여 년 전에 페니키아인 들이 세운 항구도시이다.
원래는 두 개의 섬과 육지에 도시를 건설했으나 섬을 제방으로 막아서 육지와 연결하였다.
해변에는 페니키아 식 성곽잔해가 있는 古都.
Old Town은 제방으로 막아 연결해서 반도가 된 곳에 있다.
자주색 염료와 유리제품, 레바논 삼나무를 주력상품으로 수출하면서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했다.
전성기에는 소아시아반도 남서해안에 트로이(BC 10세기경)를 세웠고, 북아프리카에 칼타고(BC 9세기경)를 세워 북아프리ㅐ카 연안과 이베리아반도 남동해안에 식민지를 경영했다.
그러나 트로이는 그리스에 점령당했고 칼타고는 포에니전쟁에서 로마에 패해 멸망했다.
그 시대에는 지금의 지중해를 티레 海라 불렀다.
페니키아 인들의 도시 성곽 잔해가 있고,
로마 유적으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개선문,
길이 500m, 경주장 코스 길이가 1.3km의 히포드롬(20,000명 수용) 유적, 열주도로와 공중목욕탕, 城 밖의 공동묘지(?)등이 남아 있다.
BC 2,700년경 주거흔적이 발견되었고,
BC 968-936년. 2개의 섬에 도시를 건설하고,
BC 815년. 티레 출신의 선원들이 “카디즈”를 건설.
BC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점령.
BC 64년. 로마가 통치.
AD 120년. 하드리아누스 황제 개선문 건축.
” 330년경 열주도로 건설.
” 638년 아라비아가 점령.
” 1,124년 십자군이 점령.
” 1,991년 BC 1,000경의 페니키아인 무덤이 발굴되었다.
” 1,998년. 티레 문화유적 보호를 위한 유네스코 특별기금 마련하였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Tyre 港 항구를 나서서 왼쪽(서쪽)을 따라가면 바로 이집트를 만나고 계속 서진하면 아프리카의 북단에 다다르고, 오른(북쪽)쪽으로 가면 아나톨리(터키)에 닫는다.
이 자그마한 港口가 페니키아 인들이 이집트와 지중해 연안의 국가를 상대로 레바논 삼나무, 유리제품, 자주색 염료 등을 수출하면서 해상무역으로 번성해 나간 곳이다
.
특히 북아프리카에 칼타고를 세워 지중해 근처를 식민지로 만들어 교역을 통해 번영을 누렸으며,
BC 264년에 시작된 포에니 전쟁이 100여 년 계속 되다가 BC 146년에 로마의 승리로 종결되면서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로마는 이 전쟁의 승리로 처음으로 식민지를 갖게되었단다.
Tyre 港 풍경 |
히포드롬 주변의 유적 |
안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석관이 늘어서 있다. |
개선문 |
히포드롬의 관람석 |
관람석에는 20,000명을 수용할 수 있단다.
히포드롬의 남-북의 길이가 500m이고 경주장 둘레가 1.3km이 된단다.
지금도 매년 여름이면 축제가 열린단다.
영화 “벤허”의 전차경주장면을 여기서 촬영했단다.
경기장 규모는 길이가 500m이고 코스 둘레가 1.3km란다.
관람석 밑으로 통로가 만들어져 비와 햇볕을 피해서 걸을 수가 있도록 건축되어 있다.
오벨리스크 |
1인 1,000파운드씩 합승을 시킨다.
어지간한 곳은 ,4000파운드면 갈 수 있다.
언제나 흥정을 해야,한다.
기회만 있으면 바가지를 씌운다.
그런데 Tyre에서는 좀 심하다 싶은 일을 당했다.
대중교통이 연결되는지도 모르고 시외버스 타는 위치도 몰라서 로마유적을 보고 일단 대로로 나왔다.
Saida 가는 버스 정류장을 물어보려고 지나가는 자가용차를 세웠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가 친절하게 데려다 줄 테니 자기 차를 타란다.
얼마 정도 수고비를 주면 되겠거니 하고 고마운 마음에 탓다.
길모퉁이를 돌아서 조금 가더니 대로변에 차를 세우고 Saida행 버스 정류장이라며 내리란다.
그리고 요금을 4,000파운드를 내란다.
걸어서 2분,거리도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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