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banon – Beirut

11월 23, 2018

레바논(5) : Beirut



2005년 6월 6일(월)

오늘 저녁 레바논을 떠난다.
베이루트에서 오후 서너 시 까지는 시간이 있다.
20시 30에 떠나는 비행기다.

시내를 걸어서 돌아보기로 하고 09시 25분에 국립박물관에 도착했다.
오늘은 월요일이라서 휴뮤란다.
다시 걸어서 都心으로 나갔다.

10시 00에 순교자의 광장((Place des Martyrs)에 도착했다.
시내 곳곳에 전흔이 남아 있지만, 이곳은 아예 불도저로 밀어 놓은 광장 같다.
한가운데 순교자들의 像만이 외롭다.
근처에는 지하유적을 발굴하다 두었는지 방치된 상태다.

길 건너 대 모스크는 그래도 형체가 남아 보수 중이다.
이 대 모스크는 비잔틴 시대에 십자군들이 교회로 세웠으나 1,291년 모스크로 바뀐 곳이다.
시내로 걸어 들어가면 중동의 파리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유럽풍의 중후한 건물들이 즐비한 거리가 나온다.
시계탑이 이 있는 교차로 근처에 어젯밤 들렀던 노천 카페가 있던 곳도 지났다.

시내를 둘러보고 안내서에 Pigeon Rocks라고 소개된 곳을 시민에게 물어보니 아는 사람이 없다.
어렵사리 찾아가 보니 바다 속에 두 개의 바위가 절벽과 어우려저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안내판에는 Bay Rock으로 되어있다.
아름다운 해변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옛 페니키아 인들의 활약했던 시절을 그려 보면서 여행을 정리하며 휴식을 취하고 간이 식당에서 케밥으로 먹었다.
다시 호텔까지 걷기로 하는데 군데군데 군인들의 바리케이드가 있다.
총선을 감시하러 온 군인들이란다.


내전의 흔적
 아직 복구되지 않은 건물들이 많이 있다.
레바논 내전은 구성비가 비슷한 이슬람과 기독교인들의 주도권 싸움이었다.



순교자의 동상(Peace des Martyrs)
 주변이 황량하다.



大 Mosque
 십자군 교회로 지어진 것이 1291년에 Mosque로 바뀐 곳. 내전으로 많이 망가진 것을 보수 중이다.





순교자의 광장에 옆에 방치된 지하유적들



도시 중심가로 가는 길

중심가 골목

중심가

빌딩 골목

시계탑이 있는 광장


광장옆 노천 까페

Bay Rock

다이빙
 어린이 들이 바위에서 절벽 아래로 뛰어 내린다.



베이루트 해변

베이루트를 떠나며…
 베아루트 해변 언덕에서 지중해를 배경으로.



도심의 야경

노천 카페


음식도 먹고, 물담배도 피우며…



레바논은 남북 길이 215km, 동서 최대 길이 90km인 지중해 연안의 산악 국가이다.
북쪽과 동쪽은 시리아, 남쪽은 이스라엘, 서쪽은 지중해와 경계를 이룬다.
레바논은 아라비아 반도 중에서 기독교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이슬람교도와 기독교인이 45%씩 거의 대등해서 내란까지 겪은 나라이다.







국호 : LEBANON(Republic)
면적 : 10,452평방km.
인구 : 412만. (2010년)
종족구성 : 아랍인 95%, 아르메니아인 4%.
수도 : Beirut(Beyrouth)
언어 : 아랍어. 프랑스어. 영어.
종교 : 이슬람교 70%, 그리스도교 30%.
통화 : Lebanese Pound
1인당 국민소득 : us$8,467(2009년)
환율 : us$1 : 1,500파운드.2009년)
주요산업 : 농업, 건설, 관광.



<略史>
현재 레바논 지역은 고대 페니키아 인들이 정착했던 영토와 일치한다.
BC 3,000년경 이 지역에 들어와 BC 2613년경부터 이집트와 상업 및 종교 교류를 시작해서 이집트 고왕국이 무너진 BC2,200년까지 지속하였다.
그 후 아모리인의 침략을 받았으며,  BC 18세기에 힉소스인, BC 16세기에 이집트의 신왕국, BC 14세기에 히타이트인(소아시아) BC 13세기에 이집트 신왕국의 세티 1세(BC 1290-1279 재위)는 페니키아 대부분을 정복했고, BC 12세기 이집트의 람세스 3세(BC 1187-1156 재위)가 소아시아와 유럽에서 온 침략자들에게 빼앗겼다.

이집트의 지배가 끝나고 BC 10세기 前後 시리아가 서쪽으로 진출하던 동안 페니키아의 역사는 Tyre가 주도했다.
이 강력한 도시국가는 페니키아 전체의 주도권을 쥐면서 북아프리카에 칼타고를 세우고 북아프리카 연안과 소아시아의 서남쪽 해안지방, 스페인의 남,동부해안, 시칠리 섬 등 지중해지역 전체에 식민지를 만들어 나갔다.

BC 538년 이란의 아케메네스 왕조의카루스2세가 이 지역을 점령하여 Saida(시돈)가 제국의 주요 도시가 되었다. BC 332년 알렉산더가 Tyre를 침공해 왔다. Tyre는 8개월을 저항하다가 항복하고 주민은 노예로 팔려 나갔다.  칼타고는 100년간 3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 끝에 로마에 멸망했다
BC 64년 페니키아는 로마제국의 시리아 속주로 합병되었다.

6세기경 시리아에서 박해를 피해 온 기독교인들이 북부지역에 정착하여 마론파교회를 세웠다.
마론파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곳에만 있는 종파로 이단으로 규정지어져 있다.
7세기에 이슬람교도가 시리아를 정복한 뒤 아랍 부족이 레바논 남부에 자리를 잡았다.
11세기 말에 십자군이 세운 나라 일부가 되었고, 그 뒤 시리아와 이집트를 지배한 맘루크 왕조에 속하게 되었다.  1,516년 오스만 튀르크가 맘루크를 몰아내고 지배했다. 그리스도교도들이 늘어나면서 사회적으로 갈등이 심화 돼 오다가 19세기 중엽 프랑스의 개입으로 그리스도 교인들이 레바논 북부에 자치주를 만들었다.

제1차대전 후 1923년 국제연맹의 위임으로 시리아와 레바논을 프랑스가 통치.
1943년에 국민협약 : 상이한 종교집단들이 국가와 행정기관에 동등한 대표권으로 참여한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마론파 그리스도교도에서, 총리는 수니파 이슬람교도에서, 국민회의 의장은 시아파 이슬람교도에서 뽑는 것이 관행으로 20여 년을 내려왔다.
1945년 프랑스 철수, 1946년에 독립.
1948-1949년 팔레스타인 난민 수십만이 레바논 남부에 정착.
1958년 이슬람교도들의 반란. 그러나 미군의 도움으로 바로 진압.
1970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요르단에서 쫓겨나 레바논으로 본부를 옮겨 계속 활동.

1943년에 국민협약으로 20여 년간 평온을 유지했으나 이슬람교도들의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자 여러 분야에서 불만이 쌓여
1975년 이슬람교도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내전상태가 계속됨.

1982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군대를 몰아내겠다는 명분으로 레바논 남부에 진격, 성공하지 못하고 1985년에 철수.

1989년 지도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타자기에 모여서 그리스도교도 대통령, 수니파 이슬람교도 총리, 시아파 이슬람교도 국민회의 의장에 합의하면서 총리와 국민회의 의장의 권한을 확대했다.
15시 15분 호텔 Le Marly를 출발해서 Beirut 공항으로 갔다.
20시 30분에 베이루트 출발.
6월 7(화) 01시 15분 두바이 도착.
6월 7일 02시 30분 두바이 출발.
15시 55분 인천 도착하여 23일 간의 중동 6개국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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