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i Lanka
11월 23, 2018Sri Lanka – Paradise Sri Lanka
스리랑카는 인도 대륙 동남단, 인도양 위에 자리한 면적 65,610 제곱킬로미터에 인구 2천만 명의 섬나라다.
우리에게는 실론(Ceylon) Tea로 잘 알려진 상좌부 불교국가다.
인도의 눈물이라고도 부른다.
국토가 인도 남단 인도양 상에 눈물방울이 떨어진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기원전 6세기경에 인도 북부에서 내려온 싱할라족(아리아인)이 건너와 원주민 베다족을 몰아내고 터전을 잡았다.
BC 245년 인도의 아소카 왕이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보드가야에서 보리수나무를 들려 왕자를 보내 불교가 전파되면서 지금은 상좌부 불교의 종주국처럼 되었다.
11세기 초에 타밀족의 침입으로 남부로 밀려났으나 1,070년 타밀족을 밀어내고 전성기를 이루었다.
싱할라족의 주 터전인 건조지역은 강우량이 일정치 않아서 예로부터 “탱크”라고 하는 저수지와 수로 건설 기술이 발달했다.
1,505년 포르투갈이 침략하여 해안지방을 지배했으며,
1,640년 네덜란드가 12척의 배를 몰고 와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콜롬보를 지배했다,
1,796년 영국의 식민지 함대가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1,815년에는 내륙에 있는 캔디 왕국을 멸망시키고 식민지화하여 플랜테이션 사업을 시작하면서 인도의 타밀인 노동자들을 대거 유입시켰다.
1,948년 독립하였고 지금 스리랑카는 타밀인들의 분리독립을 위한 게릴라 활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3년 5월 1일 09시 20에 인천공항을 뜬 비행기가 나리타와 말레를 거쳐 23시 40에 콜롬보 공항에서 조금 떨어진 네곰보 해변에 있는 NEGOMBO ROYAL OCEANIC HOTEL에 도착했다.
5월 2일
전용버스로 07시 30에 출발해서 네곰보 어시장을 들렀다.
참치를 비롯해 다양한 물고기들이 시장에 가득한데 해변에서 해체작업을 하는 거대한 만타가오리가 인상적이다.
콜롬보에서 조금 떨어진 해변의 네곰보 로얄 오셔닉 호텔의 아침
오셔닉 호텔 해변 |
네곰보 어시장 |
네곰보 어시장의 새벽 |
기로수 |
네곰보에서 아누라다푸라로 가는 도로변에서 황금색 코코넛을 파는 아줌마.
황금색 코코넛이 제일 맛이 있단다.
결혼식장에서 |
사원
이수루무니야 사원의 와불 |
이수루무니야 사원의 부처님 |
아누라다푸라는 11세기에 타밀족들의 침공하기 전 까지 BC 250년부터 AD 1,017년까지 싱할라 왕조의 119명의 왕이 수도로 정하고 번영한 곳으로 불교의 중심지였다.
이 고대도시에는 불교유적들이 많고 아소카왕의 셋째아들 “마힌다”가 부보드가야에서 가져다 심었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리수나무도 이 지역에 있다.
이곳은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아소카 왕은 인도 통일전쟁에서 살생을 많이 한 것을 참회하여 불교에 귀의해서 인도 전역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스투파를 세우면서 불교를 전파함은 물론 인근 국가에 왕자와 공주에게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들려 불교를 전파한 왕이다.
불교의 발생지 인도에서는 힌두교가 석가무니도 시바의 9번째 환생이라고 하면서 불교를 흡수하여 교세가 미미해 졌으나 스리랑카에서는 힌두교와 가톨릭(포르투갈), 이슬람도(서부 해안지역) 있지만, BC 245년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국교로 숭상되어와 온 나라가 불교유적의 보고이며 국민들도 불교 정신을 바탕으로 생명존중 사상이 높아 자연과 사람이 잘 어울려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스리마하보리 르완에리사야 사원의 스투파 |
사원에서 |
사원의 행사에 참가한 밴드 |
사원의 행사에 참가한 밴드 |
공양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신도 |
사원에 연못 가에 있는 2,000년이 넘은 보리수 |
세계 최고령의 보리수.
흙에 묻혀 있는 것을 발굴 중인 유적 |
DAMBULA 호숫가 CULTURE CLUB RESORT에서 자고 아침 08시에 출발했다.
잔잔한 호숫가에 자리를 잡은 방갈로 스타일의 리조트는 주위가 매우 조용하고 깨끗하다.
풀장 바로 옆에 식당이 있어 상쾌한 분위기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오늘은 시기리야 암벽 요새, DABULA 석굴사원, 폴로나우와 저수지, 폴로나우와 궁전과 스투파, 사원을 둘러볼 계획이다.
08시 30에 시기리야 암벽 요새에 도착 등정을 시작해서 09:30에 정상에 도착했다.
시기리야 요새
대평원의 한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산 아래 도시를 건설하고 바위 꼭대기에도 왕궁을 지었다.
200m 높이의 화강암 꼭대기에 12,000평방미터에 궁전을 짓고 477년 – 495년 카사피 1세가 살았다.
유네스코지정 문화유산.
요새로 들어가는 성벽 주위의 해자 |
성벽안의 궁궐과 사원터 입구에 있는 목욕탕 |
연꽃 |
요새로 올라가는 중간 동굴속의 벽화(빌려온 사진) |
동굴속의 벽화(빌려온 사진) |
올라오는 사람들 |
사자의 발톱 |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 |
정상의 왕궁 터 |
정상에서 |
산 정상의 왕궁 아래에 있는 풀장 |
시기리야 요새(빌려온 사진) |
시기리야 요새(빌려온 사진) |
이 폴로나루와를 수도로 하고 있을 때가 이 민족의 최대 전성기로 이 주변에 시기리야 요새를 비롯한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이 폴로나루와 고대도시도 유네스코가 문화유산으로 지정.
담불라 석굴사원
담불라 석굴사원 |
금빛 부처님 상은 최근에 조성한 것이다.
이 석굴사원은 11세기부터 19세기까지 제1굴 부터 제5굴까지 조성하였다.
어느 석굴이나 와불을 한 분 모셔 놓고 좌상, 입상 등을 특징 있게 조성했다.
암산을 파고들어 가면서 석굴사원을 조성했다.
제 4굴의 한쪽 벽에 있는 좌상에 독일 여성관광객이 올라앉아서 사진을 찍는 일이 발생해서 도색을 새로 하는 일이 벌어졌단다.
독일 관광객이 무릎에 올라앉아 사진을 찍은 사건으로 새로이 색칠했다는 불상.
불교를 숭상하는 국가로서 대단한 사건으로 얘기되었었단다..
폴로나우와 저수지 |
Dry Zone에 근거지를 가졌던 옛 싱할라 왕국들은 연간 강수량이 일정치 않아 농사에 어려움을 겪어 치수에 지대의 관심을 기울였다.
역대 왕들은 왕위에 오르면 맨 먼저 저수지를 건설하고 수로를 만든 다음 절을 지어 부처님을 모시고 다음으로 여유가 있으면 왕궁을 지었단다.
이 나라는 “탱크”라고 하는 크고 작은 저수지를 만들어 자연적인 악조건을 해결해 놓은 선조의 덕에 지금도 한 해에 3모작까지 농사를 짓는단다.
이구아나가 도로에 태연히 버티고 있다. |
움직이지를 않는다.
뒤에서 자전거를 탄 사람이 머리 쪽으로 지나가자 이구아나는 서서히 뒤돌아 숲으로 들어간다.
자동차들은 크랙션을 누른다든지 소리를 지른다든지 하지를 않고 조용히 기다려 준다.
폴로나우와 궁전터 |
폴로나우와 궁전터의 목욕장 |
폴로나우와 궁전터의 원형 사원 |
왕궁 계단 |
왕궁 입구의 바닥 돌 |
누워 있는 비석- 길이가 8m나 된다. |
입불 |
밀림 속의 스투파 |
아난존자와 석가무니 와불(빌려온 사진) |
수심에 찬 아난존자 |
이 호텔은 잠을 자러 들어 온 것보다는 공원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 온 것이란다.
독일인들이 설계해서 철 구조물로 지었는데 외관의 철 소재가 약간 거슬리기는 하지만 5성급 호텔인데도 도로가 비포장 상태이고 바위언덕에 기대어 건축하면서 자연상태를 그대로 건물 안에까지 들여오면서 자연훼손은 최소화한 건축물 자체가 관광 상품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려니까 방에 안내서가 붙어 있다.
긴 팔 긴 바지를 입거나 사리 복장을 하고 오란다.
손님이 별로 없었는데도 5성급 관광호텔로서 식사수준은 거기에 어울리는 수준이었다.
5월 4일
실컷 자거나, 새벽같이 일어나거나 마음대로 기상하기로 했다.
“상쾌한 소란스러움” 이라는 표현을 망설이면서도 쓴다.
날카로운듯하지만 신경을 치솟게 하지는 않고 낮은 소리인 듯한데 너무나 맑다.
무딘 사람이라서 칸다마라호텔에서의 새벽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번 여행을 기획한 회원의 얘기로는 스리랑카에서는 이곳에서 꼭 한번 머물러 보아야 하고, 남쪽 끝 해변의 분위기를 꼭 느껴보아야 한단다.
닷새의 일정으로는 남쪽 해변까지는 가지를 못했다.
너무나 황홀한 새소리, 풀장과 호수가 연걸된 듯 보이는 물 위에 비친 새벽하늘과 새벽 안갯속의 아름다운 경치, 부지런한 원숭이들의 아침 모습, 멀리 보이는 시기리야 Rock…..
칸다말라 호텔의 아침풍경 |
칸다말라 호텔에서의 아침 |
호텔 풀장 아래 너무 위에서 원숭이 가족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캔디에 있는 페르테니아 왕립 식물원에 들어갔는데 청소부가 무시무시한 전갈을 보여준다.
이 공원에는 하루에 30cm도 자란다는 왕대 나무, 왕 박쥐, 한 뿌리에서 뻗어 나간 가지가 600평을 덮고 있는 벤자민등이 잘 보호되고 있다.
공원에서 만난 관광객 가족 |
한그루가 600평을 덮고 있는 벤자민 |
왕 박쥐들 |
과일을 먹고 살므로 식용으로도 쓴단다.
공원에 소풍나온 어린이들이 외국인이라고 사진을 함께 찍잔다.
잭 푸르트.(Fruit) |
원숭이 형제 |
캔디 |
아름다운 저수지와 부처님의 치아를 보존하고 있는 달라다말리가와 사원(불치사)이 있다.
이 외에도 몇 개의 불교 사원과 힌두사원도 있다.
캔디는 도시 전체를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민속 쇼 |
불치사의 부처님 |
불치사에서 |
영국인들의 차밭 경영의 근거지인 누와라엘리야로 올라간다.
해발 2,000m에 있는 이 도시를 작은 잉글랜드라고 부른다.
올라가는 도중 해발 1,800m 부근에 차밭이 집중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누와라엘리야는 그 옛날에도 피서지로 이용되어 오래된 거대한 향나무 가로수가 볼만하다.
찻잎을 수확하는 아주머니 |
찻잎을 수확하는 사람들 |
다시 중국 운남성의 차나무들 들여다가 누와라엘리야 올라가는 해발 1,800m 근처에 재배에 성공함으로써 Ceylon Tea가 세계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산업으로 성장시켰다.
차나무에서는 날씨가 너무 맑으면 1개월에 2회, 구름이 끼고 비가 자주 오면 3회 찻잎을 딴단다.
누와라엘리아의 가로수 |
Grand Hotel 정원에서 |
누와라엘리아에서 내려가는 길가의 폭포 |
스리랑카 마하웰리 강 |
누와라엘리야에서 세계 최대의 차 농원을 둘러보고 콜롬보로 돌아왔다.
Negombo Plaza Hotel에 들었다.
내일은 비행기로 남인도로 날아간다.
스리랑카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1)시기리야 고대도시.
2)아누라다푸라 성지.
3)폴로나루와 고대도시.
4)길의 옛 시가지와 요새.
5)싱하리자 산림 보호구역.
6)캔디 聖址.
7)담불라의 황금 석굴.
면적 : 65,610평방킬로미터.
인구 : 2,151만 명(2010년.)
종족구성 : 상할리 족 74%, 타밀 족 18%, 무어인 5.5%.
종교 : 불교 69%, 힌두교 15%, 이슬람교 7.5%, 가톨릭 7%.
언어 : 영어, 상할리 어, 타밀 어.
화폐 : 스리랑카 루피(1$ : 111루피)(2010년)
1인당 GDP : $2,041(2009년)
수도 :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11만 명)
중요도시 : 콜롬보(70만 명) , 캔디( 11만 명)
<상할리족과 타밀족 간의 분쟁>
상할리족은 스리랑카 인구의 74%를 차지하는 부족으로 불교를 신봉하며, 인구의 18%가량을 차지하는 타밀족은 힌두교를 믿는다.
타밀족 인구 중 많은 수는 식민지 시절 영국이 반항이 심한 상할리족 대신 홍차 재배를 시키기 위해 인도에서 강제 이주시킨 사람들로, 타밀족은 영국 지배하에서 상할리족보다 우대를 받았다.
그러나 1948년 독립이 이루어지자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상할리족이 정권을 장악하고 상할리족 중심의 정치를 폈다.
점차 상할리족은 지배층이, 타밀족은 피지배층이 되자 타밀족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1972년 헌법이 제정되어 상할리족의 종교인 불교를 보호.육성하는 것이 법으로 규정되자 힌두교가 대다수인 타밀족은 반발하여 스리랑카로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타밀족 독립운동의 중심에는 무장 게릴라 단체인 LTTE(Liberation Tiger for Tamil Elam =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가 있었다.
LTTE는 1980년대부터 대대적인 무차별 테러와 암살을 자행했고, 싱할라족이 중심이 된 정부군과 LTTE 간의 무력 대립은 내전으로 변했다. 1987년 6월 인도 정부가 타밀족을 지원하면서
내전에 개입하자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1987년 7월 스리랑카 정부와 타밀족 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약 6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정전협정 후에도 분쟁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LTTE는 노던(Nothern)주, 이스턴(Eaastern)주 , 우바(Uva)주 등 스리랑카 동북부를 무력 점령한 채 타밀족의 완전한 독립을 요구했고, 정부는 LTTE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했다.
스리랑카 내전은 2009년 5월 17일 LTTE가 항복을 선언할 때 까지 사실상 계속되었다.
LTTE가 항복을 선언한지 이틀 뒤인 5월 29일, 라힌다 라자팍세 대통령은 내전 종식을 공식으로 선언했다.
(서진근 편저 UN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콜롬보 계획>
콜롬보 계획(Colombo Plan)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사회, 경제 발전을 돕기 위해 창설한 계획이다.
1950년 실론(현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열린 영연방 외상회의에서 제안되었기 때문에 콜롬보 계획이라고 불린다.
최초의 참여국은 실론을 비롯해서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인도, 뉴질랜드, 파키스탄, 영국 7개국이다.
처음 콜롬보 계획은 영연방 국가 내의 원조 계획으로, 영국, 캐나다, 오스트랄리아 등 선진국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발전을 돕기 위해 6년(1951년 – 57년) 간 기술적,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후 원조기간이 점차 연장되었고, 원조를 받는 국가들도 영연방에 속하지 않는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국가들로 확대 되었으며, 미국과 일본 등 영연방 외 국가들도 원조국으로 참여했다.
우리나라는 1962년부터 콜롬보 계획에 참여했다.
현재 콜롬보 계획에 참여하는 국가는 25개국에 달한다.
콜롬보 계획의 특징은 참여국들이 연합하여 일괄적으로 워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국가들끼리 雙務 協定을 맺어 필요한 원조를 주고받는다는 데 있다.
기술지원을 위한 상설기관은 마련되어 있으나, 개발에 필요한 재정도 각 국가 간 협의를 통해 조달한다.
(서진근 편저 UN회워눅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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