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gary – Budapest

11월 18, 2018

헝가리(Hungari) – 부다페스트(Budapest)



2013년 6월 5일(수)

10시 15분, 루마니아 국경도시 ORADEA에서 기차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로 향했다.
10시 55분, 헝가리 입국심사(시차 ㅡ1시간)
넓디넓은 들판을 달려 13시 40분 부다페스트 역에 도착.

헝가리는 유럽 안의 동양인이라는 마자르족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다.
과거 몽골의 침략을 받기도 했고, 마자르어(헝가리 어)는 우랄어족에 속하는 언어로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우리나라 말과도 관련이 있다.

헝가리는 스스로를 동유럽국가가 아닌 중유럽국가로 지칭하며, 과거 공산주의 체제를 선택했을 때도 서방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1867년 오스트리아에 합병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 있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에서 분리, 독립했다.

빈으로 가는 기차가 수시로 있다.
기차표를 시간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프리티켓을 샀다.
나중에 알았지만 프리티켓은 요금이 약간 비싸다.
15시 15분, 기차역 건너편 골목에 있는 Hotel Royal Park 도착.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을 경계로 동쪽의 부다 지역과 서쪽의 페스트 지역으로 나뉜다.
부다 지역은 부다 城과 왕궁, 역사박물관, 국립미술관, 겔레르트 언덕에 있는 마차시 성당, 어부의 요새 등이 볼만하다.
페스트 지역은 국회의사당, 유네스코문화유산 보존거리로 지정한 안드레시 거리, 국립박물관, 성 이슈트반 성당이 볼만하다.

15시 30분, 호텔 출발. 택시로 왕궁이 있는 부다지구로 갔다.

우리는 수도원을 들러 마차시 성당과 그 앞에 있는 삼위일체 탑, 어부의 요새 등을 보고 왕궁에서 부다지역 관광을 마쳤다.


마차슈(Matthias Church) 교회
 13세가 중엽 성녀 마리아를 받들기 위해 벨라 4세의 명으로 세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운 교회다.
14세기에 고딕양식으로 다시 지었고 15세기 마차슈 왕이 탑을 증축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교회의 정식 명칭은 “성녀 마리아 교회”다.




마차슈 교회 옆 광장이 삼위일체 광장이다.
그 중앙에 18세기에 세운 삼위일체 탑이 있다.
이 탑은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의 종언을 기념해서 세운 것이다.



성 이슈트반 기마 像
 헝가리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초대 국왕 이슈트반의 기마 像이다.
손에 들고 있는 이중 십자가는 이슈트반이 헝가리를 기독교 국가로 건설한 것과 헝가리 대주교 결정권을 법왕으로부터 부여받았음을 나타낸 것이라는 설이 있다.



어부의 요새

성 이슈트반 기마 像과 뒷편의 어부의 요새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본 부다페스트
 마차슈 교회 옆으로 도나우 강을 따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여러개의 첨탑.
요새라고 하지만 전투용이 아니고 마차슈 교회를 개축한 건축가 슈레크가 도시 미화 계획으로 건축한 것이다.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본 부다페스트


길가의 조형물

왕궁


유진 왕자의 동상
 터키로부터 헝가리를 독립시킨 사람이란다.



헝가리 건국의 아버지를 낳았다는 전설의 새 “트롤”


세체니 사슬 다리(Chain Bredge)
 템즈 강에 런던 브릿지를 건설한 영국의 설계기사 T.W. 클라크와 건축가  애덤 클라크를 초빙해서 1849년에 완공한 부다페스트 최초의 교량이다.



사슬 다리


사슬 다리를 건너며 보이는 페스트 지역.
 다리 건너 오른쪽에 선상유람 선착장이 있다.



사슬 다리에서 얼려다 본 왕궁


6.25전 간호사였던 여성이 월북하여 6.25전쟁에 북한 쪽에 지원 나온 헝가리 의사와 결혼해서 헝가리로 돌아온 후 식당을 차렸단다.



만찬
 18시,왕궁 옆에서 후니쿨라를 타고 내려와 사슬 다리(Chain Bridge)를 보고 근처에 있는 식당 서울의 집에서 김을라 여사가 아버님 김찬삼 교수의 생신일 기념 저녁을 냈다.
서울의 집은 서진근 회장님이 수십 년 전 다녀가신 인연으로 다시 찾았으나 음식의 질이나 가격 등 모든 것이 추천할 집이 못 된다.


21시, 야간 선상 유람을 했다. 1인 16유로


왕궁

왕궁과 사슬 다리



마차슈 교회와 어부의 요새

국회의사당

시타델
 6월 6일(목)

오후 기차로 빈으로 가기로 하고 아침을 먹고 시티 투어에 나섰다.
부다성, 겔레르트 언덕 정상에 있는 시타델 그리고 사슬 다리를 건너서 페스트 지구 관통해서 영웅광장을 돌았다.
영웅광장 바로 옆에 미술박물관.

시티투어 2일권을 사면 버스와 유람선 그리고 식사를 연계해서 다닐 수 있단다.
시티투어를 먼저하고 아쉬움이 남으면 더 다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시타델 정상의 자유의 여신상

국립오페라극장

영웅광장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광장.



영웅광장 한편에 있는 미술 박물관
 13시 10분 부다페스트역 9번 홈에서 가차를 타고 빈으로 향했다.
16시 20분 빈에 도착해서 프라하행 기차표를 사려니까 폭우로 철로통행이 금지되어 운행 중단됐단다.
난감하다.
비행기로 가는 방법을 검토해야 했다.

역 근처 ibis Hotel에 숙소를 정했다.






면적 : 93,028km2.
인구 : 996만 명(2012년).
종족구성 : 마자르족 97%, 독일인, 남 슬라브인.
종교 : 가톨릭 67%, 개신교 20%, 그리스 정교 3%.
언어 : 마자르어.
화폐 : 포린트($1: 209.23포린트)(2010년 12월)
1안당 GDP : $14,808(2011년)
수도 : 부다페스트.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11세기에서 13세기 초반 헝가리는 중부 유럽의 대국이었으나 1241년 몽골군의 침략으로 국토가 황폐해지고 인구의 절반이 사망하는 재난을 겪었다.
“바투”가 이끄는 몽골군은 헝가리를 전진기지로 삼아 서유럽까지 진출하려 했다.
그러나 1241년 칭기즈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오고타이 칸이 사망하자 바투가 정권을 차지할 야망으로 급히 군대를 이끌고 몽골 본토로 되돌아가는 바람에 몽골군의 진출은 헝가리에서 멈추게 되었다.

이후 헝가리는 몽골 침략으로 받은 피해를 회복하고 상당한 문화발전을 이룩했으나, 끊임없이 외세에 시달리게 되었다.
14세기부터는 오스만튀르크의 침입이 시작됐다.
헝가리는 분할되어 중남부는 오스만튀르크의 속국이 되었고, 서북부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家의 지배를 받았다.
17세기부터는 강대해진 오스트리아가 오스만튀르크 대신 헝가리 전역을 지배했다.

오스트리아의 지배는 억압적이고 가혹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헝가리인들의 반발심도 높아져 1703 – 1711년에는 민족반란이, 1848 – 1849년에는 독립혁명이 일어났다.
오스트리아는 처음엔 군대를 동원해 무력으로 헝가리 독립 세력을 진압하려 했으나 해결이 어려워지자 결국 1867년 2월 8일 헝가리의 완전한 내정 자치권을 인정하는 대타협(Ausgleich)을 맺고 나라 이름에 헝가리를 넣어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을 결성했다.
그러나 제국 내에서 민족문제는 끊이지 않았고,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분리되었다.
(서진근 편저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헝가리 사태>

헝가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평에 섰기 때문에 세계대전 후 패전국이 되어 소련의 지배를 받았다.
1945년 소련의 영향을 받은 공산주의자들은 親소련 성향의 임시정부를 수립했고, 1949년에는 소련의 위성국가로서 헝가리 인민공화국이 탄생했다.
공산주의가 가면 갈수록 스탈린식의 억압적인 독재정치로 변질하자, 헝가리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결국 1956년 10월 23일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는 공산당의 압제에 항거하는 가두시위가 벌어졌다.
이 가두시위는 평화롭고 온건한 양상으로 시작되었으나, 23일 밤 헝가리 보안군이 시위대에 발포하면서 급진적으로 변화했다.
대학생들을 비롯하여 10만이 넘는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마침내 공산당을 내쫓고 임레 노디(Imre Nogy)를 대표로 하는 개혁 정부를 수립했다.

노디가 소련 중심의 바르샤바 조약기구에서 탈퇴를 결정하자 소련은 11월 4일 1천 대의 탱크와 2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부다페스트를 침공했고, 수만 명의 사상자와 20만 명에 이르는 망명자를 내면서 헝가리 사태를 진압했다.
소련의 헝가리 무력진압으로 공산주의는 역사상 가장 큰 비난을 받았으며, 헝가리 사태가 알려지자 다른 공산권 나라들에서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서진근 편저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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