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atia – Split – Dubrovnik

11월 18, 2018

크로아티아(Croatia) – 스플리트(Split), 두브로브니크(Dubrovnik)



2013년 5월 26일(일)

15시 30분 버스로 스플리트를 향해 출발.
시골 길, 시골 마을을 들러 들러서 간다.
정겨운 동네 풍경이다.

18시 45분, 스플리트 항구에 도착.
스플리트 호텔은 이대학 사장이 빈에서 예약한 곳이다.
버스 터미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짐꾼이 수레에 짐을 싣고 안내한다.
가격에 비해 좋은 호텔은 아니지만 올드타운 입구에 있어 관광하기에는 위치가 아주 좋은 곳이다.




버스터미널에서 짐수레꾼이 전화로 호텔을 확인하고 짐을 날라다 주었다.



오른쪽 멀리 디오크레티안 황제의 궁전이 보인다.
그 주변이 구시가지다.




구시가지 바다쪽은 야자수가 우거진 까페거리다.
저녁이면 인파들이 몰려 흥청대는 카페거리로 변한다.



호텔 방에서 본 구시가지풍경
 일요일이라서  슈퍼마켓이 문을 닫았다.
물도 살 수 없어 호텔의 비싼 물을 사용했다.
늦어서 스플리트 시내 관광은 못하고 내일 흐바르 섬을 다녀와서 구경하기로 했다.



5월 27일(월)

흐바르섬에서 돌아와 스플리트를 돌아 봤다.

스플리트는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로 아드라해변의 중요 휴양지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안(AD245 – 313)은 은퇴 후 노년을 보내기 위해 아드리아의 햇살 가득한 땅에 AD 300년경 궁전을 지었다.
그리스의 대리석과 이집트의 스스핑크스를 가져다가 꾸밀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
궁전은 동서남북 200m 남짓의 아담한 규모다.
근처의 로마식민지가 버려지면서 거기에 실던 로마화된 주민들이 스플리트로 몰려와 궁전 근처에 정칙했다.



궁전 동문

열주광장 옆 성당

성당 종탑

列柱광장


궁전

궁전 옆 열주

돔 현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는 궁전을 중심으로 미로처럼 뻗어 있다.
신하와 하인들이 거주하던 궁전 안 200여 개 집터는 그 잔재가 남아 상점, 카페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황제가 행사를 열었던 안뜰은 석회암 기둥이 가지런하게 도열된 채 여행자들의 쉼터와 이정표가 됐다.



꼭 누구에겐가 욕하는 모양의 손
 엄지손가락에 뚫린 구멍에서 물이 쏟아지면 아래에 있는 컵속으로 떨어진다.
분수다.
밤에만 조명속에서 작동한다.


분수대
 위에서 쏟아지는 물을 받는 컵.

구시가지 동문 초입에는 새벽이면 대규모 장터가 들어선다.
지중해의 해산물과 채소, 과일이 쏟아져 나온다.
해산물이 다양하다.
소박한 물건들이 오가는 크로아티아의 장터 모습이 생생하다.

‘황금 문’으로 불리는 북문을 나서면 크로아티아 종교지도자였던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을 만난다.
동상의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풍문 때문에 유독 엄지만 반질반질하다.



크로아티아의 성자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
 엄지발라가락만 반짝인다.
왜?



2003년 9월 1일(일)

아침 10시10분.
버스로 다시 크로아티아의 드부로브니크으로 간다.
아드리아 해를 끼고 달린다.
바닷가에 드문드문 있는 마을들은 동화 속의 집들 같다.
청정해역이라 양식장도 여러 군데 있다.

3시간 만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민박업자들이 호객하느라 아우성이다.
몇 번을 흥정해서 현장을 확인해 보고는 포기했다.
들고 있는 소개 책자의 사진만으로는 가늠이 안 된다.

민박업자들이 모두가 흩어졌는데 모퉁이에 서 있던 노인 한 분이 자기 집으로 가잔다.
대도시에서 호텔 지배인을 하던 사람인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 민박을 한단다.
방 4개에 하루 $50에 빌렸다.

“드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 해의 진주다. 첫사랑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아름다운 경관과 잘 보존된 중세 건물들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유고슬라비아의 포격에 부서진 건물들은 모두 복원했다.

Dubrovnik은 잘 보존된 구시가. 완벽한 성곽, 대리석으로 덮인 보도와 광장, 교회와 저택들 어느 하나 소홀히 볼 것이 없다. 유네스코는 이곳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성곽 정문인 필레문을 들어서면 프란시스코 수도원이 있고 정면으로 보행자 도로가 시계탑까지 이어져 있다. 그 양편으로 약국, Orlando Column, 성 브레이스 교회, 박물관, 저택들이 늘어서 있다.

13세기와 16세기 사이에 지어진 성벽은 25m 높이에 길이가 2km 나 된다.
성벽 위를 한 바퀴 걸어보는 것도 필수코스다.



드브로브니크로 들어가는 다리

성당

성벽 위에서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는 올란도 기둥 옆의 까페에서 휴식



골목길
 대리석 바닥이 윤이 난다.




아드리아 海를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식당에서 오찬.
백봉기 회장께서 사셨다.(오른쪽 붉은 티를 입으신분)



민박집에서 아침 식사
 어제저녁 빵, 소시지, 바나나, 물 등을 준비해서 가져간 수프를 곁들여 우리가 준비한 것이다.



5월 28일(화)

원래 계획은 스플리트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드브리브니크로 가서 구경하고 오후에 몬테네그로의 코토로까지 갈 계획이었으나 버스 대절에 실패해서 일반 버스로 출발했다.
드브리브니크에서 1박하는 것도 좋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자그레두브로브니크는 2003년 그리고 이번 2013년 등 두번째 방문이다.
그래서 2003년 방문 때 사진과 2013년 방문 때 사진을 중복해서 싣는다.

08시, 스플리트 출발.
10시 30분, 버스가 고장나서 다른 차량으로 교체해서 출발.
시골길을 달리며 몇개의 도시를 들러가며 드브리브니크에 13시 35분 도착했다.
호텔은 예약을 못하고 유스호스텔을 예약해 들어가 짐 풀고
15시 25분 필레문 들어가기전 우측, 예전에 백봉기 회장이 점심을 내셨던 고급식당에서 백봉기 회장을 추모하며 점심 식사.




휴게소에서

힐튼 호텔
 10년전에 왔을 때는 없었다.



해안 풍경

우리가 점심을 먹은 식당
 이 식당을 찾은 이유는 10년 전에 故 백봉기 회장께서 여기서 점심을 내신적이 있어서 함께 오셨던
서진근 회장께서 추모하는 마음으로 이곳에서 점심을 하자는 제안을 따른것이다.




식당에서

식당에서 본 요새

城門 앞 광장의 조각상
 무슨이유에선지 사내는 양을 끌어안고 있으면서 여인에게 크게 야단 맞고 있다.

식사 후 드브리브니크 城 관광 자유시간.
필레 게이트를 들어서면 돔 형의 오노프리오 분수가 오른 쪽에 나타나고 곧장 중앙로가 펼쳐진다.
오노프리오 분수는 성안 사람드르이 저수조를 겸하고 있다.



필레 門(Pile Gate)

바다쪽으로 뻗어나간 성벽

오노프리오스 분수
 이 분수는 식수를 공급하는 곳이다.
성안에 식수 공급을 위해 1438년 20km 떨어진 스르지 산에서부터 물을 끌어와 이 수조에 저장하고 사용한단다.



플라차 대로
 들어서면서 왼쪽에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이 있고 곧장가면 시계탑이 있는 광장에 이른다.

중앙로를 곧장 가기보다는 먼저 성벽을 걷는것이 좋다.
들어서면서 좌측으로 성벽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물론 입장권을 사야한다.

성벽 위에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요새가 내려다 보이고 성 안쪽으로는 붉은 지붕의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찬 시내가 보인다.
2km 성벽 위를 성 안쪽의 건물과 바다경치를 바라보며 반쯤 걸으면 구시가지의 중심지로 내려가게 되어있다.




성벽 위에서 본 플라차 대로와 건물들




성벽 길

상벽 위를 걸으며 보이는 성 안의 건물들

성밖 풍경

상벽 위를 걸으며 보이는 성 안의 건물들


천혜의 자연조건을 이용해 성벽을 쌓았다.
성벽 어래는 까페도 있다.



드부로브니크 항 선박 계류장

드부로브니크 항 선착장
 드부로브니크 城에는 이 항구로 진입하던지 아니면 필레 문을 통하던지 단지 두 곳의으로만 출입이 가능하다.

궁전과 성당,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옛 약국, 달아서 반들거리는 대리석 보도를 따라 골목길을 걸으면 성벽 도시의 옛 정취가 그대로 묻어난다.




성 블라이세 성당(대성당) 앞 광장

스폰자 궁전과 종탑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약국
 지금도 영업한다.




언덕 위에서 본 드부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에서 숙소는 버스정류장에 나와있는 민박집(Sobe) 호객꾼들과 잘 협의해고 조금 높은지역에 전망좋은 곳을 잡으면 금상첨화다.

우리는 인원이 많아서 유스호스텔로 갔다.
계단이 많아서 짐 옮기는데 애를 먹었지만 깔끔하고 조용한곳이었다.
성문까지도 10분정도면 갈 수 있어서 밤에도, 새벽에도 다녀올 수 있었다.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부른다.
버나드 쇼는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는 말을 남겼다고한다.

7세기에 도시가 만들어져 라구사(Ragusa) 공화국이 되어 베네치아와 경쟁한 아드리아 해안 유일의 해상무역 도시국가였다.

9세기부터 발칸과 이탈리아 무역의 중심지로 막강한 富(부)를 축적했으며, 11∼13세기에는 금·은의 수출항으로 번영하였다.
제4차 십자군전쟁 뒤 베네치아 군주 아래 있다가(1205~1358) 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때 도시가 요새화되고 2개의 항구가 세워졌다.

15∼16세기에 무역의 전성기를 맞았고 엄격한 사회 계급 체계를 유지하며 유럽에서 처음으로 노예 매매제를 폐지(1416)하는 등 높은 의식을 가진 도시였다.
1667년 큰 지진으로 도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가 나폴레옹 전쟁 때 다시 옛날의 번영을 누렸다.

1815년 빈 의회 결의안에 의해 오스트리아 제국(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합병되었다가
1918년 세르비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1945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가 되었다.
1991년 10월,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비아군이 3개월에 걸쳐 총 공격을 해와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다.
1994년 구시가지가 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1999년부터 도시 복원작업이 시작되어 성채, 왕궁, 수수도원, 교회 등 역사적인 기념물가운데 가장 크게 손상된 건물들이 복원되었고 옛 명성을 되찾을 만큼 아름다운 해안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국가명 : CROATIA(Republic)
면적 : 56,542평방km.
수도 : Zagreb.
인구 : 448만.(2012)
종족구성 : 크로아티아인 90%, 세르비아인 5%.
종교 : 가톨릭 88%. 오소독스(동방정교) 5%. 이슬람 1%.
언어 : 크로아티아어.
화폐 : 쿠나.(1$ : 5.9kuna)(2006년)
1인당 GDP : 14,529$(2011년)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의 분쟁>

옛 유고슬라비아연방의 구성국이던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는 모두 남 슬라브족으로 종족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크로아티아는 가톨릭을 믿는 반면 세르비아는 동방정교를 믿고, 크로아티아는 서유럽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 데 비해 동로마제국의 영향권에 있었던 세르비아는 비잔틴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크로아티아는 나치 독일의 힘을 빌려 세르비아계 주민을 대량학살한 일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티토(Josip BrozTito)의 남 슬라브족 통합운동으로 말미암아 민족 간 반목은 잠시 수그러들었으나 크로아티아가 1991년 6월 25일 유고슬라비아연방에서 독립을 선언하자 문제가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계 주민은 크로아티아가 독립할 경우 소수민족인 자신들의 입장이 불안해 질 것을 우려하여 유고슬라비아연방과 손을 잡고 분쟁을 일으켰다.

UN 안전보장이사회가 휴전을 권고했으나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무장투쟁을 계속했다.

1992년 1월 가까스로 휴전이 성립되기는 했으나 1993년 1월 크로아티아군이 세르비아계의 거점인 크라이나 지역을 공격하면서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세르비아가 크로아티아 내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전쟁에 개입하자 분쟁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1994년 4월 4일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2년간의 전쟁 끝에 휴전에 합의했으나, 민족과 종교가 얽힌 분쟁이 모두 그러하듯 근본적인 원인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다시 분쟁이 일어날 여지는 남아 있다.
(서진근 편저 192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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