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stria – Vienna

11월 18, 2018

오스트리아(Austria) – 빈(Vienna)



2013년 6월 7일(금)

어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출발해서 16시 20분 빈에 도착했다.
이틀 후 체코의 프라하로 갈 계획이어서 프라하행 기차표를 예매하려니까 홍수 때문에 기차가 다니지 않는단다.
언제 개통이 될는지도 모른단다.
수십 년 만의 폭우로 도나우 강이 범람해서 주변지역에 피해가 컸단다.

일단 빈에서 하루 보내면서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
오후까지 상황을 보고 여의치 않으면 비행기로 가야 할 것 같다.

08시 50분, 기차역에서 트램을 타고 쉔브룬 궁전으로 갔다.
쉔브룬 궁전 관광도 A,B,C코스가 있다.
우리말 오디오 안내 기계가 있어 재미있게 관람하고 나왔다.


쉔부른 궁전 앞에서


쉔부른 궁전

궁전 앞 분수

쉔부른 궁전 앞에서

후원 끝 동산 아래 분수

後園 끝 동산 아래 분수

언덕 위에서 본 쉔부른 궁전

언덕 위 건물

조각장식
 궁전 뒤편 정원을 둘러보는데 기차가 통행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일단 기차역으로 가서 프라하행 기차표를 사고 성 스테판 성당으로 갔다.
성당 주변의 스테판 프라자에서 차 없는 거리를 관광하고 14시 30분에 빈 시립공원으로 갔다.
공원에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동상이 있다.




성 스테판 성당(Stephansdom)
 성당과 주변 광장과 차없는 보행자 전용 거리 Karntner Strasse를 따라 화려한 상점, 거리의 예술가들
을 만나며 관광안내소 까지 걸으면서 분위기를 즐길 수있다.




성당내주


스테판 플라자

스테판 플라자


보행자도로 Karntner Strasse에서








광장에서



관광마차 대기소

조각像

시립공원에 있는 요한 스트라우스 像




저녁을 먹은 후 스테판 플라자의 야경을 보고 돌아왔다.


오스트리아는 유럽 중앙에 있는 나라로 스위스, 라오스 등과 같이 영세중립국임을 선언한 나라다.
수도 빈은 도나우 강 상류에 있는 古都로, 수백 년 동안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지였다.
과거 영광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으며 , 지금도 중부 유럽에서 문화, 교통의 중심지로 알려졌다.
1945년 4월 27일 패전 독일로부터 독립하였다.

빈은 도나우 강 연안 고대 로마의 요새로 빈도본나(Windobona)라 불렀다.
중세에는 881년 비로소 빈이라는 이름이 나타나고 12세기에 이르러 도시가 형성되었다.
1276년~1918년엔 합스부르크 가(家) 치하의 제국수도가 되었다.






면적 : 83,870km2.
인구 : 822만 명.
종족구성 : 게르만족 98%.
종교 : 가톨릭 85%, 개신교 7%
언어 : 독일어.
화폐 : 유로.
1인당 GDP : $50,504(2011년)
수도 : 빈(Wien)

<대제국에서 분단의 위기까지>

빈은 276년 합스부르크 家의 소유가 된 이래 15세기 중엽부터 사실상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다.
2번이나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았으나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부터 유럽의 수도와 같은 역할을 했다.
1867년 이후엔 오스트리아 – 헝가리제국의 수도로 영광을 누렸다.

1914년 사라예보를 순방 중이던 오스트리아 – 헝가리제국의 페르난트 황태자 부부가 암살되자 오스트리아는 전쟁을 선택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함께 패배하였고 전쟁 후 제국은 분열, 영토는 이전의 4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1938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독일에 합병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소련군의 공격으로 빈 시가지는 20% 정도가 파괴되었고, 전쟁 후 오스트리아는 패전국으로 영국, 미국, 프랑스, 소련 4개국에 의해 점령, 관리되었다.

점령국 중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였고 , 영국, 미국, 프랑스는 자유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의견차이가 커 분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오스트리아는 영세중립을 선택하는 방법으로 점령군들을 철수시키고 주권을 회복할 수 있었다.
(서진근 편저 UN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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