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rmany – Potsdam

11월 16, 2018

독일 – Potsdam(포츠담)



2008년 7월 31일(목)

베를린 남서쪽 24km, 1918년까지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였던 포츠담을 가기 위해 호스텔을 나섰다.
지금은 브란덴부르크주의 주도다.

09시 32분 Zoologi 역에서 S-Bahn을 타고 약 50분 만에 포츠담역에 내렸다.
역 앞에는 트레일러에 각종 동물모형을 싣고 있다.



포츠담역 앞에 트레일러에 각종 동물 모형을 싣고 있다.



Havel 강이 흐르는 포츠담시는 75%가 녹지인 전원도시다.
8세기 중반 프리드리히 2세가 Sanssouci Park에 멋진 궁전들을 많이 지어 오늘날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매력적인 도시다.

2차대전이 끝나고 연합국들은 Cecillienhof(체칠리엔城)에서 회담을 열고 독일과 베를린의 분할을 합의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역에서 나와 걷기 시작했다.
Havel 강에 놓인 Lange Breucke를 건너 시내로 들어간다.
들어가다가 오른편으로 카데드랄이 있다.
지금 대보수 중이다.


Havel River

대성당
 시내로 들어서서 마르크트 광장을 지나면 오른편 골목에 바울교회가 있고 맞은편에 부란덴부르그 문이 보이는 네거리가 나온다.
이곳이 포츠담의 번화가다.
왼쪽으로 들어서서 브란덴부르그 문을 나서면 Sanssouci 공원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박물관


포츠담 메인 스트리트

포츠담의 번화가

브란덴부르그 문으로 가는 거리

부란덴부르그 문

어느 교회 앞 문화유산 표시

교회



산수시 궁전(세계문화유산)으로 들어서면 아름다운 분수 뒤로 계단으로 된 정원이 있고 그 위에 궁전이 있다.

1747년에 준공된 내부장식이 화려한 이 궁전은 가이드 투어로만 관람할 수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당일 입장권이 매진돼서 겉모양만 구경하고 공원을 가로질러 Neues Parais로 갔다. 



Sanssouci 궁전 원경

왕궁 입구의 석상



Sanssouci 궁전 - 분수 뒤로 계단식 정원이 있고 그 맨 위에 궁전을 지었다.



분수대 앞 조각상


궁전 건물의 조각상

Sanssouci 궁전.(세계문화유산)

이 신궁전(Neues Parais)은 왕족들의 여름궁전으로 산수시궁전을 지은 후 20년도(1769년) 채 안 돼서 지은 바로크양식의 건물이다.
이 정원에서 가장 볼만한 건축물이다.(세계문화유산)



산수시 공원 안으로…


공원 안의 정원




Neues Palais

이 新 궁전은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산수시 궁전을 완공한 지 20년도 채 안 되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Neues Palais


Neues Palais

공원 안이나 주변에는 식사할 곳이 없다.
물어물어 신궁전 뒤편에 있는 포츠담대학 구내 식당에서 학생들과 함께 점심을 해결했다.

오른편으로 돌아 나오면서 그리스풍의 샤를로텐 궁전을 지나면 중국찻집이 나온다.



샬로테 궁전 - 그리스풍의 건물로 왕자가 지었다.



샤를로테 궁전 정원의 조각상

정원 꽃밭
 완전히 중국풍의 건축 양식과 장식으로 치장한 이 찻집은 입장료가 3유로다.
중국보다 더 중국적이고 화려한 치장을 보면 18세기경 유럽에서의 중국 열풍이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원 안에 있는 중국 찻집 - 입장료를 3유로 내야 한다.



건물 기둥 장식물들






건물의 장식물들



중국보다 더 중국적인 건물이다.
18세기 유럽에서의 중국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음을 보여준다.

신왕궁에서 정문까지 나오는데 40여 분이 걸렸다.
대단한 규모의 공원이다.

이제는 세계 제2차대전을 정리한 회담장소로 유명한 치칠리엔 城(Cicilien Hof)을 향해 걸었다.

공원을 나와서 동북쪽으로 가는 도중 오래전에 러시아인들이 모여 살던 러시안 빌리지(푸시킨 빌리지)를 지난다.
박물관 등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도 있다.
숲속 언덕에 예쁜 러시아정교회도 있다.




러시안 빌리지(푸시킨 빌리지라고도 부른다)



러시아인들이 살던 건물.
도서관도 있고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도 있다.




러시아 정교 교회



작은 언덕을 넘어 다시 올라가는 길 왼쪽 담장 안에는 유대인들의 공동묘지가 보인다.

언덕 위에는 윌리엄 4세가 세운 트윈 타워가 있다.
정원 한가운데가 연못(수영장?)이 있는 이국적인(그리스) 분위기를 풍기는 이 건물은 연회장소로 쓰였다던가?

 

위리엄 4세가 지은 트윈타워가 있는 요새.



연회장으로 쓰였다던가?

언덕을 넘어 오른쪽 길을 따라 “체칠리엔 호프”를 찾아가는데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210년이 넘은 맥주공장 겸 식당 “Meierei Brauhaus Im Neuen Garten Potsdam”을 만났다.
한참 갈증이 나는데 눈이 번쩍 뜨인다.

Virgin Lake 물가에 자리를 잡고 1792년부터 맥주를 만들어 온 명품 Beer Hause.
생맥주로 “Meierei”와 “Potsdamer Schwarz(흑맥주)” 한잔 씩 맛을 보았다.
뙤약볕에 7-8km을 걷고 나서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의 구수하고 깊은 맛은 일품이다.




Virgin Lake 물가에 자리 잡고 1792년부터 맥주를 만들어 온 명품 Beer Hause.
생맥주로 “Meierei”와 “Potsdamer Schwarz(흑맥주)” 한잔 씩 맛을 보았다.



맥주잔 받침

뙤약볕에 7-8km을 걷고 나서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의 구수하고 깊은 맛은 일품이다.

Virgin Lake를 끼고 조금 내려가면 Cecillienhof Schlos가 나온다.호숫가에 독일 전통양식의 그리 크지 않은 이 城은 20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호엔촐레른 家” 최후의 왕자인 빌헬름이 가족들과 사용했던 곳으로 왕궁이라고 하기엔 너무 소박하다.

이곳에서 1945년 8월 연합군이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짓는 회담을 했던 장소로 독일과 베를린의 분할을 결정했다

이 부근은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Cecilienhof Schios
20세기 초에 “호엔촐레른 家” 최후의 왕자인 빌헬름이 건축해서 가족들과 사용했던 곳으로 왕궁이라고 하기엔 너무 소박하다.



Cecilienhof Schios



Virgin Lake의 호반은 시민의 휴식장소로 경치가 아름답다.
일광욕을 하는 사람, 독서를 하는 사람 조용하고 한가로워 보인다.




아름다운 Virgin Lake 풍경 - 호반은 시민의 휴식처다.





아름다운 Virgin Lake 풍경.

멀리 대성당의 푸른 빛의 돔이 빗겨 드는 저녁 햇살에 아름답게 빛난다.

걸어서 기차역으로 돌아오니 아침에 싣고 가던 동물 모형 중 하나가 역 입구에 버티고 섰다.
19시, 포츠담역을 출발해서 Zoologi역으로 돌아 왔다.
오늘은 족히 20km 넘게 걸었다.
호스텔 아래층 슈퍼마켓에서 돼지 삼겹살을 사다가 포도주를 곁들여 피로를 풀었다.

*.포츠담 회담.

제2차 세계대전 도중, 그리고 마무리 단계에서 영국, 미국, 소련 등 연합국 대표들은 4번의 회담을 개최했다.

첫 번째 회담은 1943년 11월 22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제1차 카이로 회담이다.
여기서 영국의 처칠과 미국의 루스벨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논의하고 중국의 장제스와 함께 일본이 침략으로 얻은 국외 영토는 무효라는 서언을 내렸다.
이에 따라 한국도 국제적으로 독립을 보장받게 되었다.

제1차 카이로 회담 후 처칠과 루스벨트는 이란의 테헤란으로 자리를 옮겨 러시아의 스탈린과 함께 연합군의 작전에 대해 논의했다.
처칠과 루스벨트는 1943년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테헤란 회담에 참석하고 다시 카이로로 자리를 옮겨 제2차 카이로 회담에 참석했는데, 스탈린은 비행에 공포증이 있어서 육로로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면 회의에 참석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의 패색이 짙어진 1945년 2월 4일, 미국, 영국, 소련의 대표인 루즈벨트, 처칠, 스탈린은 흑해 연안도시 얄타에서 모여 폴란드에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독일은 미국, 영국,프랑스, 소련이 나눠서 점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열린 포츠담 회담은 앞에 있었던 회담들의 내용을 정리하고 태평양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해 논의한 회담이다.

주요 참석자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 소련의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 영국의 처칠 총리였는데, 중간에 영국총리가 교체되자 회담의 후반부는 처칠 대신 애틀리가 참석했다.

포츠담 회담에서는 얄타 회담에서 결정된 대로 독일의 분할통치와 무장해제, 非 군사화 등이 결정되었고, 폴란드의 국경과 동부 유럽의 러시아 점령지 문제가 논의되었다.
회담의 내용은 7월 26일 포츠담 선언으로 공식 발표되었다.

또한, 이 회담에서 미국이 비밀리에 만들고 있던 “신무기(원자탄)”가 언급됐다.
일본엔 무조건 항복을 권고하는 최후통첩이 보내졌으나 일본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결국 일본은 원자폭탄 2개가 투하된 후에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은 완전히 종결을 지었다.
<서진근 편저 UN회원국 다이제스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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