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rmany – Berlin(2)
11월 16, 2018독일 – Berlin(2)
2008년 8월 1일(금)
09시, Breitscheidpratz(브라이트샤이트 광장)에서 100버 버스를 타고 알렉산더 광장으로 갔다.
버스는 카이젤 교회 부근에서 승차하여 전승기념탑 – 제국의회 의사당 – 브란덴부르그 문 – 역사박물관 – 음악당 – 대성당 – Mueum Island(박물관 지역) – TV Tower – 시청사를 지나 알렉산더 광장에 도착했다.
대성당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유서 깊은 홈볼트대학이 있다.
이 대학에서 아인슈타인이 망명전에 교편을 잡았었다.
그 맞은편에 Babel 광장이 있다.
이 광장에서 괴벨스가 분서(焚書)를 했단다.
광장 한가운데 그 투명 유리판이 있고 그 지하에 텅 빈 서가가 진열되어 있다.
홈볼트 대학 |
알렉산더 본 홈볼트 석상 - 홈볼트 대학 설립자
Babel 광장 |
나찌의 괴벨스가 焚書한 장소.
나찌는 이 광장에서 수만권의 서적을 불태웠단다.
焚書 기념 표시 |
박물관 지역으로 갔다.
박물관 순례 통합 입장권이 15유로다.
페르가몬 박물관에서는 “바빌론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그리스, 로마 등 다른 나라의 유물들도 있으나 단영 압권은 바빌론 유물이다.
건축물, 조각, 거대한 모자이크 벽화 등등 볼만하다.
이락의 바그다드 근처에서 발굴한 것이란다.
Bode Museum에는 목각, 聖畵등이 주류를 이루고(규모가 대단하다)
Alte National Museum에느 회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박물관들 |
알테 내셔날 박물관 |
Pergamon Museum |
지금도 증축중이다.
전시물들
바닥에 그린 모자이크 그림 |
바빌론 유적
바닥에 그리 모자이크 그림 |
소크라테스의 두상 |
세네카의 두상 |
페르가몬 왕의 두상 |
로마 카라카스 황제의 두상 |
바벨탑 상상도 |
시내 중심부를 돌아보고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갔다.
16시 05분, Zoologi역 – Brlin역 – Olympic 스타디움역에 15시 10분 도착.
엄청난 소나기가 퍼붓는다.
손기정 선생이 마라톤에서 우승한 현장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베를린에서 유명하다는 돼지고기 요리 아이스바인을 먹으러 갔다.
1인분이 16유로다.
돼지 족발 찜인데 1인분으로 우리 둘이서 충분하다.
특별히 추천할 만한 것은 못된다.
독일의 서쪽에서 중남부를 돌아 중동부의 베를린까지 12개 도시를 돌아보았다.
이제 독일 13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내일은 폴란드로 떠난다.
면적 : 357,021km2,
인구 : 8,131만명(2012)
수도 : 베를린.
종족 : 독일인 92%, 터키인 2%, 기타 6%.
언어 : 독일어.
화폐 : 유로.
1인당 GDP : 44,558$ (2012년).
<베르사이유 조약>
베르사이유 조약은 1919년 6월 28일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Versailles(베르사이유)궁전의 겨울의 방에서 조인한 평화협정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마무리를 위해 연합국과 독일 사이에 체결되었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중인 1871년, 독일의 빌헤름 1세는 베르사이유 겨울의 방에서 대관식을 거행하고 독일의 통일을 선포했다.
또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서유럽의 패권은 프랑스에서 독일로 넘어갔으며, 독일은 프랑스가 가지고 있던 알자스, 로렌 지방을 차지했다.
이 때 까지 베르사이유 겨울의 방은 독일인 들에게 승리의 장소였다.
그러나 독일은 1919년 6월28일, 통일 독일통일을 선포했던 바로 그 겨울의 방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베르사이유 조약에 서명하게 된다.
연합국의 대표들, 특히 1871년 독일에 패한 경험이 있는 프랑스는 독일에게 가혹한 보상을 요구했다.
독일은 알자스, 로렌 지방을 다시 프랑스에 반환했으며, 독일의 해외 식민지는 영국과 프랑스, 일본이 나눠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혹했던 것은 배상금 문제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독일의 병력을 대폭 축소시키는 한편 전쟁으로 인한 손실을 모두 독일이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21년 소집된 특별위원회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액을 330억 달러로 잠정 집게해내고 독일에게 전액 보상을 요구했다. 이는 독일로써는 도저히 갚아낼 수 없는 금액이었으나 연합국 측은 독일이 무슨 일이 있어도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군 측의 이러한 태도는 독일이 착실히 전쟁복구를 하느대신 배상을 포기하고 연합군 측에 반발하게 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독일은 1930년대 군국주의로 돌아섰고, 히틀러라는 독재자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서진근 편저 UN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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