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onia – Tallin

11월 16, 2018

2013년 6월 12일(수)

09시 30분, 라트비아의 리가에서 버스로 출발했다.
4시간 30분 예정이다.
고속도로 옆으로 소나무 숲이 따라온다.
탈린에 가까워질수록 자작나무가 많아진다.
고속도로에 자가용이 별로 눈에 띠지 않는다.


Riga에서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탈린 구시가지에 도착하면서.

탈린의 랜드마크인 Oleviste Kirke(올레비스케 교회) 첨탑이 보인다.
16세기에 완공된 이 교회의 첨탑 높이가 123.7m로 당시에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이었다네요.



城門과 팻 마가렛 타워(Great Coastal Gate and Fat MAGARET’S Tower)

13시 30분,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도착했다.
신시가지에 버스터미널이 있어서 구시가지까지 택시로 갔다.

호텔 정하고 관광에 나섰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동화같으 중세 거리를 오롯이 보존하고 잇는 아름다운 도시 입니다.
어디를 보고다니느냐에 따라 느낌은 많이 다를테지만 골목골목을 누비며 기웃거리기도하고 높은 곳에올라 조망하기도 하면서 느끼는 분위기는 현대와는 거리가 먼 동화의 나라 그대로 입니다.
무엇을 보았느냐, 어떤 느낌을 자졌느냐는 어디가지나 여행자의 준비된 자료와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오른쪽 성벽을 끼고 Toompea 언덕으로 올라갔다.
러시아 정교 교회와 국회의사당, 덴마크 성벽을 들러서 구시가지 중앙 시청앞 광장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걸었다.




오른쪽 성벽을 따라 툼페아 언덕으로

城 안으로 들어서서

기념품가게

툼페아 언덕 광장으로 가는 골목

기념품 가게

기념품을 사들고.

러시아 정교회 알렉산더 네브스키 교회(Alexander Nevsky Cathedral)

성당 내부

덴미크 城壁


덴미크 城壁을 배경으로

덴미크 城壁을 배경으로

시청 관장

시청

골목길


식당에서
 여러 사람들이 먹는 것을 보고 돼지 무릎부위 요리를 시켰는데 조금 질기긴 했으나 먹을만했다. 저녁은 준원이 어머니가 내셨다.




Old Hansa라고 하는 유명한 관광식당이 오른쪽에 보인다.

2010년 8월 5일(화)

08시, 리투아니아의 수도 Riga를 떠났다.
버스는 09시 37분 국경을 통과해서 에스토니아에 들어섰다.
10시 25분, Pernava에서 10분 휴식을 하고 다시 출발해서 12시 20분, 에스토니아의 수도 Tallin에 도착했다.

그러나 버스는 페리가 드나드는 항구까지 연장 운행해 준다.
이 항구에서는 핀란드의 헬싱키 항으로 페리가 운항한다.
헬싱키까지 페리 요금이 1인 25유로다.

페리항 터미널에서 올드타운 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다.
비가 내린다.
일기가 좋지 않아 오늘은 출항이 전면 취소되었다.

계속 내리던 비가 조금 잦아든다.
걸어서 호스텔까지 갈 만하다.
Old Town 입구 왼쪽 골목에 있는 Old House B앤B까지 걸어서 갔다.
몇 년 전 김중석 감사가 묵었던 숙소다.
비가 계속 내려 오후에는 식사를 마친 후 쉬었다.

에스토니아는 발트 海 동부에 있는 나라로 핀란드와 같은 아시아계이며 언어는 우랄어족에 속한다.
오랫동안 러시아, 덴마크, 스웨덴 등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았으나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지켜왔다는데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1940년 소련에 합병됐으나 1991년 8월 20일 독립했다.
8월 6일 (수)

오늘은 날씨가 좋다.
Old House B앤B가 Old Town 입구에 있어서 관광하기에 편하다.

Toompea 언덕으로 올라갔다.
중세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골목길을 따라 올라갔다.



성 바오로 교회


城壁 門

공방이 있는 골목길

유리공방 – 갤러리

유리공예품 갤러리

성벽과 골목

옛 건물들

14세기에 세운 성문


양쪽에 탑이 있는 비루 게이트(Viru Gate).
안으로 들어가면 구시가지가 된다.



번화가



Tallin 최고의 관광식당인 Old Hansa에서 Honney Beer 맛을 보고 점심을 들었다.
같은 테블에 캐나다 사람 부부가 동석했다.
먼저 Honney Beer를 마시기에 어떠냐고 했더니 그냥 단맛이 난단다.
맥주에 꿀을 첨가한 맛이다.

Old Hansa.
우리가 점심과 Honny Beer를 마신 가장 유명하다는 식당.


거리풍경

과자가게

Town Hall(시청) 광장의 건물들

Town Hall(시청)
 북유럽에서 유일하게 남은 고딕 시청건물.(1371 – 1404년)


수를 놓고 있는 여인
 기념품 가게 주인이 예쁘게 차려입고 가게 계단에 앉아 수를 놓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가진 교회(St. Nicolas Church and Museum)

성벽 안은 귀족들의 주거지역이었다.
포대 탑, 시청, 러시아 정교회, 시의회, 덴마크 城과 3개의 망루, 바로 붙어서 Virgin Tower(창녀 수용소) 등등이 몰려 있는 곳이다.




톰페아 城 위에 있는 북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대포를 발사하던 키엑 인 드 켁 포탑.
툼페아 城은 탈린에서 가장 높은 동산 위에 4km에 걸쳐 성곽으로 둘러싸인 귀족들의 거주지였다.




19세기에 지은 러시아 정교회인 알렉산드르 네브스키 성당


국회의사당

귀족의 저택

Virgin Tower
 덴마크 城에 솟아 있는 3개의 탑 중 하나.
창녀들 수용소였단다.




덴마크 城과 두 개의 탑

덴마크 城壁
 성벽 위는 회랑으로 지어졌다.

Toompea언덕에서 동쪽 기슭을 따라 언덕을 내려오면 중세 유럽에서 가장 높은 첨탑이 있는 돔 교회(콘서트 홀이 있는 교회)를 지나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좁은 골목을 내려오면서 아름다운 거리를 감상하다 보면 항구 쪽을 방어하는 城壁과 성문이 나온다.
성 밖에는 선박사고 추모공원이 있다.


오래된 우물
 도르래와 두레박이 달려 있다.


옛 건물
 가운데 건물에 도르래가 달려 있다.
물건 올리는 용도(?)

 

성문 밖으로

항구를 향한 포대
 성문에 붙여 지은 요새에 포대가 설치되어 있다.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 최대의 인명 피해를 입은 해난사고 기념공원



해난사고 기념 조형물
 자그마한 도시는 반나절이면 대충 돌아볼 수 있지만 좀 더 분위기를 즐기자면 하루 이틀 묵어도 좋겠다.

저녁을 해서 먹으려고 마늘을 까고 있는데 중년 여자가 들어온다.
짐을 내려놓더니 이게 무슨 냄새냐며 인상을 쓴다.
요리하려고 마늘을 까는데 그 냄새라고 했더니 자기도 마늘을 좋아한다며 웃는다.

자기는 독일인인데 대만에서 여러 해 동안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서 동양음식도 좋아한단다.

Old House Hostel은 깨끗하고 위치도 좋고 가격도 적당하여 추천할만하다.

8월 7일(목)

비가 내린다.
배가 출항해야 하는 데 걱정이다.
오늘 17시 30분 비행기로 인천으로 가야 하는데….

페리 대기실로 갔다.
페리가 출항하는데 문제가 없단다.
예정대로 10시 15분에 페리가 출항했다.




Tallinn 항구에 정박한 대형 유람선

부두에서 본 탈린 시

탈린항을 떠나며.


11시 55분, 헬싱키 항에 입항했다.
카우파 광장 옆에 있는 식품점 건물에서 훈제 연어와 훈제 흰살생선
으로 점심을 먹었다.

중앙역 앞에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중앙역까지 걸어서 10분.
13시 10분에 615번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13시 50분 공항도착.

이제 44박 45일간 북구 4국, 베네룩스 3국,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폴란드와 발틱 3국 등 14개국 여행을 마친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마지막 1박은 비행기에서 끝낸다.
볼거리도 즐길 거리도 많은 코스였는데 준비도 부족했지만 너무 빡빡한 일정으로 아쉬움이 매무 많이 남는다.




면적 : 45,226km2.
인구 : 127만 명(2012년).
종족구성 : 에스토니아인 68%, 러시아인 26%.
종교 : 복음주의 루터교 14%, 동방정교 13%.
언어 : 에스토니아어.
화폐 : 크룬(1$ : 11.80크룬)(2006년)
1인당 GDP : 16,880$(2011년)

<러시아와 반목하는 발트 3국>

발트 해 동쪽에 있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흔히 말하는 발트 3국(Baltic states)이라고 부른다.

이 세 나라는 오랫동안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았으며, 1940년에는 소련의 구성국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발트 3국은 러시아보다는 유럽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독립 후 CIS(독립국가연합)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해안과 접한 지역이 별로 없는 러시아는 不凍港을 확보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발트지역을 호시탐탐 노려왔다.

18세기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에스토니아와 발트지역을 점령하여 러시아령으로 삼았고, 그 이후 각 나라의 국어를 금지하는 등 강력한 러시아화 정책을 폈다.
에스토니아는 20세기 초 독립전쟁을 일으켜 러시아로부터 독립했으나, 독.소 불가침 조약으로 다시 러시아령이 되었다.

1941년 나치 독일이 독.소 불가침 조약을 깨고 다시 발트지역을 점령하자 소련은 군대를 동원해 발트지역을 되찾았으며, 그 이후 많은 러시아인이 ‘해방군’ 으로서 발트지역에 주둔하게 되었다.

그러나 발트 3국이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하자 에스토니아에 정착한 러시아인들의 거취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 정체성을 되찾으려 하였고, 인구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러시아인들에게 시민권을 주는데 에스토니아어 습득을 비롯한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러시아어만으로도 문제없이 살던 러시아인들은 크게 반발하였고, 민족 간 감정 대립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문제는 에스토니아의 사회발전에 장애요소로 작용한 것은 물론, 에스토니아와 러시아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서진근 편저 UN회원국 다이제스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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