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Salvador

11월 21, 2018

中央아메리카의 最小國 El Salvador



2007년 7월 8일(일)

05시 40분, 호텔을 출발해서 06시에 El Salvador의 Santa Ana로 가는 버스를 탔다.

06시에 과떼말라 국경에 도착해서 패스포트 체크를 받았다.
출국세는 없고 짐 검사가 세밀하다.
가방 속 내용물까지 검사한다.
이 국경에서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까지 통합 검색이다.

엘살바도르의 수도는 San Salvador다.
산타 아나는 국경을 통과해 산살바도르로 가는 길목에 있는 유적 도시다.
산타 아나는 산살바도르 50km 못미처 있는 古都로 엘살바도르 제2의 도시다.
근교 Tazumal에 Chalchuapa 인디오 유적이 있다.

09시 30분, 산타 아나에 도착해서 Cetnral Park Hotel에 숙소를 잡았다.(트윈, 20$)
10시 50분, 택시로 Tazumal로 갔다. 20분 정도의 거리다.
32m의 피라미드가 있다.
유적이 빈약해 보인다.
발굴 후 복원이 시멘트로 뒤집어씌워 놓았다.
피라미드를 덮고 있는 잡초도 그대로다.
잠시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와 쉬다가 17시 20분에 시내 관광을 했다.


국경에서
 과떼말라와 엘살바도르 국경에 도착해서 패스포트 체크를 받는다.
환전상들이 몰려든다.(검은 가방을 허리에 찬 사내도 그중 한 명)
환율은 좋지 않으나 잔돈 정도는 바꾸어 두어야 편하다.



따수말 피라미드 입구


입구에 들어서면 박물관이 있다.
발굴품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피라미드
 발굴 후 복원된 피라미드는 시멘트로 마무리했다.

기원전 1,200년경부터 기원전 500년경까지 계속된 철추아빠 문화의 중심 유적이다.



石刻

고딕양식의 까데드랄



성당 내부




공원 풍경
 공원을 가운데 두고 대성당, 국립극장, 시청사가 둘러서있다.



국립극장

시청사



엘 까르멘 교회


엘 까르멘교회 내부

엘 까르멘 교회에서 내다 본 시내

거리풍경
 7월 9일(월)

08시 30분, 수도인 산살바도르로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갔다.
로컬버스 터미널의 질서는 엉망이다.
줄을 서기는커녕 창문으로 기어오른다.
다행히 특별배차하는 버스를 타고 08시 40분 출발했다.

10시에 산살바도르에 도착해서 호텔을 잡고 시내 관광과 근교에 있는 악마의 문이라고 부르는 산 계곡을다녀왔다.

엘살바도르(구세주 그리스도라는 뜻)는 과떼말라 총독부령으로 있다가 1,821년 9월에 독립했다.

그러나 “14가문”이라는 부호들과 이들의 협력자들이 부를 독점하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졌고 1970년대에 들어 좌, 우익의 대립이 극심해졌다.

1979년 우익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고 1980년에는 민족해방전선이 결성되어 대립하여 내전에 휩싸였다.
1989년 7월 UN 안전보장이사회가 개입하여 1992년 1월 16일 정전에 합의하고 민족해방전선도 합법 정당으로 정치에 참여하게 되었다.
12년간의 내전으로 70,0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도 민족해방전선의 극좌집단이 남아있어 치안이 불안하다.



수도 산살바도르 중앙공원의 기마상

국립궁전

까데드랄

성당내부


성당 지하에 모셔진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묘지.

사회구원을 강조하는 설교로 기독교인의 민주화 운동 참여를 격려해 온 로마가톨릭교회 성직자인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군사 독재 정권의 폭력에 의해 암살당한다.



국립극장

이글레시아 엘 로사리오 성당

악마의 문
 2개의 거대한 바위가 있는 경승지.
오른쪽 바위는 해발 1,131m이다.
두 개의 바위 사이로 올라서면 반대편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7월 10일(화)

오늘은 산살바도르 근교에 있는 San Andres 유적을 보기로 했다.
09시에 서부터미널로 갔다.
10시 11분 출발해서 12시 20분에 도착했다.
완행버스라 서는 곳이 많다.
정류장마다 잡상인 극성이다.

Ruinas de San Andres는 1910년 농원을 측량하다 발견되었다.
중심 피라미드는 높이 22m의 1호 신전으로 이 지역 지배자를 모셨다고 전해진다.
모두 15개의 나지막한 봉우리들이 녹색 융단 같은 잔디로 덮여있는 아름다운 유적공원이다.

유적에서는 멕시코 중앙고원의 똘떼까 문명의 영향을 받은 것이 발견된단다



새집
 띠갈에서 보았던 새집이 유적으로 들어가는 숲속에 있다.




유적으로 들어서면서 보이는 작은 봉우리들이 아직 발굴하지 않는 피라미드들이다.








遺跡群 입구 아랫쪽에 있는 시설.
아마도 염색소이었을 것이란다.

엘살바도르는 중앙아시아 국가 중 가장 작은 나라로, 1870년대부터 커피가 많이 재배되어 “커피 공화국” 이라고 불렸다.
국가 설립 이후 정치혼란이 계속되었으며, 2001년에는 지진으로 1,200명 이상이 사망하고 2005년에는 산타아나 화산이 폭발하는 등 자연재해도 겪었다.
1821년 9월 21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면적 : 21,040km2.
인구 : 609만 명.(2012년)
종족구성 : 메스띠조 91%, 백인 6%
종교 : 카톨릭 75%, 개신교 25%.
언어 : 스페인어.
화폐 : 미국 달러.
1인당 GDP : $3,831(2011년).
수도 : 산 살바도르

<엘살바도르 12년 내전>

독립 후 계속된 정치혼란으로 신음하던 엘살바도르는 1970년대 들어 좌, 우익의 대립이 극심해졌다.
979년 우익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좌익세력을 탄압하자, 니카라과의 산지스타혁명에 고무된 좌익 게릴라 단체들은 소련, 쿠바, 니카라과의 지원으로 1980년 6월 민족해방전선(FMLN)을 결성했다.

1981년 FMLN(Frabundo Marti National Liberation Front)은 1만 명이 넘는 무장 병력을 동원하여 총공세를 폈으나 미국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에 밀려 정권을 쥐는 데 실패했다.

1983년과 1984년 사이에 FMLN의 병력은 1만 4천이 넘었으나, 점차 세력이 약화 되 1984년 이후에는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무차별적 테러를 감행했다.
결국 1989년 7월 UN 안전보장이사회가 개입을 결정했고, 1992년 1월 16일 UN의 중재로 정전에 합의했다.
12년에 걸친 내전으로 7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전 합의 후 FMLN 잔당이 극좌 단체를 결성하여 폭탄테러와 납치 등을 자행하고 있으며 강도, 살인, 마약 밀매 등이 이어지고 있다.
(서진근 편저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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