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zil – São Paulo – Rio de Janeiro

11월 29, 2018

브라질 –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2005년 4월 2일(토)

브라질 국내선을 타고 남미 최대의 도시 쌍 빠울로로 갔다.
인구 1,700여 만의 이 도시는 상업 중심이다.

강철호 사장의 고교 동창이 이곳에서 살기 때문이 여행사에 1일 투어를 부탁했다.
우리는 교민들의 사업장이 몰려있는 지역에 교민이 운영하는 호텔 Luz Plaza에 들었다.(us $40)
깨끗한 호텔이다.

브라질은 1,500년 포르투갈의 Pedro Aluares Cabral이 인도로 향했는데 우연히 1월에 브라질의 해안에 도착해 발견헀다.
1,531년 포르투갈의 조앙 3세가 1차 정착민을 보내 식민지 경영을 시작했다.
식민지 지배자들은 기후가 사탕수수 농사에 적합한 것을 파악하고 원주민들을 노예화해서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했다.
인력이 부족하자 원주민 사냥을 위해 계속해서 오지로 들어가다가 1,600년 중반에는 안데스 산맥의 페루까지 도달했다.
때 영역 표시로 깃발을 꽂아놓고 들어간 것이 모두 브라질의 영토가 되었다.
브라질은 전쟁 없이 남미의 3분지 1에 달하는 영토를 확정했다.


호텔에서 본 상 빠울로 시내
 상 빠울로에는 의류업으로 성공한 교민들이 많다.
아르헨띠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민들과 정기적인 교류를 하며 서로 돕는단다.
이민 초기에는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앉아서 장사하고 있던 의류시장을 우리 교민이 방문판매로 고객을 파고들면서 유대인을 완전히 제압고 의류업에서 상권을 장악하여 성공한 이민으로 평가 받고 있다.



독립 박물관
 1.807년 나폴레옹이 포르투갈을 침공하자 Prince Regent는 영국의 배를 빌려 브라질로 건너와 망명정부를 세우고, 상 파울로를 포르투갈 왕국과 브라질 왕국의 수도를 정한다.
10년 뒤 나폴레옹이 죽자 귀국하면서 아들을 내세워 뻬드로 1세로 브라질 왕위를 물려준다.
뻬드로 1세는 1년 만에 국민의 성화에 못 이겨 이곳 언덕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본국에 맞서 독립을 쟁취한다.

이 독립전쟁에는 이딸리아 통일의 영웅주쥬세페 디 가리발디도 참전했다고 한다.

이 박물관에는 독립운동 당시의 여걸 아니따 가리발디의 초상화가 있고 싼토스 드몽의 유물들이 중요 전시물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싼토스 드몽이 최초로 비행기를 발명했다고 주장한다.
손목시계도 싼토스 드몽이 비행기 조종을 위해 발명했단다.




아르마스 광장
 치안상태가 워낙 나쁘니 혼자서 다니지 말고 대충만 둘러보고 차에 타라는 주문이다.
브라질은 UN 보고서에서 세계에서 가장 분배가 잘 못된 나라로 분류되어 있다.
대성당 계단 위에서 광장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한다.


대성당


방송기자들이 와서 취재하고 있다.



미사중

교황 서거 추도미사
 아르마스 공장을 들러서 대성당 앞으로 갔는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미사를 드리는데 방송기자가 성당 정문 앞에서 녹화 한다.
내용인즉. 교황께서 서거하셨단다.




교황 서거 추도미사


브라질에서 유명한 슈라스까리야(슈라스꼬) 전문식당
채소와 과일은 셀프 서비스로 무제한




꼬챙이에 끼워 구운 각종(소고기, 되지고기, 닭고기 등 ) 육류를 부위별로 쉴 새 없이 가져와 권한다.
무제한.
중급 정도의 식당이 us $10정도,
후식과 음료는 별도요금.
엄청나게 비싸다.

저녁은 교민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생선회, 매운탕, 된장찌개로 입맛을 달랬다.


4월 3일(일)

일요일은 시내가 철시한다.
호텔 앞 공원에서 전시회를 한다고 안내되어 있다.

공원 앞 도로에는 콜렉션에나 적합할 둣한 고풍스러운 자동차들이 몰려 있다.
애호가들이 몰려 사고, 판다. 그 주위에는 자동차 액세서리와 부품상들이 늘어서 있다.

서 회장님은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펠레의 고향 싼토스를 다녀오신다고 떠났다.
한동기 회장 부부는 전철을 타고 외곽에 있는 한인 마을을 갔었는데 맛있는 냉면을 대접받았단다.
우리는 주말이면 일본인들의 장이 선다는 곳을 전철을 타고 갔다 와서 공원 안 건물에서 18-9세기 작품 회화와 조각전시회를 관람했다.



공원에 있는 쥬세페 디 가리발디 동상
 가리발디는 이딸리아 통일의 명장인데 브라질의 독립운동에도 간여했단다.
그리고 아니따 가리발디를 만났다고 한다.



전람회의 조각상



자동차 전시장소



주말시장 일본인 가게

주말시장의 일본인 노인들
 4월 4일(월)

08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히오 데 자네이로로 갔다.
쌍 빠울로와 히오 간에는 전용 비행장이 시내 가까운 해변에 따로 있다.
히오는 약 200년간 브라질의 수도였으나 1,961년 브라질리아로 수도가 옮겼다.

Rio(江) De Janeiro(1月)는 Pedro Aluares Cabra가 1월에 이 항구로 들어 오면서 江으로 착각해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Rio는 나폴리, 시드니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이다.
항구의 이름다움은 선원들이 항구로 들어오면서 보이는 경치로 평가한단다.

Rio에는 4.2km의 꼬빠까빠나 해변을 비롯해 4개의 유명한 비치가 있고 꼬르도바도 산꼭대기의 예수님 상,
슈가로프(Sugar Loaf)와 아름다운 도시가 볼거리다.
4개의 해수욕장은 이용하는 계층이 다르다.




꼬빠까빠나 해변
 페루와 볼리비아에 걸쳐있는 띠띠까까호의 볼리비아 쪽 근처의 꼬빠까빠나에서 온 상인이
이 해변에 교회를 짓고 꼬빠까바나 교회라고 이름을 붙인 데서 따온 이름.




꼬빠까빠나 해변


슈가로프(Sugar Loaf = 원뿔형 설탕 덩이) 케이블카 매표소에서.



슈가로프



슈가로프에서 내려오는 케이블 카.
007 영화 문레이커에서 격투는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우까(최초의 정착 마을)
 슈가로프 위에서 짝은 사진.



슈가로프에서 내려다 본 경치

정상의 조각


꼬빠까빠나 비치. 4.2km
꼬빠까빠나에는 네 곳에 비치가 있는데 비치마다 이용하는 계층이 다르단다.



Rio Canival이 치뤄지는 장소.
 도로 양 옆에 계단식 관람석이 있다.




꼬르도바도 언덕 올라가는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기차



기차에서 익살스럽게 연주하는 밴드



예수상



1,924년 부터 모금 운동으로 us $40만을 모아 1,926년부터 5년에 걸쳐 건설.
예수상의 떠받치고 있는 성당이 8m. 예수 상 높이 30m. 양팔 길이 28m.
최근에 新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뽑혔다.


에수 像에 올라서

(빌려 온 사진)

예수 像과 리우데자네이루 시 전경.(빌려 온 사진)

에수 像 夜景.(빌려 온 사진)

꼬르도바도 언덕 위에서 본 시내

시내

기념품상
 4월 5일(화)

범선을 타고 1시간 30분 선박유람.
비가 내린다.
시야는 별로 좋지 않지만, 바다에서 보는 항구와 배경이 되는 산들이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운 항구다.
브라질리아를 설계한 사람의 우주선 모양의 작품이 바닷가에 세워져 있다.

Rio에서 70km 떨어져 있는 해발 900m의 여름 궁전 Petro Polisi로 갔다.
옛날에는 기차가 놓여 있었는데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있는 자들을 위한 시설이었다며 철거해 버렸단다. .

뻬드로 2세는 잠시 본국에 다니러 갈 때 딸 이사벨 공주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떠났다.
그런데 이사벨 공주는 마음씨 고운 박애주의자로 그때 공주는 귀족들과 상의 없이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
노동력을 빼앗긴 기득권자인 귀족과 군인들은 뻬뜨로 2세가 돌아오자 1,889년 11월 5일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 포기각서를 받아내고 포르투갈로 쫓아 낸다.
뻬드로 2세는 죽으면서 뻬뜨로 폴리스에 묻어달라는 유언이 지켜져 한 성당에 부부가 안치되어 있다.




기념품

원뿔형 성당
 천장이 높아 시원하다.
내부에 장식물이 거의 없다.
십자가는 성당 옆에 별도로 세워져 있다.




유람선에서


브라질리아를 설계한 사람의 작품


해발 900m에 있는 Polisi에 있는 여름궁전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있는 호텔



Polisi로 올라가는 도중 호숫가 식당

오늘도 슈라스까리에로 점심

오늘도 슈라스까리에로 점심

식사중

뻬드로 2세 동상

삼바쇼

관객과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제1인 이과수 폭포로 갔다.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는데 먼저 브라질 족 이과수 폭포로 갔다.



이과수 폭포




이과수 폭포에서.보트를 타고 폭포 아래까지 다녀오는 관광코스가 있다.


서진근 회장님








비행기에서 본 Rio 항구
 여러 갈래의 강들이 모여드는 모습이 보인다.



리떼로 다리(6차선 14km 교량)



면 적 : 8,514,877평방km.
인 구 : 2억 570만 명(202년).
수 도 : Brazilia.
언 어 : 폴투갈어, 독이러, 일본어, 이딸리아어, Amerindian어.
종 교 : 로만 카톨릭 74% . 개신교 15%
종족 구성 : 백인 55%, 물라토(흑인 + 인디오 혼혈) 38%, 흑인 6%. 동양인 1%
회폐 : 리알(1$ : 1.69리알)(2010년 12월)
1인당 GDP : $12,917(2011년).
주요자원 : 철광석 및 철강제품, 교통 장비,커피, 설탕, 콩,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알코올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가
많음. 1차 유류파동을 극복함.



略史

지리, 기후 조건이 중앙집권적 조직을 갖춘 국가형태가 필요 없던 지역이라서 특별한 유적이나 유물, 역사가 없다.
부족단위 사회만 존재하던 지역이다.

1,550년 포르투갈의 Pedro Avares Cabral이 인도를 향해 가다가 브라질 연안에 도착.
1,551년 포르투갈의 조앙 3세가 1차 정착민을 보냄.
1,660년 중반. 사탕수수 농장 노동력 확보를 위해 원주민 사냥.
사냥꾼들이 영역표시를 위해 깃발을 꽂으면서 내륙으로
들어가다가 안데스 산에서 페루 국경까지 영역 확보.
1,690년 금광을 발견하고 아프리카 노예 대거 공급.
1,807년 나폴레옹의 포르투갈 침입으로 국왕은 영국 군함을 빌려 타고 브라질로 망명. 포르투갈 왕국과 브라질 왕국의 2개국 왕이 됨.
1,822년 나폴레옹이 실각하고 Regnt 왕이 환국하면서 아들 뻬뜨로 1세를 브라질 국왕으로 즉위시킨다.
1,823년 뻬드로 1세는 시민의 압력에 못 이겨 본국에 대해 독립을 선언하고 정식 브라질 왕국의 왕이 된다.
1,831년 정식으로 포르투갈로부터 독립.
1,833년경(?) 포르투갈 부왕이 서거하자 16세 된 딸을 폴투갈 왕으로 등극시켜 동생을 섭정으로 딸려보낸다.
1년 뒤 동생이 왕위를 찬탈하자 6세 된 아들을 브라질 친구들 에게 21세가 될 때까지 섭정을 부탁하고 본국으로 갔으나 페렴으로 죽는다.
1,849년경(?) 친구들이 약속을 지켜 뻬드로 2세가 21세가 되자 왕권을 회복시킨다.
1,889년경(?) 포르투갈 여행을 떠나는 뻬뜨로 2세는 이사벨 공주에게 전권을 위임했는데 이사벨은 노예 해방을 선언한다.
1,889년 11월 15일, 노예를 잃은 기득권자인 귀족과 군인들은 뻬드로 2세가 돌아오자 쿠데타를 일으켜 왕으로 부터 왕권 포기 각서를 받는다.
포르투갈로 쫓겨간 뻬드로 2세는 죽은 다음 뻬드로 폴리시에 묻히기를 원하고 그 유언은 지켜진다.
뻬드로 2세는 지금도 국민들 사이에 명군으로 기억되는 분이다.

뻬드로 2세가 물러나면서 왕정이 무너지고 군정과 민정이 반복되다가 1989년 11월 국민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민정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UN보고서는 세계에서 분배가 가장 잘 못된 나라로 브라질을 꼽고 있으며 국내치안도 너무 불안해서 길거리를 함부로 돌아다니기도 무섭단다.
*. 브라질 이민약사.

1,918년 6명, 일본국적으로 사탕수수밭에.
1,956년 56명, 반공 포로들. 인도를 거쳐 브라질로.
1,963년 29세대. 농업이민. 농업이민은 자녀교육 문제로 실패.
모두 도시로 집중.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의류업에 파고들어(방문판매) 지금은 완전 장악.

<브라질 왕국>

브라질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유럽계 백인들이 세운 왕국이 존재했던 나라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나폴레옹이 나타나 유럽 점령을 시작하자 포르투갈까지 그 영향이 미치게 되었다.
1807년 프랑스군은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까지 진출했고, 위기를 느낀 포르투갈 왕은 식민지인 브라질로 망명했다.

포르투갈의 왕 주앙ㅍ6세는 영국의 웰링턴 공작이 포르투갈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내자 본국으로 돌아오려했으나 1815년 3월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해 다시 권력을 잡자 브라질에 정착해 리우데자네이루를 수도로 한 포르투갈-브라질 연합왕국을 세웠다.

연합왕국 아래서 브라질과 포르투갈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게 됐으나, 1821년 주앙 6세가 포르투갈에서 일어난 급진적인 혁명을 막기 위해 귀환하자 포르투갈에서는 브라질의 예전의 식민지로 돌리려 하였다.
그러나 리우데자네이루에 남아있던 주앙 6세의 아들 돔 페드루(페드루 1세)는 독립을 선언하고 브라질 왕국국의 초대 국왕이 되었다.

페드루 1세는 여러 가지 정치적 실수로 1831년 5세밖에 안 된 아들 페드루 2세에게 왕위를 넘기고 포르투갈로 돌아갔으나, 그의 뒤를 이은 페드루 2세는 관용적이고 온건한 정책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통치했다.
그러나 1889년 군시 쿠데타가 일어나 페드루 2세는 왕위에서 물러나 유럽으로 망명했고, 브라질은 공화국이 되었다.
(서진근 편저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세계의 주요 폭포>

폭포를 논할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은 폭포의 높이, 낙차, 너비, 유수량(流水量) 등이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을 종합했을 때 세계 3대 폭포로 꼽히는 것은 이과수, 빅토리아, 나이아가라 폭포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웅대한 폭포를 꼽자면 많은 사람들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있는 이과수 폭포를 꼽는다.

“고대한 물”이라는 뜻의 이과수 폭포는 60m – 82m 높이의 크고 작은 폭포들이 모여 이루어진 폭포로 총 너비가 4km에 달하며 초당 평균 1,756입방미터의 물을 쏟아낸다.
우기(11월 – 3월)에는 수량이 초당 12,750입방미터까지 늘어난다.

캐나다와 미국 사이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는 평균 유수량이 5,525입방미터로 수량은 이과수 폭포보다 많지만 너 비는 990m로 이과수 폭포의 1/4 정도이며,높이도 50m 정도로 낮은 편이다.
게다가 폭포를 이루고 있는 암석이 계속 강물에 깎여 나가면서 캐나다와 미국이 폭포의 보호를 위해 강물의 일부를 수력발전소로 돌렸기 때문에 이과수 폭포와 같은 장엄함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루스벨트 전 미국대통령 부인 엘리노어 루스벨트는 이과수 폭포를 보고 감상을 묻는 사람들에게 “초라한 나이아가라(Poor Niagara)” 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프리카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는 높이 108m, 너비 1,700m에 달하는 폭포로 세 폭포 중에 가장 높지만 유수량은 1,080입방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지구 상의 폭포 중 높이가 가장 높은 폭포는 베네수엘라에 있는 앙헬 폭포(Angel Falls = 엔젤 폭포)로 폭포의 높이는 979m, 최고 낙차는 807m에 달한다.
대신 폭포의 너비는 굉장히 좁으며, 수량도 적은 편이다.
(서진근 편저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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