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u – Lima – Cuzco – Machu Picchu

11월 29, 2018

페루(1) : 리마, 쿠스코, 마추픽추



2005년 3월 10일

우리 회원 16명은 3개월여의 준비 끝에 南美 4개국을 약 한 달간 여행하기로 하고 1진 12명이 먼저 출발했다. 2진으로 오시는 4분은 페루를 다녀오신 분들이라서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만나기로 했다.


3월 10일(목)

인천공항 15:00 KE0017로 출발. LA 공항 08:50 도착.
시차 7시간, Flying Time 10시간 30분이 걸렸다.
12:35분에 출발하는 LA0601 리마행 비행기를 같은 건물 3층에서 기다리는데 저녁 8시 출발로 바꾸면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을 주겠다는 제안이 들어 온다.
그러면 내려서 잠잘 시간이 없다.

8시간 30분을 날아서 리마에 도착,
리마공항의 환율은 us $1:3.23솔에 수수료가 2%.
그 옆 환전상은 us $1:3.21솔 인데 수수료가 없단다.

공항 밖으로 나가서 택시를 흥정하니 호텔까지 12솔.
짐이 많아서 택시 1대에 3명밖에 못 탄다.
중형차를 60 솔에 빌려서 01시 45분에 쉐라톤 호텔에 도착했다.
Old Town 중심지에 us $45짜리 호텔 인데 꽤 괜찮다.

방 배정이 끝나자 Welcome Pisco Sour 1인 1매씩(바에서 한잔).
포도주를 증류시킨 독주에 달걀 흰자와 흰설탕, 레몬즙을 넣은 칵테일인데 시원하면서 독특한 맛이다.
방에 들어가 씻고 나니 새벽 3시.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 1시다.
출출해서 가져간 가락국수를 끓여 먹고 취침.
3월 11일(금)

현지 관광회사에 1일 투어를 의뢰했다.
9시 10분쯤 중년의 남자 가이드가 왔다.
대학에서 영어를 공부했단다.

리마는 프란시스코 피사로 가 페루 통치를 위해 세운 도시다.

동북쪽으로 35km를 나가면 안데스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계곡을 적시면서 태평양으로 흘러가는 강줄기 양쪽으로 비옥한 농경지가 있고 마을이 나타난다.

이 근처에 3-8세기경 리마 족이 살던 유적이 있다.
그 후에 몇몇 부족이 거쳐 가다가 왈리 족이 들어와 번성했으나.
1,400년경 잉카 족이 침입해와 높은 곳.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태양의 신전을 평지에 달의 신전을 건설하여 90여 년을 번성하다가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였다.
유적 입구에는 자그마한 박물관도 있다.


피라미드 안내

리라미드 유적

와리 족의 주거 터

잉카 족의 태양의 신전

태양의 신전에서 내려다본 태평양



박물관 유물



빠차까막
 잉카인들의 조상신이다.
뿌노의 띠띠까까 湖에서 부인과 함께 꾸스꼬로 내려와 나라를 세웠단다.
12시 30분 시내로 돌아와 대중적 해산물 요리인 세비체와 닭고기 카레 볶음밥으로 점심을 하고, 대통령궁, 대성당, 주교관,프란시스코 수도회를 보았다.

프란시스코 수도회에는 한 때 2,000여 명의 수도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30여 명뿐이란다.
지하 묘역에는 수많은 유골이 정돈되어 있다.

피사로는 파나마로 상륙해서 페루로 진격해 왔는데, 잉카제국의 수도가 내륙 깊숙한 고원지대인 꾸스꼬에 있어 본국과 연결이 어렵고 방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1533년 꾸스꼬를 점령하고 2년 뒤에 꾸스꼬를 불태워 파괴하고, 리마에 수도를 건설했다.

대성당 입구 들어서서 우측에 피사로에게 헌정된 묘역이 있다.

시내의 차이나타운은 규모가 대단하다.
치안상태가 좋지 않아서 현지인들도 야간 외출을 꺼린단다.



리마 해변
 리마는 해발 150m에 세워진 도시다.




대성당
 지진으로 무너져 3번 중수했다.
현재 것은 1715년에 개축.



대성당 내부
 정면 사진인데 윗부분에 잉카 족의 주신인 태양신 상징물이 있다.




프란시스코 수도회의 도서관.
그레고리 성가집 원본을 보관하고 있다(?)

건물 회랑의 벽화도 볼만하고 지하에는 수도사들의 시체를 모아둔 묘지가 있다.
수많은 유골이 잘 정돈되어 있다.




3월 12일(토)

아침 7시 30분에 어제 시내관광을 해 준 관광회사 버스로 us $35에 공항으로.
09시 50분에 리마공항 이륙해서 꾸스꼬로.
공항이용료 12명이 71달러.

회원 중 1명을 오버부킹으로 내려서 다음 비행기를 타란다.
어제 일기 불순으로 결항이 되어서 오늘 임시 편까지 손님을 태우다 착오가 생겨서 오버했단다.
추첨으로 골랐는데 하필 우리 회원이 걸렸다.
다음 비행기는 15분 후에 출발한다니까 별문제는 안되지만, 혼자 떨어지는 사람은 꽤 당황했다.

꾸스꼬 공항에 내리니 발이 헛디뎌진다.
해발 150m에서 몇십 분 만에 해발 3,326m에 올라오니 고산증세가 약간 느껴지는 것이다.

꾸스꼬는 “배꼽”이라는 뜻이다.

잉까인들은 꾸스꼬를 중심으로 대 제국을 건설했다.
스페인 사람들이 모두 파괴해 버려 흔적도 별로 남은 것이 없지만 마추픽추, 띠띠까까호와 함께 잉까인들의 영원한 고향이다.

꾸스꼬 공항에는 수많은 여행사가 나와 있다.

호텔예약부터 다음날 씨티투어와 마추픽추 관광까지 흥정이 된다.

제시카라고 하는 젊은 여자와 계약을 하고 안내하는 호텔로 갔다.
호텔에 도착하니 꼬까 차가 나온다.

한잔은 무료이지만 두 잔째부터는 돈을 내란다.
차 한잔하면서 시내투어 계획을 짰다.

우선 시 외곽의 싹사우아만, 껜꼬, 뿌까뿌까 땀보, 성스러운
샘을 택시 1대에 us $10 씩에 계약을 하고 돌았다.

가는 곳마다 입장료를 받는데 꽤 비싸다.
1일권은 40솔,
10일간 16곳을 보는 것은 70 솔이란다. 따져 보니 10일권이 싸다.

꾸스꼬는 “세계의 배꼽” 이라는 뜻.
10세기경 남쪽의 띠띠까까호에서 올라온 잉까족들이 세운 도시다. 15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단다.




꾸스꼬 공항의 웰컴 밴드
 공항 대합실에서 민속악단이 연주하며 여행지 분위기를 돋운다.



꼬까 茶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차 한 잔이 나온다.
고산증세에 도움이 된다는 꼬까 차다.




꾸스꼬 시내
 아르마스 광장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라콤피니아 데 헤수스 교회
 잉까의 우아이나 까빠끄의 궁전을 헐고 지었다.
아르마스 광장의 한 변에 있다.
그 옆 골목으로 들어서면 정교하게 다듬어진 돌로 쌓은 축대가 길게 뻗어 있다.




주교좌 성당
 잉까제국의 비라꼬차 신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세웠다.
내부가 대단히 화려하다.




성당 성단



마을 풍경




돌담길

12각 돌
 주교좌 성당 오른쪽 골목으로 한참 들어가다 보면 오른쪽 축대 중간에 끼어 있는 돌.
축대를 쌓으면서 주변의 돌들과 잘 엇물리게 하려고 12각이 되도록 깎았다.
잉카인들이 축대를 쌓는 기법과 돌을 다듬는 기술이 함께 보이는 유명한 돌이다.




싹사우와만

Sacsahuaman의 돌벽
 80톤 – 100톤짜리부터 수 톤짜리까지의 돌들을 4-5층으로 쌓아 요새를 만들었으나 용도는 정확하지가
않다.
스페인 사람들이 건물을 지을 때 여기서 돌을 가져가 지금은 1-2층 정도의 벽만 남아 있다.
쌓은 돌들이 정방형, 장방형으로 다듬은 돌이 아니고 돌의 생김새대로 다듬어 맞추어 쌓은 것이 빈틈이 없다.



싹사우아만 요새 골목

원주민

싹싸우아만에서 내려다본 꾸스꼬 시내
 원주민 건물은 보이지 않고 스페인의 어느 도시 같다.



원주민과 함께
 입구에 정장을 한 원주민들이 관광객과 기념촬영을 위해 기디리고 있다.
출연료를 조금 주어야 한다.




껜꼬 – 케츄아어로 지그재그라는 뜻이란다.
洞穴信仰의 흔적이다.
제일 높은 곳의 제단.
밑으로 내려가면 좁은 통로를 통해 지하 동굴로 들어가게 되고, 동굴 안에는 잘 다듬어진 제단이 있다.

그 제단에서는 라마를 잡아 제사를 드렸을 것이란다.
그 뒤로 있는 동굴에는 미라를 넣어두고 지하세계로 통하는 연결구로 생각했다.



뿌까뿌까라
 꾸스꼬에서 동쪽 아마존 방향으로 나가는 길목의 요새이며 첫 땀보다.

안데스에 “잉까의 길”에 붙어 있는 수많은 “땀보”가 붙은 마을은 역참 마을로 숙소 시설과 창고기능을 갖추고 교통로에서 자연히 중심지 마을로 발전했다.

잉까의 전성기에는 꾸스꼬를 중심으로 4방으로 뻗은 길이 북쪽으로는 에꽈도르의 끼또 까지, 동쪽으로는 아마존 열대우림까지, 남쪽으로는 칠레의 중부까지 이어져 전체길이가 23,000km나 되었단다.



Tambo Machay(성스러운 샘)
 발원지가 어디인지 모르는 샘물이 계속 흘러나온다.
요새 이면서 성스러운 물에 제사지내는 제단이 있다.
쿠스코 귀족들의 휴양지였단다.

시 외곽 관광을 하고 호텔로 돌아와 쉬는데 몇몇 사람이 시내 관광을 하러 나간다.

조금 있더니 최순덕 회원이 부군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 온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몰랐지만, 고산지대라는 것을 잊고 다니다가 고산증에 고생하시는 것이다.

한 분이 고생하시기에 호텔에 상의했는데 산소 호흡기가 한 대 있는데 다른 위급한 사람이 쓰고 있고 여유가 없단다.

호텔마다 산소 호흡기 설치가 의무사항인데 잘 지켜지지 않는 모양이다.

회원 중 한 분이 외국잡지에서 광고를 잘라 왔는데 고산증에 효과가 있다는 약 이름이 있다.

몇 군데 약방에 들러서 구해다가 복용시켰더니 어지러움과 구토증세는 매우 좋아졌는데 혀가 마르는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한결 편안해졌다..

여기보다 500M나 더 높은 뿌노가 걱정이다.


3원 13일(일)

오늘은 성스러운 계곡(Valle Sagrada)으로 1일 투어를 떠난다.

꾸스꼬에서 동쪽으로 4,000M 고지를 넘어가면 성스러운 계곡이라고 부르는 우루밤바 강 유역의 곡창지대가 나온다.
이곳이 수도 꾸스꼬에 식량 보급처다.
우루밤바로 가는 길은 어제 관광했던 곳을 모두 통과해서 간다.
이 우루밤바 강은 계속 흘러내려 마추픽추 아래 통과한다.
이 강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기찻길이 놓였다.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우루밤바로 내려가는 도중에 있는 산간마을 삐사크(Pisac)에 장이 서는 날이라서 인디오의 장 구경도 한단다.




우루밤바로 내려가는 고개에서
 멀리 산들은 계단식으로 개간되어 있다.





계단식 농경지
 3,000-4,000m 초원지대에서는 방목을 하고, 그 아래에서는 감자를 생산하고, 2,300m 내외에서는 옥수수를, 저지대에서는 꼬까 차를 재배한단다.



민속촌


우루밤바로 내려가는 길 우측에 민속촌을 만들어 놓았다.
주로 천을 짜서 만드는 수공예품과 나무조각품을 팔고, 알까파, 삐꾸냐, 과나꼬 등 동물들을 모아 놓았다.




염색소

천 짜기

삐꾸냐
 세계 최고급 털을 제공하는 귀한 동물.
삐꾸냐의 털로 짠 모직 양복 한 벌에 천만 원이 넘는단다.
멸종 위기에 처했었는데 정부와 농민이 협력해서 잡는 시기와 잡는 수량 조절에 성공해서 지금은 개체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단다.



알파카

구이공장
 빵, 감자, 꾸이(Cuy = Ginipig)를 구워서 판다.



기니피그
 페루의 고산지대 사람들이 즐겨 먹는 들쥐.
원래 초식동물이던 것을 집에서 기르다 보니 잡식성이 되었다.
작은 토끼만 하다.



시장 풍경





옥수수
 옥수수 원산지 논쟁이 있었다.
페루냐(중미) 멕시코(북미)냐?
멕시코에서 가장 오래된 옥수수 화석이 발견되어 현재로는 옥수수의 원산지는 멕시코로 결판이 났단다.
감자는 시비 없이 페루가 원산지이다.
600여 종이 있단다.


09시에 출발해서 민속촌 구경을 하고 10시 45분에 삐사크 도착.

1시간 관광 후 11시 45분 출발하여
12시 45분에 우루밤바에 도착.
점심은 지방음식 뷔페인데 us $5짜리가 너무 초라하고 먹을 것이 없다.
옆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감자를 넣은 양고기 수프를 3솔에 먹었다.

1시 40분에 출발해서 올얀따이 땀보로.
꾸스꼬를 출발해서 두 번째 땀보 마을이다.
여기는 곡창지대이면서 안데스와 아마존을 연결하는 통로에 있어서 뿌까뿌까라 땀보와 비교가 안 되는 큰 규모다.

산 위에는 거대한 태양신전이 있고 복원된 곡물저장 창고도 있다.
물도 풍부하고 동네의 규모도 대단히 크다.




올얀따이 땀보 山頂의 태양신전
 올라가는 비탈에 계단식 경작지 같이 보이는 것은 지진 충격에
대비해 완충기능을 하게 설계되었단다.



친체로 성당 앞 풍경



돌아오는 길에 해발 3,800m에 있는 Chinchero에 있는 아주 소박한 성당을 들렀다.
가장 오래된 성당 중의 하나로 관광 필수 코스다.
일요일이라서 장이 서고 있다.


3월 14일(월)

마추픽추를 가는 날이다.
새벽 06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했고 07시에 기차가 출발했다.
일등석이다.
기차에서 간단한 아침을 준다.
1일 us $92 짜리 여행이다.
비가 내린다.
해발 3,300m에서 2,400m로 내려간다.

어젯밤에 비가 많이 왔는지 마추픽추역이 가까워질수록 계곡을 흐르는 우루밤바 강의 흙탕물이 용솟음치며 흘러간다.

10시 55분에 마추픽추역에 도착해서 인원 파악 후 11시 15분에 셔틀버스를 타고 마추삐추로 올라갔다.

구불구불한 가파른 산길을 25분 올라가서 11시 40분에 입구에 도착하니 비가 제법 내린다.

마추픽추는 이 석조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 이름이다.

이 도시는 마추픽추, 해피네스 마운틴, 와이나픽추, 산 마이클 마운틴으로 둘러싸인 중앙 산등성이에 만든 도시다.

언제 도시가 건설되었고 언제, 왜, 전 주민이 사라졌는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천문학이 발달한 농경 사회가 있었다는 증거는 많다.
이 도시를 처음 발굴했을 때 170구의 시체가 나왔단다.

마추픽추는 잉카인 最高의 聖所였으며 천문 기상관측 기능을 수행하던 장소이었다.




새벽 기차로 마추삐추로 가는데 비가 내려 계곡물이 용솟음치며 흐른다.



마추픽추 기차역
 여기서 셔틀버스를 타고 20여분 산 위로 올라간다.



매표소를 지나 들어서며

안으로 올라가면서

마을 전경
 지붕을 제외하고는 모두 돌로 지은 건축물이다.
건물 축대 밑에 계단식 밭처럼 만든 것은 지진에 대비한 완충장치란다.




建物 群

전경




와이나픽추를 배경으로

와이나픽추 정상
 정상에도 건물들이 있다.



와이나픽추 정상의 건물들
 올라가는데 약 1시간이 걸린다.



마추픽추를 배경으로
 와이나삐추 맞은편에 가장 높은 마추삐추가 있다.
이산에서 물을 끌어다 쓴단다.



수로

수로를 따라 흘러내리는 물

건물 군과 떨어진 곳에 만든 계단식 농경지
 관개수로가 보이지 않는다.
이 지역은 1년에 7개월이나 비가 오기 때문에 따로 물을 끌어 올 필요가 없단다.




산 정상에 있는 巨石 태양의돌(Intihuatana)
 안내양은 해시계(태양력)라고 설명한다.



춘분과 추분을 재는 웅덩이
 벽에있는 창문을 통해 비춰드는 햇빛이 각 웅덩이에 비추는
각도로 절기를 알아내고 농사에 이용했단다.




해설자 아줌마
농사를 주로 지었던 이 종족은 12개월로 된 양력과 한 달을 29일로 하는 음력을 함께 사용하였다.

15시 40분에 마추픽추 출발하여
16시 15분에 기차역 도착.
17시에 기차 출발해서 21시에 꾸스꼬로 돌아왔다.
기차역에서 저녁 식사로 “또르띠야”를 샀는데 아주 형편없다.



*. 감자 이야기.

고산지대에 사는 페루 사람들은 각 위도와 고도에 맞는 600여 종이 넘는 다양한 종자의 감자를 개발했다.
수분을 빼고 말려 “추뇨”라는 저장 식품을 만들어 식량 문제를 해결했다.

16세기 유럽으로 전래한 감자는 위도가 높은 추운 지역에서 항상 식량 걱정을 했던 나라들이 집중적으로 재배했다.
독일과 러시아는 감자를 대량으로 심어 농민들의 식량을 해결하고 밀 소비량을 줄여 군량미를 비축할 수 있게 되었다.

비축식량을 확보한 나라들은 대규모 보병부대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국제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일랜드에서는 굵고 벌레가 잘 먹지않는 개량된 품종만 재배하다가 어느 해 감자 병이 전국을 휩쓸면서 대기근이 발생했다.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고 농민 150만 명 이상이 미국으로 이민을 하기도 했다.

품종의 다양성을 파괴한 데 따른 재앙이었다.

<잉카제국>

잉카제국은 잉카족이 12세기경 쿠스코에서 시작해서 안데스 산맥 전체로 확장시킨 남아메리카의 옛 제국이다.
잉카제국에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잉카의 역사에 관한 확실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구전에 의하면 잉카제국은 쿠스코에서 남쪽으로 약 24km 떨어져 있는 파카리탐푸 마을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망코 카팍이라는 왕이 12세기 쿠스코에 정착하면서 쿠스코는 잉카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잉카제국은 15세기부터 활발한 정복사업을 벌이기 시작해 토파 잉카 유판키 황제(1471 – 1493)와 우아이나 카팍 황제(1493 – 1525) 시대에는 에콰도르 북부에서 아르헨티나와 칠레 중부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스페인이 1532년 페루 해안에 상륙한 이후 잉카제국은 빠르게 몰락하기 시작했다.
우아이나 카팍 황제는 스페인인으로부터 감염된 전염병으로 죽었으며, 그 뒤를 이은 아타우알파 황제는 1532년 11월 스페인인들에게 납치, 처형당했다.
스페인은 잉카제국을 정복해 나갔으며, 남은 잉카족이 스페인을 피해 산악지방에 세운 왕국도 1572년 멸망시키고 말았다.

스페인이 빠르게 잉카제국을 점령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잉카제국의 잘 발달한 도로망 덕분이었다.
해안과 안데스 산맥을 따라 난 3,000km가 넘는 양대 도로와 전국 각지를 연결하는 수많은 교차로는 잉카제국의 교역과 통치를 원활하게 해 주었으나 스페인 군대의 진군을 돕기도 했다.

잉카의 종교는 애니미즘(모든 사물에는 영혼이 있다는 믿음), 자연 숭배 등 여러 특징이 혼합된 종교였다.
신들 중에는 태양신 인티(Inti)가 가장 중요한 신이었다.
잉카에서도 멕시코의 마야나 아스테카 문명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동물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 있었다.
(서진근 편저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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