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nia – Sarajevo – Mostar
11월 18, 2018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사라예보(Sarajevo) , 모스타르(Mostar)
2003년 8월 30일(금)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9시 정각에 중앙역 4번 홈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로 가는 기차를 탔다.
식당차를 포함해서 4량의 객차를 끌고 간다.
국경에서 여권검사를 한다.
가지고 있는 리스트를 확인하고서는 Visa가 필요 없단다.
기분 좋게 국경을 통과했다.
지금까지 우리를 끌고 온 기관차는 떨어져 나가고 보스니아 기관차가 우리 객차를 끌고 간다.
완행열차로 9시간이 걸린다.
크로아티아와 유고슬라비아 사이에 낀 산악지형의 이 나라는 2000년 동안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이었다.
비잔틴 정교회, 로만 카톨릭, 터키인들과 슬라브 인들이 섞여 오순도순 살아온 나라였다.
유고연방에서 세 번째로 큰 공화국인 이 나라가 1991년 독립을 선언하자 6개월 뒤 유고연방군의 지원을 받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이슬람을 목표로 인종 청소작업을 벌였다.
그 전쟁 이전까지는 20% 이상이 서로 통혼해가며 같은 아파트에서 다정하게 살던 이웃들이 완전히 등지게 되었으며 1995년 전쟁이 끝난 뒤 나라는 완전히 황페화 되어 산업기반이 전쟁 전에 비해 10%도 가동이 되지 않는다..
1995년 11월 미국 오하이오주의 데이톤에서 열린 평화회담은 연방국가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무슬림과 크로아티아 연방)가 사라예보를 포함해서 49%, 세르비아인들의 스로프스카 공화국은 51%를 지배하는 것으로 협정했다.
3개 공화국은 8개월씩 차례로 대통령직을 맡아 나가며 외형상 1개국으로 간주한다.
우리가 여행했을 때에는 사라예보 , 모스타르 등 주요 도시들은 평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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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로 가는 기차에서 |
국경에서 우리를 끌고 온 기관차가 보스니아 기관차와 임무를 교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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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니아로 들어와서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에 관한 워싱턴 포스트 기자의 글을 읽으며.
사라예보에 도착해서 호텔로 가는데 택시 기사가 코리안 스트리트에 코리안 레스토랑이 있단다.
저녁 식사를 그곳으로 가보았다.
식당이 꽤 화려하고 손님도 많다.
그러나 음식도 우리 음식이 아니고 주인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음식점이 생겼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름만 보고도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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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음식과는 별 관계가 없다. |
8월31일(토)
사라예보는 밀랴츠카 강을 끼고 양편에 도시가 어우러져 있다.
우리에게는 이에리사 선수가 최초로 세계탁구선수권을 딴 도시로 기억에 새롭고, 역사적으로는 1차대전의 빌미가 된 장소로 유명하다.
1914년 6월28일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디드 대공과 그의 아내 소피아가 그 당시 시청이던 국립도서관을 들른 후 무개차로 강변을 따라 두 번째 다리로 가던 중 세르비안인 가브릴로 프란치프에게 암살당한다.
이 사건이 1차대전 발발의 빌미가 되었다.
산 중턱에 있는 호텔서 본 사라예보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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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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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건물 |
밀라츠카강에 놓여져 있는 1차대전의 빌미를 준 황태자를 저격한 다리.
멀리 교각에 구멍이 있는 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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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혜숙 여사님 |
다리 위 페르데난트 대공이 저격당한 장소라고 한다.
돌 화분 2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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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의 모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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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비아 정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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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 풍경 |
이렇듯 이 도시는 여러 종교를 가진 여러 민족이 수천 년을 어울려 살던 곳인데 정치지도자의 욕심이 민족주의에 불을 댕겨 인종 청소라는 잔혹한 전쟁으로 수십만 명이 죽고 고통을 당했음은 물론 국민을 분열시키고 나라가 자력으로 일어설 수 없을 지경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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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scarsija(터키구역의 시장) |
사라예보의 심장이라는 포현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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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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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교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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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戰痕 |
사라예보를 벗어나 험준한 산을 넘어 강을 끼고 아름다운 계곡을 달린다.
군데군데 양식장도 보인다.
산들은 석질이나 모양이 카나디안 롴키를 연상시킨다.
드라이브 코스로 멋진 자연경관이다.
Mostar는 헤르체고비나의 주요 도시로 새파란 네레트바 강을 끼’고 양안에 자리 잡은 중세 도시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강을 끼고 동편에는 무슬림이 서편에는 크로아티아인이 주류를 이루고 살다가 1993년 내전으로 서로 원수가 되고 너무나 많은 건물이 파괴되었다.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아름다운 Stari Most(옛날 다리)도 중간이 끊어졌다.
복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다녀 온지 몇 년 후 완전히 복구되었다는 보도를 들었다.
사라예보에서 모스타르로 가는 강변의 경치.
산 모습이 카나디안 롴키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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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retva Riv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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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retva River 왼쪽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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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江 오른쪽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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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진 Stari Most 왼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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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ri M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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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레트바 강 경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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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ri Most 오른쪽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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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건너 픙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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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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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를 건너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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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 위에서 백봉기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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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온한 강변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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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변 까페가 있는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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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retva 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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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타르 지역의 골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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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타르지역의 모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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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전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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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를 잊지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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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정원을 아름답게 꾸민 집 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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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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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타르 도심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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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傷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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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터미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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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부리부니크로 가는 버스 |
아드리아해 풍경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국 중 하나였다가 독립한 나라다.
중.북부의 보스니아와 남쪽의 헤르체고비나로 이루어져 있다.
1990년 대에는 민족. 종교적 차이로 내전이 일어났으며, 내전 중인 1995년 7월 11일 스레브레니차(Srebrenica)에서는 세르비아계에 의해 8,000명의 무슬림 남성이 집단학살 당하는 스레비레니차 대학살이 일어나기도 했다.
1991년 12월 21일 유고슬라비아연방으로부터 독립했다.
국가명 : BOSNIA-HERZEGOVINA
면적: 51,129평방KM.
인구 : 462만.(2012년)
종족구성 : 보스니아인 48%, 세르비아인 37%, 크로아티아인 14%.
언어 : 세르보, 크로아트어.
수도 : Sarajevo.
종교 : 이슬람교 40%, 세르비아정교 31%, 가톨릭 16%.
화폐 : 마르카(1$ : 1.56KM).(2006년)
1인당 GDP : 4,715$(2011년)
<제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 사건>
1908년 오스트리아-헝가리는 투루크령이었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방을 합병했다.
오스트리아의 ‘게르만주의’는 이 지방에 사는 슬라브인들의 민족감정을 건드렸고, 커져가는 민족감정의 대립은 결국 ‘사라예보 사건’으로 나타났다.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출신의 세르비아계 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사라예보를 순방 중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를 프린치프 다리에서 암살한 것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황태자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선전포고를 하고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자 같은 슬라브족인 러시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고, 두 편으로 갈라져 있던 유럽은 곧 전쟁에 휩싸였다.
거기에 미국과 일본 등도 참여하면서 전쟁은 세계 전체로 퍼졌고, 이렇게 해서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졌다.
동맹국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튀르크였고, 불가리아도 동맹국 편에 가담했다.
그에 맞선 연합국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미국 등이었다.
세계 제1차 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고, 패전국인 독일은 베르사유에서 조인된 강화조약에 의해 해외식민지를 모두 빼앗기고, 1,000억 마르크가 넘는 금액을 배상해야 했다.
이런 가혹한 처사는 후에 히틀러에 의한 세계 제2차 대전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작은 나라들로 분열하였으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세르비아 왕국의 일부로 합병되었다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거쳐 독립했다.
(서진근 편저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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