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ania – Tirana

11월 18, 2018

알바니아 – 스쿼드라, 티라나



2003년 9월 2일(월)

오늘은 알바니아로 넘어가는 날이다.

11시5분 두브로브니크을 출발한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가는데, 내려다보이는 마을과 고성의 경치가 정말로 아름답다.

아드리아 해를 오른쪽으로 끼고 달리는 경치가 그만이다.
5시간30분을 달렸지만 지루한 줄을 몰랐다.

일정에 몬테네그로 관광계획은 없으나 일단은 유고연방의 마지막 남은 국가인 몬테네그로를 통과해서 알바니아로 넘어가야 한다.

국경을 넘어 좌측으로 몬테네그로(검은 산)를 바라보며 버스로 Ulcin에 도착했다.
Ulcin은 알바니아로 넘어가는 몬테네그로 쪽 국경도시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출발해서 5시간 30분이 걸렸다.
Ulcin은 몬테네그로와 알바니아 국경에 접한 도시다.

여기서 국경까지는 버스가 없어 택시를 $30에 전세 냈다.
알바니아 국경을 제대로 통과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비교적 친절하게 통과시켜 준다.
약간의 수고비는 얹어 주었지만 무리하지는 않았다.

국경 초소에서 소개하는 택시로 국경도시 스쿼드라까지 $30에 가기로 하고 호텔에 도착하니 $40을 달란다.

4 星 호텔에 더블룸이 $40이다.
알바니아는 치안이 불안한 나라라고 경고가 되어 있는 나라이다.
국경에서 시내로 오는 도중의 산야에 군사시설들이 곳곳에 보인다.
밭 한가운데 벙커도 보인다.

Hotel 밖 분위기가 대단히 불안해 보여 야간 외출은 하지 않았다.
호텔에서 식사했는데 임 혜숙 여사님이 사셨다.
8명이 $77.

웨이터가 계산서를 가져왔는데 계산이 엉망이다.
환율을 가지고 농간을 부렸다.
따지니 자기 실수라며 즉시 고쳐왔다.

알바니아는 그리스, 마케도니아, 유고술라비아, 이태리 사이에 전략적 위치에 있다.
70% 이상이 산지나 언덕이며 올리브, 감귤, 포도농사가 주를 이룬다.



두브로브니크를 출발해서 크로아티아 국경을 넘어 몬테네그로쪽으로 간다.





유고연방의 유일한 동지 국가 몬테네그로 국경을 통과한다.
최근 몬테네그로도 독립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울친 시내풍경
 울친은 국경도시로 여기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국경까지는 택시로 갔다.





몬테네그로 국경도시 Ulcin의 화장실 지키는 소녀.




바위섬에 아름다운 집들이 들어서 있다.
카지노가 있다던가?





몬테네그로에서 알바니아 국경을 향하여.




알바니아 국경에서 소개받은 택시는 뒷길만 찾아 시내로 들어갔다.
비포장 도로다.




알바니아 국경도시 스쿼드라에서 투숙한 호텔.
저녁에 도착했는데 치안상태가 좋지 않다고 해서 외출을 하지 않았다.
알바니아는 단일민족이며 백인국가 중 유일한 회교국가이다.
비교적 체구가 작다.
백인국가 중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 $810.




중앙 광장의 조형물
 공산권 국가의 조형물 들은 매우 힘이 있어 보이고 투박하다.



9월3일(화)

슈코드라 중앙광장 로터리에서 수도 티라나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고속도로를 달려갔다.




증앙 로터리에서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로 가는 버스



승객들


수도 티라나 시내로 들어서면서.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의 버스터미널
 스쿼드라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려왔지만 수도 중심에 있는 버스터미널은 50년대 서울의 을지로 6가 터미널 만도 못하다.




대로변 가게

Centro를 향하여
 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중앙광장이 있다.
International Hotel로 걸어가는 중이다.



중앙광장 가까이 대로변의 아파트
 예쁘게 색칠을 하고 위성안테나가 모두 설치되어 있다.
전시용?





번화가
 가장 큰 빌딩인 International Hotel 앞 광장



호텔에서 바라본 중앙 광장

알바니아 국기와 조형물



국가명 : ALBANIA
면적 : 28,748VUD방KM.
인구 : 300만 명(2012년).
종족구성 : 알바니아인 95%.
언어 : 알바니아어, 그리스어.
수도 : TIRANA.
종교 : 이슬람 70%, 그리스정교 20%.
화폐 : 렉.(1$:104.7렉)(2009년)
1인당 GDP : $4,131(2011년)
<알바니아와 관계된 코소보 사태>

코소보 자치주는 세르비아 공화국 안에 있으면서도 인구의 90%를 알바니아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특이한 지역이다.

알바니아인들은 자신들이 로마시대부터 이곳에 먼저 정착했다고 주장하고, 세르비아 족은 코소보는 중세 세르비아왕국의 중심지로 오스만 튀르크가 침략한 후 이슬람교를 믿는 알바니아인을 집단 이주시켰다고 말한다.

1989년 “발칸의 히틀러” 로 불리는 밀로세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코소보의 지치권을 박탈하고, 알바니아인을 탄압했다.

알바니아계 주민은 코소보해방군(KLA)을 결성 무력투쟁을 시작했다.

1998년 3월 알바니아 분리주의 반군들이 세르비아 경찰을 공격하면서 코소보 사태가 시작되자, 세르비아는 대규모 소탕 작전을 전개하여 많은 반군을 사살하고”인종 청소작전”을 펼쳐 알바니아계 주민을 무차별학살 하였다.

국제사회가 코소보사태의 해결을 위해 평화협정을 제시하였으나 밀로세비치는 이를 거부하였고, 나토는 공습을 감행했다.
결극 평화안이 수용되고 분쟁은 마무리되었으나 많은 난민이 발생, 알바니아로 유입되어 알바니아 사회혼란의 원인이 되고 있다.

코소보의 알바니아인들을 학살했던 밀로세비치는 2006년 전범 재판을 받던 도중 감옥에서 사망했으며, 코소보는 2008년 2월 17일 단독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미국과 EU 주요 국가들은 코소보 독립을 지지했으나, 러시아와 세르비아 등은 아직도 코소보를 독립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서진근 편저 192 UN 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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