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ize
11월 23, 2018벨리즈 – 중미 최북단의 나라 산호초의 寶庫
2007년 6월 30일(토)
오늘은 北美에서 中美의 벨리즈로 넘어간다.
Mexico 남쪽 국경도시 Chetumal에서 Belize의 옛 수도 Belize-City로 가기 위해 08시 20분 Chetumal Santa Teresa Hotel을 출발했다.
08시 36분 국경에 도착해서 Passport-check하고 국경인 강을 건너
08시 50분 벨리즈 국경 사무소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08시 55분 입국했다.
09시에 미국의 스쿨버스를 닮은 완행버스를 타고 Belize-city를 향해 떠났다.
지나가는 농촌 마을이 너무 후락하다.
마을의 골목마다 정차하여 승객을 태우고 내려준다.
골목이 30m – 50m마다 있어도 모두 선다.
너무 심하다.
이 나라 영토는 과떼말라 동쪽 연안의 늪지대와 밀림지대로 스페인이 과떼말라를 통치할 때 과떼말라 총독부 관할 아래 있었으나 너무 변두리로 관심이 소홀한 틈을 타 1638년 영국의 무장 선박이 벨리세 시티 근해에 있는 小島 세인트 조지에 도착하여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차츰 영국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영국은 이 지역에서 나무를 벌목해서 본국으로 실어 나르는 과정에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흑인(인구의 10%), 중국인, 인도인들을 대거 유입시켜 다민족 사회가 되었다.
이로써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을 때 Belize는 유일하게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중남미의 다른 나라들이 스페인어(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는데 이곳은 영어를 쓴다.
예전에는 영국령 온두라스로 불렀으나, 1973년에 국명을 벨리즈로 바꿨다.
1981년 9월 21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Belize에는 20여 개의 마야유적이 있다.
과떼말라의 띠갈 유적보다도 큰 규모라는 Caracol(까라꼴)유적을 위시해 ‘수난뚜니치’, ‘Altun ha’ 유적 등등이 있으나 카리브海上의 산호초지대를 중심으로 관광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므로 육지의 유적들에까지 손을 쓸 여유가 없어 현재로서는 접근로가 마땅치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육지의 마야유적 외에 근해 250km에 펼쳐져 있는 북반구 최대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산호초 지역은 유네스코에 등록된 산호초 보호구역이다.
이곳에는 산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생긴 지름 100m, 깊이 130m인 Blue Hole이 있으며 가까운 거리에 유명한 휴양지 Caye Caulker 섬이 있다.
11시 45분 버스는 벨리즈 시티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택시기사가 안내해준 陳 마마 중국인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마야유적 Altun ha를 찾아 나섰다.
대중교통이 없어 택시를 전세내어 14시 14분에 ‘알둔 아’에 도착했다.
“알뚠 아”라는 말은 마야어로 ‘바위의 연못’이라는 뜻이란다.
1964년에 발견된 이 유적은 상당한 규모의 유적으로 상당한 부분 발굴하였으나 아직도 미발굴 상태로 남아 있는 곳이 많다.
2개의 광장과 신전이 있고 제일 오래된 태양의 신전은 높이가 18m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으로 건설되었으나 마야의 피라미드는 제일 위쪽에 신전과 제사를 올리는 장소로 지어졌다는 것이 다르다.
대낮인데 모기가 극성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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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tun Ha 유적 입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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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발굴 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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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으로 들어서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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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 광장과 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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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 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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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의 신전 꼭대기에서 본 1호 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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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의 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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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의 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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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의 신전과 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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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의 신전 | 
멕시코를 내려오면서 강행군을 했기 때문에 벨리세에 와서는 멋진 산호섬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오늘은 보트로 달려서 1시간 내외 거리에 있는 키 코커(Caye Caulker)섬으로 가서 하루를 쉬기로 했다.
08시,
Houlover Creek 하구에 있는 Swing Bridge 아래서 출발하는 ‘키 코커’행 보트를 탔다.
08시 45분, Caye Caulker에 도착.
섬은 남북으로 1km 정도로 자그마한데 곳곳의 숙소들이다.
이곳은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 마니아들이 몰려오는 곳이란다.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분다.
바다에 들어가지 못했다.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숙소를 정하고 편히 쉬었다.
마을 입구에 “랍스터 페스티발”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오늘이 마지막 날로 저녁 7시까지란다.
랍스터 꼬치구이, 랍스터 통구이들을 맛있게 굽고 있다.
큼직한 놈으로 1마리에 us $20이다.
대단히 싱싱한 것이 맛있다.
한밤중, 강풍에 폭우가 쏟아진다.
내일 선박운행이 순조로울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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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ulover Creek 하구에 있는 선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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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ing Brid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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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착장 | 
그 위 건물에 매표소가 있다.
Caye Caulker로 가는 보트도 이곳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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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 코커 섬을 향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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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 코커 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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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 코커 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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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tel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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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민들의 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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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자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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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bster Festival 현수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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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장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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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장 부근 해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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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치구이 | 
한 꼬치에 us $20이란다.
조금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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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랍스터 통구이 | 
이것도 한 마리에 us $20이다.
비싸다고 안 먹을 수 있나.
둘이서 꼬치 하나에 통 랍스터 한마리.
소주 한잔하기에는 충분하다.
나이가 들어 양이 적어져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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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그로브 숲 | 
胎生植物은 열매가 여물면 나무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발아를 시킨 후 떨어뜨린단다.
맹그로브는 발아를 시켜 뿌리까지 나면 그제야 떨어뜨려 번식한단다.
물 정화작용이 뛰어나고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곳에서도 잘 자라며 나무가 단단해서 고급 목재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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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그로브 뿌리 | 
간조기가 되면 이처럼 뿌리가 노출되면서 호흡을 한단다.
랍스터를 먹고 일어서니 구름이 몰려 온다.
구름이 낀 노을 색깔이 점점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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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라브 해의 석양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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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라브 해의 낙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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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리세 근해의 Blue Hall (비려온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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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eat Blue Hole | 
지름이 100m에 깊이가 130m에 이른다.
주변에 산호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바다 생태계의 보고란다.
(Triasas님에게서 빌려 온 사진)
7월 2일(월)
아침에 일어나니 바다가 잔잔하다.
07시 30분, 보트 출발해서 08시 15분에 벨리즈 시티에 도착.
陳 마마 inn에서 짐 찾아가지고 벨리즈를 떠나 과떼말라로 향했다.
09시 30분 23인승 버스가 출발했다.
어제 에어컨이 있는 버스라고 해서 예약을 했는데 에어컨이 없다.
먼지가 풀풀 나는 길을 창문을 열고 달린다.
벨리제 시티에서 서쪽으로 80km 떨어진 수도 벨모판을 지났다.
처음에는 벨리제 시티가 수도였으나 몇 번의 태풍에 피해를 보고
1971년 벨모판으로 수도를 옮겼다.
11시 45분 국경에 도착, 12시에 벨리세국경 통과,
12시 05분 과떼말라 국경 도착, 12시 15분 과떼말라 입국.
12시 44분 과떼말라 국경 도시 출발, 14시 40분 띠갈가는 갈림길 통과,14시 50분 산따엘레나 버스터미널 도착, 관광회사 미니버스 타고 숙소가 많은 뻬뗀 호수 안에 있는 플로레스로 들어갔다.
14시 55분에 도착해서 호텔을 찾아,
15시 30분 Hotel Dona Rosa Check-in. us $22.
깔끔하고 주인도 친절하다.
벨리즈는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이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식민지였을 때, 유일하게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이 스페인어(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데 비해 벨리즈는 영어를 사용한다.
예전 이름은 영국령 온두라스로, 1973년 벨리즈로 개칭했다.
1981년 9월 21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면 적 : 22,966km2.
인 구 : 31만 명(2010년)
수 도 : 벨모판.
종 족 : 흑인, 혼혈, 인디오, 중국인, 인도인.
종 교 : 카톨릭 50%, 개신교 27%, 성공회 5%.
언 어 : 영어.
1인당 GDP : $4,258(2009년)
*.벨리즈의 역사.
기원전부터 유카탄 반도에 번영하고 있었던 마야 원주민에 의한 벨리즈의 문화는 14세기까지 급속히 쇠퇴하고, 16세기에는 에스파냐령(領)으로서 멕시코 부왕령(副王領)에 편입되었다.
그 후 17세기에 영국인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여 영유권을 주장하는 에스파냐와 충돌, 1798년에 이르러 영국인 거주자가 에스파냐군(軍)을 격파하고 1862년 영국 왕실 식민지로 편입시켜 자메이카 총독(總督)의 관할에 두었다.
1884년에는 자메이카에서 분리되어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1954년 헌법을 제정하고 1964년 완전한 내각제도 와 입법기관을 갖는 내정자치권(內政自治權)이 인정되었다.
다시 1973년에는 그때까지 사용해 왔던 명칭 ‘영국령 온두라스’를 ‘벨리즈’로 개칭하였다.
1821년 독립 이래 영유권을 주장해 오던 과테말라와 영국 등 3개국 회담의 결과 1981년 9월 21일 마침내 독립하였다.
또한 유엔, 영연방, 비동맹에 가입하였다.
1991년에는 그동안 영유권을 주장해오던 과테말라가 벨리즈를 승인하였다.
<OAS(미주기구)>
OAS(Organization of American Staes)는 서반구에서 아메리카 국가들이 단일성을 추구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다.
OAS의 목적은 집단안보체제를 마련하고 회원국 간의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며,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상호협조하는 것이다.
OAS는 회원국 중 하나에 대한 공격은 OAS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는 먼로주의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OAS의 전신인 미주회의는 1890년 미국의 국방장관인 제임스 블레인에 의해 처음 소집되었다.
1948년 보고타에서 개최된 제9차 미주회의 때 OAS로 재편되고, 아메리카 내에서 공산주의 전파 저지를 주요 목표 중의 하나로 선택했다.
OAS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J. F. 케네디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그 이후로 쿠바는 초대 회원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의에서 제외됐다.
4년 뒤 OAS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정권교체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을 지지했다.
OAS 회원국은 창립 당시 아르헨티나, 브라질, 쿠바, 도미니카공화국, 과테말라, 멕시코, 미국 등 21개였는데 1967년 바베이도스, 트리니다드토바코가 가입한 이래 1990년 캐나다, 1991년 벨리즈와 가이아나가 가입하면서 총 35개 국가가 되었다.
OAS에는 정식 회원국 외에도 옵서버국가가 있는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59개 국가다.
우리나라도 1981년 옵서버국가로 등록되었다.
벨리즈는 독립 이후 줄곧 OAS에 가입하지 못했었는데 1991년 그동안 벨리즈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 오던 과테말라가 벨리즈를 하나의 독립국으로 승인하면서 OAS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서진근 편저 UN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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