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stria – Salzburg – Vienna
11월 16, 2018오스트리아 – 잘츠부르크, 빈
2008년 7월 27일(일)
08시 48분, 뮌헨역 출발,
10시 43분, 잘츠부르그역 도착.
역 앞에서 버스(1,3,5,6번)로 5분 만에 시청.
잘츠부르그 城으로.
1077년에 지어진 Hohensalzburg는 산 위에 있는 중세 고성이다.
성 내부에는 옛 무기와 공예품, 생활도구 등이 전시되고 있는 라이너 박물관이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새로운 볼거리들도 여럿 만들어 놓았다.
城에서 내려와 대성당을 지나 모차르트 생가(박물관), 모차르트가 살던 집, 아름다운 미라벨 정원, 미라벨 궁전, 왕궁 등등을 돌아봤다.
합스부르크 家의 근거지였던 이 도시는 모차르트로 인해 더욱 유명해 졌고 어디나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이 도시에서 1시간여 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나가 잘츠캄머굿에 있는 쌍뜨 길겐 호수와 아름다운 호반 마을 그리고 케블카를 타고 올라가 산 정상에서 아름다운 호수를 감상할 수 있다.
마리아(줄리 앤드루스)가 춤추며 노래하는 멋진 장면을 찍은 이곳은 미라벨 궁전과 함께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 무대이기도 하다.
쌍뜨 길겐의 호반 마을은 모차르트 어머니의 고향이다.
시간이 바쁜 사람은 사운드 오브 뮤직 관광버스를 이용하면 4-5시간 동안 여러 곳을 구경할 수 있다.
잘츠부르크 城에서 본 市 全景 |
강 왼편이 구시가지.
가까이 대성당이 보이고 가 건너 멀리 미라벨 궁전과 정원이 보인다.
성안에 전시된 잘츠부르크 城 모형 |
대성당 |
대성당으로 들어가며.... |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 골목 |
모차르트 생가(박물관) |
小 공원의 조각(입맞춤) |
미라벨 정원에서 보는 城 |
미라벨 궁전 |
정원의 조각 |
장미정원 |
바머 상 조각 |
정원의 석상들
15시 55분 기차로 빈으로,
18시 40분 빈역에 도착,
잘츠부르크에서 만난 학생들이 소개한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태권도장)으로.
역에서 나와 마리아 힐페르 스트라제를 직진해서 101번지 골목.
걸어서 7분, 1인 20유로, 아침 포함.
도미토리 수준의 숙소인데 한국인들만 이용하는 것 같다.
태권도장을 하는 사람이 운영하고 있다.
슬로바키아로 가기 위해 1박하려고 들렀다.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 아들을 데리고 여행하는 젊은 아줌마.
틈만 나면 유럽을 온단다.
아이도 여행을 좋아해서 둘이 다닌단다.
7월 28일(월)
07시 30분 민박집 출발해서,
07시 45분, 트람 18번 타고 남부역으로.
08시 12분에서 출발해서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로.
12시42분 빈 남역 도착.
13시 38분 트램 18번 타고 쉘부른역.
쉘부른 궁전 뒤뜰 정원 꽃밭과 조각상들.
여성 최초의 황제 마리아테레지아가 완공하고 머물렀던 합스부르크家의 여름궁전이다.
1,400개가 넘는 방이 있다.
모짜르트가 1768년 6세 때 황제 앞에서 연주했던 곳이다.
마리아 테레사 이후 18세에 등극한 프란츠 요셉은 사촌인 엘리자베스 15세인 때 결혼.
검소해서 철 침대를 사용했고 86세에 임종했다.
11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 중 하나가 마리 앙투아네트다.
한국어 해설기가 있어 편리했다.
오페라하우스와 성 스테판 성당 등 올드타운을 돌아보았다.
쉘부른 궁전 |
쉘부른 궁전 앞 조각 |
뒤편 정원 풍경 |
정원 뒤쪽의 유적과 조각들.
이곳부터 언덕 위까지는 그리스풍의 건축물이 있었다.
아름다운 분수 |
언덕 위의 그리스풍 건축물 |
언덕 위의 유적 |
정원과 궁전과 빈 시내 풍경 |
빈 시내의 오페라 극장 |
차 없는 거리 |
성 스테판 대성당 |
성당 내부 장식 |
구시가지 서북쪽에는 아름다운 빈 숲(공원)이 있다.
이 공원에는 요한 슈트라우스 동상을 보려고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황금색의 실물 크기로 세워 놓은 동상은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실망하는 사람이 많다
.
시간에 쫓기는 듯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법석을 떤다.
주로 동양인들이다.
시간 여유를 가지고 음악회라도 한번 보고 가야 하는데…..
면적 : 83,870km2.
인구 : 821만 명(2009년)
수도 : 빈.
종족구성 : 게르만족 98.1%.
종교 : 가톨릭 85%, 개신교 7%.
언어 : 독일어.
화폐 : 유로.
1인당 GDP : 50,099$(2008년)
*.합스부르크 王家.
합스부르크 家(The House of Habsburg)는 본래 독일 남부와 스위스 지방을 다스리는 백작이었으나 점차 세력을 키워 유럽의 세력가가 되었다.
1278년 합스부르크 가의 루돌프 1세는 독일 왕으로 선출되면서 독일에서 확고한 지위를 확보했으며 1276년에는 오스트리아를 지배하던 보헤미아 왕을 몰아내고 오스트리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후 합스부르크가는 크게 팽창해 오스트리아, 스페인, 헝가리, 네덜란드, 남부 이탈리아 등지를 다스렸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가의 중심지는 오스트리아였으며, 1918년까지 650년 이상 오스트리아를 지배했기 때문에 합스부르크가의 역사는 오스트리아의 역사로 보고 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세습되지 않고 선거를 통해 유력 제후 중 적정 자를 선출하는 선출제였는데, 합스부르크가는 1452년 프리드리히 5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된 후 1711년까지 계속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배출했다.
합스부르크가는 다른 왕조들의 상속자와 결혼함으로써 유럽의 넓은 지역을 다스렸는데, 카롤 5세 당시 합스부르크가가 다스리는 지역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포함하는 중부 유럽, 스페인, 네덜란드, 밀라노, 나폴리, 시칠리아, 사르데냐에 이르렀다.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이 멸망하자 합스부르크가의 프란츠 2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를 버리고 오스트리아의 황제로만 남는 것을 택했다.
이후 합스부르크가의 후계자들은 오스트리아의 황제(1867년 이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제)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나 1914년 합스부르크가의 후계자 폐르디난트 황태자가 저격당함으로써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제국은 해체됐으며, 마지막 황제 카롤 1세는 1918년 국사에서 물러날 것을 선언했고, 그 이듬해 폐위당했다..
이로써 합스부르크가의 오스트리아 지배는 막을 내렸다.
<서진근 편저 192 UN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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