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k Road – Amritsar

11월 23, 2018

실크로드대장정(23) – 암리차르(Amritsar) – 시크교도의 성지 황금사원



8월 28일(일)
11일 만에 파키스탄을 떠난다.
국경을 넘어 인도의 암리차르로 들어간다.
파키스탄 국경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고 출국절차를 마친 후 인도 쪽으로 걸어서 넘어갔다.

암리차르는 인도 펀자브주의 서쪽, 파키스탄과의 국경에서 30km 정도 떨어진 인구 120여만 명의 도시이다.
1577년 시크교의 4대 그루 람다스가 시크교신앙의 중심지로서 암리타사라스(불멸의 샘)를 중심으로 건설한 도시다.
1604년 연못의 한가운데 황금사원을 건설하여 시크교의 총본산이 되었다.
1802년 란지트 싱이 황금을 씌우고 대리석을 입히다.
<시크교(Sikhism)는 힌두교와 시슬람교의 장점을 융합시켜 만든 종교로서 15세기 말 인도 서북부의 펀자브 지역에서 나나크(1469 – 1538)에 의해 창설되었다.
지금은 신도 수가 약 2,600만 명으로 세계 4대 종교(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다음으로 신도가 많은 종교다.
시크교의 특징은 윤회사상을 믿으며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신도들은 머리와 수염을 깎지 않고, 터번을 두르고 단검을 지니고 다닌다.

敎祖 나나크는 현재 파키스탄 영토인 라호르 지역의 공무원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유년기부터 종교에 매료되어 집을 떠나 성자들을 만나 종교 문답을 벌이고 다녔다.
30세경에 길을 잃고 헤매던 중 급류에 떠내려가 3일 후 목숨을 건지면서 새로운 까달음을 얻어 시크교를 창설했다고 한다.

나나크가 죽은 후 구루(Guru : 교단 지도자) 밑에서 교단이 정비되다가 제5대 구루인 아르준(1563 – 1606) 시대에 敎典이 성립되고 암리차르에 本山이 건설되는 등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교단으로서 그 세력이 확대해 감에 따라 무굴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아 아르준은 1606년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그 후 무굴제국과의 항쟁을 통하여 교단은 호전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19세기 초에는 란지드 싱(Ranjit Singh)라는 강력한 구루가 나타나 펀자브에 시크교 왕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란지트 싱이 죽자 시크교 왕국은 파벌 간의 싸움으로 급격히 몰락하게 되었다.
파벌 간의 싸움이 전쟁으로 번질 될것을 두려워 한 영국은 펀자브 지역에 군대를 파견해 1845년과 1848년에 두 차례에 걸쳐 시크전쟁을 일으켰다.
시크전쟁 결과 시크교 왕국은 멸망했고 펀자브 지역은 영국령이 되었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펀자브는 분할되어 서쪽은 파키스탄 영도가 되고, 동쪽은 인도 영토가 되었다.
파키스탄에 살고 있던 250만 명에 달하는 시크교도들은 인도령으로 이주했고, 그곳에 살고 있던 이슬람교도들을 내쫓았다.
이 과정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졌고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다.

1984년 6월 인도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펀자브에 있는 시크교의 성지인 암리차르(Amritsar)의 황금 시원을 공격했고, 시크교도는 그해 10월 인디라 간디 총리를 암살하므로써 보복했다.
이후 시크교도들은 인도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았으며, 인도에서 5천명에 달하는 시크교도가 살해당했다.>
(서진근 편저 UN회원국 다이제스트에서)



시크교는 15세기 말 교조 나나크가 인도의 여러 성자를 만나 공부하고 힌두교의 信愛信仰(바크티)과 이슬람교의 神秘 思想을 융합하여 만든 종교이다.

시크교는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카스트제도를 부정하고 유일신을 믿으며 신 앞에서 만민이 평등함을 주장하고 윤회사상을 가지고 있다.
교의(敎義)는 유일신에 귀의하여 신에 대한 사랑과 현세의 선행(善行)으로만 인간은 구제된다고 믿는 것이다.

“시크”라는 용어는 산스크리트어 Sisya(학습)에서 또는 Siksa(가르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성인들은 수염을 기르고 머리에 큰 터번을 둘렀고 어린이(미성년?, 미혼자)는 머리를 상투처럼 말아 묶었다.
시크교도는 다섯 개의 K, 즉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Kesh), 鐵 팔찌를 낀다(Kada),
短劍을 가진다(Kirpan), 빗을 소지한다(Kangha), 무릅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브릿지를 한다(Kaccha) 등 다섯 가지를 지킬것을 권장한다.


파키스탄과 인도 국경
 라호르에서 파키스탄 이미그레이션 까지 택시로 왔다.
출국검사가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끈다.




국경 철문을 통과해 인도 이미그레이션 쪽으로 걸어갔다.

인도에 입국해서 택시를 타고 암리차르 기차역으로 갔다. 500루피(약 $12)
역에서 가까운 곳에 호텔을 정했다.
기차역으로 가서 델리행 기차표를 예매하려니 컴퓨터가 작동이 않 돼니 내일 아침 8시에 오란다.

점심을 먹고 Golden Temple로 갔다.


기차에서 내리는 시크교도

기차역 앞의 오토릭샤


황금사원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원 앞 광장

황금사원으로 들어가는 문


암리타 사라스(불멸의 샘) 한가운데 세운 황금사원



참배객


경비원

황금사원 참배객

어린이들

황금사원 참배객




대중설교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며 분위기를 조성한다.



설교

황금사원

황금사원 입장을 기다리는 참배객

황금사원으로

참배객


供物
 성소에 바칠 공물을 정성스레 싸들고 긴 줄을 따라간다.



頭巾
 총각이거나 머리를 기르지 않은 사람들은 두건을 쓴다.




참배객들은 공물을 바치고 악사들의 연주와 주문을 들으며 성소를 참배한다.



聖所


聖所 천장
 황금으로 두껍게 치장했다.



聖所 천장
 황금과 화려한 장식물로 치장했다.





연못 속에 성소를 지었고 샘 주변은 건물로 둘러쳐 외부와 완전히 차단시켜놓았다.
빌려온 사진.



시크교도 무사들(빌려온 사진)

기차역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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